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준규 기자

등록 : 2018.01.01 04:40

[신년 좌담회] 한국산업의 미래 “아이돌 그룹처럼 성공사례 나와야 스타트업 열풍 불 것”

본보, 대한상의 주최 전문가 좌담회

등록 : 2018.01.01 04:40

김수호(왼쪽부터) 맥킨지한국사무소 파트너, 신현한 연세대 교수, 이윤희 모비두 대표,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14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 의원회의실에서 ‘혁신의 각축장, 한국 산업의 미래는?’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지난해 우리 경제가 3년 만에 3%대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2018년 새해 경제 전망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세계는 ‘혁신의 각축장’으로 바뀌었고, 성장이 아닌 현상 유지만을 위한 경제 정책은 한계가 뚜렷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위기감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경제 성장률과 글로벌 혁신 순위가 동반 하락하는 점을 지적하며 “혁신하지 않으면 경제가 바뀔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성장을 이끌 현실적 대안을 만들자”며 경제 현안에 대한 전문가 제언을 정부와 정치권에 전달했다.

이에 한국일보는 대한상의와 함께 ‘혁신의 각축장, 한국 산업의 미래는?’이란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지난달 14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 의원회의실에서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김수호 맥킨지 한국사무소 파트너, 이윤희 모비두(벤처기업) 대표가 한국 경제에 필요한 혁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 새해를 맞아 우리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혁신은 무엇인지, 우리 혁신 역량의 수준을 평가해달라.

이장균= 혁신이 회자하는 건 그만큼 혁신이 잘 안 되는 기업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 동안 단기적 혁신은 많이 이뤄졌지만, 기존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를 고부가가치 산업구조로 바꾸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서비스 산업을 활성화하는 쪽에서 혁신이 필요한데, 많이 뒤처진 상태다. 지금은 누가 먼저 혁신하느냐에 따라 차지할 수 있는 수익의 차이가 크다. 지난 10년간 한국경제는 정보통신기술(ICT), 제조업 발전을 통해 남보다 앞서 혁신했다는 평가를 들었는데, 지금은 그런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한발 늦게 혁신을 부르짖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신현한= 클레이턴 크리스턴슨 하버드대 교수가 말한 ‘파괴적 혁신’이 떠오르는데, 파괴적 혁신의 주체는 남이 아닌 나다. 우리 기업들이 혁신하려면 현재의 사업을 파괴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나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특히 대기업의 혁신은 더 어려워 보인다.

이윤희= 혁신도 단계가 있다.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실현해 시제품을 만들고, 사업화한 뒤 기업 규모를 성장시키는 단계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이디어를 내서 시제품을 만드는 역량은 좋은 것 같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아이템 중 우리나라에서 먼저 시도 안 된 것들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막상 사업화하고, 많은 소비자가 쓸 수 있게 기업을 성장시키는 역량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김수호= 과거엔 비즈니스 성공 요인이 규모의 경제에 있었다면 앞으로는 스피드 중심으로 바뀔 것으로 본다. 과거엔 규모의 중요성과 함께 신뢰가 필요했다. 그런데 고객들의 선택이 달라지고 있다. 공급자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굉장히 많은 시도가 이뤄지고, 많은 기업이 생겨나고 있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의 혁신 지수, 기업가정신 지수가 굉장히 낮은 건 사실이다. 이런 부분이 개선돼야 한다.

사회= 혁신을 가로막는 요인이 기업 외부는 물론이고, 내부에도 많을 것 같다

신현한= 기존 기업과 신생기업으로 나눴을 때 혁신이 안 되는 이유가 서로 다르다. 기존 기업들은 자신을 파괴하는 혁신이 힘들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신생기업엔 혁신 상품이나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대규모 자본과 경영 기술이 투입돼야 하는데, 그 과도기를 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윤희= 우리 회사는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에 정보를 실어 전송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모바일 결제 및 인증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고, 롯데 L페이가 우리 기술을 쓰고 있다. 지역사랑상품권 모바일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는데 전자금융업 등록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자본금이 20억원 있어야 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인력을 갖춰야 하는 등 요건이 복잡했다. 서비스 준비하는 것도 버거운데 등록 절차가 너무 힘들었다. IT 서비스를 하다 보니 서버 환경이 중요한데, 전자금융업 등록을 하게 되면 클라우드 서버 사용이 금지된다. 그럼 우리가 직접 서버를 구입해야 하고, 고객들이 얼마나 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대의 서버를 물리적으로 갖춰야 하는 비합리적인 상황이 된다. 반대로 전자금융업 등록이 되면 회사가 안전하니까 클라우드를 써도 된다는 접근이 맞지 않을까 싶은데 오히려 규제권 안에 들어가는 게 두려운 상황이다.

김수호= 올해 맥킨지가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를 냈다. 창업 쪽 컨설턴트와 현업 기업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규제는 고객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하니, 당연히 그걸 전제로 서버를 갖추라고 한다. 그런데 변화하는 환경은 반영되지 않는다. 만약 핀테크처럼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었는데 기존 산업 카테고리에 정확하게 맞는 게 없는 경우, 등록 자체에 문제가 생긴다. 등록하더라도 오프라인 기업 기준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로보어드바이저’ 사업은 고객을 만나지 않고 제언을 해주는 건데, 등록하려면 고객을 만나는 매장이 있어야 한다는 식이다.

사회= 역대 정부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기업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장균= 1990년대 초쯤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산업계가 왜 이렇게 자유롭냐고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자기들은 뭐 좀 하려면 막히는데 한국은 해보자면 곧장 가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중국을 부러워하는 것과 비슷하다. 규제는 경제 규모가 커지면 많아지고, 새롭게 등장한다. 문제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새롭게 출발하는 사업을 시작부터 가로막는 규제들이다. 드론이나 전기자전거의 전망이 밝다면 우선 사업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사후 기존 규제로 통제가 안 되거나 국민 편익을 해친다면 그 때 규제를 하면 된다. 사업화 이전 아이디어 단계부터 가로막고 있어서 기업들이 어려운 것이다.

신현한= 결국은 공무원이 풀어줘야 한다. 공무원 조직에도 옴부즈만처럼 국민 불편 신고받아 해결해주는 기관이 있는데, 이곳이 각 부처, 부서의 하부조직까지 모든 분야에도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을 조직이 돼야 한다. 그 조직이 ‘규제 때문에 사업 못 하겠다’는 말이 안 나오도록 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규제를 만드는 대신 풀어주는 게 업적이 되는 공무원들이 나와야 한다.

이윤희= 규제는 무조건 나쁘고 없애는 게 좋다는 입장은 아니다. 규제가 산업과 시대의 흐름을 즉시 반영할 수 있으면 상관없다. 현실적으로 속도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처음엔 풀고 나중에 규제하는 게 필요하다. 규제 당국이 혁신에 대한 비전을 스타트업과 함께 공유하면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면서 잘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회= 혁신적인 창업기업을 키우기 위해 우리가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가 있을 것 같다.

김수호= 싱가포르에는 정부, 기업, 대학이 참여하는 고급재생산기술센터(ARTCㆍAdvanced Remanufacturing and Technology Center)라는 기관이 있다. 기업이 원천 기술에 투자하기 쉽지 않고, 대학은 좋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산업화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 3M, 롤스로이스 등 글로벌 기업들을 참여시켜 기술 기반의 컨소시엄을 운영하고 있다. 보여주기식 사업이 아니라 실제 사업 아이디어가 나와 기업에 적용하면 세제 혜택 등 실질적인 지원을 해준다.

신현한= 이스라엘 경제 성장 비결을 다룬 ‘창업국가’라는 책에 요즈마 그룹의 벤처캐피털 이야기가 소개됐다. 모태펀드들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많은 외국계 벤처캐피털을 참여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그래서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외국 기업 중에 이스라엘 기업 숫자가 가장 많다. 우리 정부에서 모태펀드를 통해 스타트업 지원을 하고, 기업들이 기술을 만든다고 해도 상업화가 힘들다. 해외 진출도 쉽지 않다. 규모를 키우려면 결국 외국 거대 자본이 도와줘야 하고, 그들과의 적극적인 협업이 필요하다.

사회=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이윤희= 목표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 하는 것인데 이게 어렵다. 기술 기반 벤처의 출구전략은 상장보단 M&A다. 그런데 우리 정서는 기술이 아주 뛰어난 게 아니면 대기업이 직접 개발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서 쉽지 않다. 결국 M&A할 때 전략은 기술을 파는 게 아니라 서비스를 만들어서 누적된 사용자, 실적, 그런 걸 팔아야 한다. 내비게이션 어플 ‘김기사’처럼 많은 사람이 쓰는 서비스가 아니면 M&A는 어렵다.

이장균= 대기업이 국내 벤처기업을 M&A할 때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 벤처에 대한 가치평가도 쉽지 않고, 경우에 따라선 대기업이 헐값에 벤처를 사들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잘 되면 좋지만 실패했을 때의 책임 문제도 있다.

김수호= 전 세계 벤처캐피털 중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 비중이 30%가 넘지만, 우리는 7.7%밖에 안 된다. 구글, 애플 등 미국 IT 기업들은 CVC를 통해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한 뒤 인력을 채용하거나 기술을 가져와 성장한다. 그런데 우리 대기업 지주회사는 금산분리 규제에 따라 CVC를 설립하지 못한다. 벤처기업들이 성장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려면 데이터, 재무적 지원, 노하우가 필요하고, 결국 대기업과 협업해야 한다. 그 방식이 M&A이건, 조인트벤처이건, 사업협력이건, 협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규제 완화와 진흥 정책이 필요하다.

신현한= 대기업이 주도하는 CVC 지원을 받은 벤처기업이 훨씬 혁신 성과가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시장 경험이 풍부한 대기업이 돈과 사람, 기술을 지원해주니 당연히 잘 될 수밖에 없다. 마스크팩으로 유명한 메디힐도 중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게 중국 벤처 캐피털의 투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벤처 캐피털 중에서도 CVC가 훨씬 잘 하는데, 우리는 CVC는 논외로 한 채 벤처 캐피털을 육성한다고 하고 있다.

사회= 청년들이 창업을 기피하는 문화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신현한= 요즘 TV를 보면 아이돌 그룹 멤버를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인데, 어린 학생들이 왜 잠 설쳐 가면서 매달릴까 생각해보면 결국은 성공한 사례를 봤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창업에 뛰어들어서 대한민국이 혁신의 각축장이 되도록 하려면 성공 사례를 보여줘야 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불러 부탁한 게 있는데, 스타트업을 비싼 값에 사달라는 것이었다. 만약 삼성전자에서 벤처기업을 1조원에 샀다고 하면, ‘저걸로 1조를 벌 수 있어?’하면서 대학 안 가고 창업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어느 정도 쇼도 필요하다. 미국에선 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회사들이 엄청나게 M&A 하고 있다.

이장균= 우리나라에도 자금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스타트업에 모여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른바 ‘닷컴 열풍’ 때다. 현실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곳에 모든 요소가 투입되고 모여든다. 우리 산업화 정책 대부분은 정부가 만들어주는 푸시(push)형이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진짜 저렇게 해서 성공할 수 있구나’ 하는 것에 수요가 어떻게 몰리는지를 지켜보는 정책이 필요한데, 그런 것 없이 계속 쏟아붓고만 있다.

사회=정부의 산업 정책에 제언한다면

신현한= 이번 정부가 다른 정부와 달리 뭔가를 잘해보고 싶다면 공무원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신뢰했으면 좋겠다. 벤처를 지원할 때 몇 건에 몇 퍼센트 했는지 이런 것 따지지 말고, 공무원이 잘 될 거라고 판단해 지원한 거라면 믿고 맡겨야 한다. 일을 맡긴 공무원에게 책임감과 권한을 줘야 한다.

이윤희= 정해진 틀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컨트롤 타워다 뭐다 하면서 틀을 정하게 되면 결국 그 틀에서만 놀게 된다. 글로벌 시장에서 봤을 때 그 틀은 매우 작은 거고, 틀 밖을 벗어나는 혁신적 사고를 못 하게 된다. 우리도 틀 안에 2, 3년만 있다 보면 혁신성이 떨어질까 봐 두려워진다. 틀을 풀고, 글로벌 시장에서 뛰어놀게 할 정책이 많아야 한다.

김수호= 정부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영국 정부가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만든 원칙 10가지 중 하나가 ‘Do less’(적게 하라)다. 일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부가 가치를 낼 수 있는 일만 하라는 거다.

이장균= 만약 내가 스피커 회사 사장이라면 최근 등장한 인공지능(AI) 스피커 때문에 고민이 많을 거다. 기존에 만들던 전통 스피커를 고수할지, AI 기술을 넣을 건지, AI 기술을 넣는다면 직접 개발할 건지, 다른 회사에 맡길 건지, 어떤 유통 채널로 판매할 것인지 등등. 그런데 정부 정책은 너무 기술적인 부분에 치우쳐 있다. 좋은 AI 스피커를 만들어도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나 팔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인데 이런 것에 대한 대응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도 이런 것을 고민하고 산업정책으로 빨리 뒷받침해야 한다.

사회ㆍ정리=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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