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채지형의 화양연화] 특별한 여행친구, 부모님

입력
2016.04.29 14:10
0 0

네팔의 살기 좋은 마을 포카라에서 아람이네 모녀를 만났다. 엄마와 딸이 의지하며, 해발 4130m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다녀왔다고 했다. 아람이는 네팔을 몇 번 여행한 베테랑이었다. 네팔을 여행할 때마다 산을 좋아하는 엄마 생각이 났다고 했다. ‘언젠가는 꼭 엄마랑 와야지’ 했는데, 드디어 실천하게 되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날 저녁시간의 주인공은 단연 아람이 어머니였다. 그토록 보고 싶던 히말라야와 마주한 이야기, 점심 때 먹은 마늘 스프 이야기, 산에 사는 네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야기보따리를 끝없이 풀어 놓았다. 하늘 위에 떠 있는 별은 유난히 밝았고 어머니의 얼굴은 그 별들보다 더 반짝였다.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먼저 반응한다.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이었던 우리네 부모님.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길 중 하나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여행을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효도여행을 보내드리는 것이 대세였다면, 요즘은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

네팔을 함께 여행한 적은 없지만, 나도 부모님과 가끔 길을 나선다. 부모님과 함께 한 첫 해외여행은 15년 전 캄보디아였다. 회사에 휴가를 신청했다. 그리고 아빠가 직접 느끼고 싶다던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그 여행에서 우연히 엄마와 아빠의 청춘을 만나게 되었다.

어렸을 때 친구들은 “혹시, 니네 아빠 군인이시니?”라고 할 정도로, 우리 집은 군기가 꽉 잡혀 있었다. 큰 오빠가 잘못을 하면, 막내인 나까지 기합을 받아야 했다. 열외는 없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부모님의 러브 스토리를 듣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캄보디아의 도로는 일분마다 구덩이가 뚫려있는 제대로 된 비포장 도로였다. 아빠가 옛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 것은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짧은 포장도로를 막 지난 후였다. 오랜만에 여행 오니 신혼여행 때가 생각나신다고 했다. 신혼여행지는 온천으로 유명한 유성이었다. 애연가였던 아버지는 기차가 잠시 정차하자, 간이역에 내려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갑자기 기차가 출발해버린 것이다. 담뱃불을 끄는 둥 마는 둥 달렸지만 기차는 속절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기차에 홀로 남은 신부는 기차에서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신랑이 갑자기 사라졌으니, 이 무슨 날벼락이겠는가. 아빠는 혼날까 봐 담배 피러 간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빠는 택시를 붙잡아 타고 무조건 기차를 따라가 달라고 했다.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동안 따라가, 겨우 상봉할 수 있었다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부모님께 왜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제야 해주느냐고 물었더니, 뭐가 재미있냐며 손사래를 치셨다. 그러나 엄마의 표정은 이미 40년 전 새색시로 돌아가 있었다.

신혼여행 이야기를 시작으로 힘들었던 시절, 얼굴도 뵙지 못한 할아버지 이야기, 엄마의 재수시절 수학공부 이야기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마구 터져 나왔다. 아, 이래서 부모님과 여행을 하는구나 싶었다. 집에서는 결코 꺼내놓지 않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차마 하지 못하셨던 서운했던 기억까지 듣게 되었다. 슬그머니 나도 부모님께 생전 처음으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부모님 덕분에 이렇게 신나게 여행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다. 손가락이 오그라들기는 했지만, 그림 같은 석양을 배경으로 나누는 시간이 더 없이 아름다웠다.

캄보디아에 다녀온 이후에 부모님은 나의 특별한 여행친구가 되었다. 일 년에 한번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올해도 슬슬 가방을 챙길 시간이 돌아오고 있다. 부모님과 여행을 즐겨 하는 경험자로서 살짝 귀띔하자면, 여행의 중심을 ‘보는 것’에 두지 말라는 것이다. 뭔가 더 보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는 것은 금물이다. 일정에 꼭 틈을 만들고,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는 것에 방점을 두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 무릎이 힘들어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부모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 좋다. 부모님 시야를 벗어나면 걱정하신다. 가능하면 홍삼도 챙기자.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게 되니, 영양제와 사탕도 넣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어디에 가든 화장실 위치를 꼭 알아두는 것이 좋다. 이것만 지키면 가정의 달 오월, 누구나 효자, 효녀 코스프레를 할 수 있다.

여행작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