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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중환자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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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중환자실이 없다.

입력
2018.01.21 16: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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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전원 문의를 받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이 문의는 타원의 응급환자가 우리 병원으로 오기 위한 유일한 정식 통로다. 병실 상황을 늘 파악하고 있어야 답할 수 있다.

저번 근무엔 밤 사이에 걸려온 전화 여덟 통에 전부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답했다. 모든 환자가 중환자실이 필요한 환자였다. 하지만 근래 우리 병원 중환자실은 늘 여유가 없었다. 중환자실이 없으면 중환자는 어떻게든 받을 수 없다. 다른 중환자를 뺄 수도 없고, 새로 중환자실을 만들 수도 없다. 전화를 건 사람들도 이를 알고 있다. 다만 힘 빠진 목소리로 다들 전화를 끊었다. 이렇게 미안하게 여덟 통을 전부 내쳤다.

실은 중환자실은 늘 없다. 인계를 주고받을 때도, 환자가 왔을 때도, 다른 병원 전화에도, 우리는 ‘중환자실이 없다’는 말로 말문을 연다. 가끔 여유가 생기면 원내에서 채우거나 타원에서 이송되어 중환자실은 바로 다시 찬다. 얼마 전에는 심정지로 내원한 젊은 환자가 필사적인 처치를 받고 간신히 살아나는 추세였다.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관찰하면 안정적일 것 같았다. 하지만 중환자실은 당연한 것처럼 없었다. 중앙 전원 센터에 문의하자 ‘오늘은 서울 시내에 중환자실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들었다. 이런 날이 태반이다.

중환자실 입실 기준은 급사 가능성이다. 일반 병실은 8시간에 한 번 상태를 체크하지만, 중환자실은 15분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사망에 대처하기 위한 곳이며, 정말로 사람이 살아나는 곳이다. 심지어 노령화로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그러나 중환자실이 부족해 환자가 안 좋아진 사연은 너무 많아 나열하기도 어렵다. 이송을 하더라도 문제다. 억지로 다른 병원에 전원을 보내다가 상태가 악화한 경우도 그만큼 많다.

중환자실은 왜 없을까. 놀랍게도 적자라는 이유 하나다. 중환자실에서 환자에게 실제 드는 처치 비용에 비해 단가는 한참 부족하다. 모든 환자가 중환자인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의 활약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팀은 불철주야 성실하게 일한다. 그리고 한 해에 10억 적자를 낸다. 환자를 받아서 열심히 치료했을 뿐인데 적자다. 이 때문에 늘 인력도 부족하고, 도구도 마음대로 못 쓴다. 그럼에도 어떻게 하든 적자다.

의료계는 거대 자본으로 몸집 불리기에 한창이다. 여기서 흑자의 힘은 위대하다. 몇 년 전 신생아 중환자실 수가 두 배 인상으로 바로 병상이 50% 늘었다. 투자의 선순환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환자실을 일부러 늘리거나 투자한 병원은 들어본 바가 없다.

생사가 직결되는 중환자실은 의료의 근간이다. 하지만 실제 필요한 비용만큼 지불하지 않고 중환자실 체계는 어떻게든 운영되고 있었다. 여기서 적정한 수가를 책정하자니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대신 정부는 지원금을 걸고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지정해 중환자실 확장 기준을 만들고 해결되지 않는 환자를 책임지도록 했다. 중환자실은 딱 그만큼만 늘었고, 문책할 수 있는 대상이 생겼다. 미봉책이었다. 그럼에도 중환자실이 없으면 여전히 환자를 못 받는다. 환자들은 오늘도 배회한다.

중환자는 중환자실이 없다고 항의하지 못한다. 유가족은 인명이 재천이라며 한탄한다. 이들은 시스템을 몰라 분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당장 중환자실이 있는 병원을 가는 것이 지금보다는 낫다고, 그나마도 찾으면 다행이라고 한다. 덧붙여 이것이 차선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실상 환자에게는 그냥 악에 불과하다. 우리는 누군가를 대신해 악을 행한다. 중환자실은 일할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문제는 이것밖에 없다. 중환자실은 적자이고 사람들은 발을 구르다 죽는다. 그리고 나는 다음 출근에 이 말을 반복하러 가야 한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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