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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150여개 갑부 가문이 좌지우지하는 美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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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150여개 갑부 가문이 좌지우지하는 美대선

입력
2015.11.0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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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 선거자금 제공 제한 규정

대법원서 잇단 위헌 판결

역대 최악의 금권선거 우려

지난 2011년 자신의 슈퍼팩 운영 허가를 받기 위해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의 공청회에 참석한 스티븐 콜베어(왼쪽)와 변호사 트래버 포터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2011년 자신의 슈퍼팩 운영 허가를 받기 위해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의 공청회에 참석한 스티븐 콜베어(왼쪽)와 변호사 트래버 포터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스티븐 콜베어(51)라는 미국의 코미디언 방송인이 있다. 신랄한 정치 풍자가 주특기인 그는 현재 데이비드 레터맨의 후임으로 CBS 방송 데일리쇼 ‘더 레이트 쇼’를 인기리에 진행 중이다. 그는 더 레이트 쇼 이전에 코미디 센트럴의 ‘콜베어 르포어’라는 프로그램에서 극단적인 우파 방송인 캐릭터를 연기하며 미국 사회와 정치의 부조리한 면모를 조롱해 인기를 모았다.

그는 현재 미국 선거를 금권 선거로 변질시켰다는 비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슈퍼팩(Superpac)’ 의 문제점을 방송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으로 유명하다.

정치자금을 무제한 기부할 수 있는 통로인 수퍼팩은 기업, 노동조합, 개인, 단체들로부터 자금을 모금하고 지출할 수 있는 정치행동위원회로, ‘독립적인 지출 전용위원회’가 공식 명칭이다. 슈퍼팩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낙선시키기 위한 정치조직인 ‘정치행동위원회(Political Action Committee)’의 약자인 팩(PAC)에서 파생된 조어다. 후보 및 선거당 2,700달러(약300만원)까지만 모금할 수 있는 팩과 달리 슈퍼팩은 기부 주체와 자금에 제한이 없다. 때문에 슈퍼팩은 자신들이 선택한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기업, 노조, 단체들로부터 무제한으로 자금을 끌어들여 선거에 쏟아 부을 수 있다. 단 슈퍼팩은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직접적으로 협조할 수 없으며 후보 스스로가 자신의 슈퍼팩을 운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슈퍼팩을 운용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501(c)(4)라는 면세 비영리 단체다. 원래는 사회복지재단인 이 단체는 우회 기부의 통로로 이용되어 왔다. 501(c)(4)의 기존 관련 단체는 병원, 재단 등으로 기부자가 익명 요청 시 기부자를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를 악용해 부자들이 이곳에 익명으로 기부를 하고 이 단체가 기부액을 슈퍼팩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기부자를 숨길 수 있다. 현재 501(c)(4)는 미국의 슈퍼 리치들이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천문학적 선거자금 마음대로 지원할 수 있는 ‘슈퍼팩 운용’의 주요 통로로 변질됐다.

미국 최고부유층이 마음대로 지지후보를 지원할 수 있는 통로인 ‘슈퍼팩’은 미 대법원이 2010년 ‘영리 단체의 정치광고 금지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2007년 ‘시민연합’(Citizen's United)이라는 단체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공격하는 영상을 제작해 케이블 회사에 판매했고, 이것이 영리단체의 정치광고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1심 판결이 나오자 대법원까지 가게 된 것. 대법원 판결로 영리단체도 정치광고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영리단체의 자금까지 기부 받을 수 있는 팩에 슈퍼팩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슈퍼팩 풍자위해 코미디언 직접 슈퍼팩 모금

스티븐 콜베어는 2011년 슈퍼팩이 자금을 지원한 TV광고를 보고, 자신도 방송에서 자신의 팩을 만들겠다고 밝히며 논란을 촉발시켰다. 그런데 그가 속한 코미디 센트럴의 모회사 바이어컴이 ‘우리 회사 방송시간에 광고를 하게 되면 선거 단체에 기부를 한 셈이니 허가할 수 없다’고 통보해 콜베어는 영리단체인 기업도 기부할 수 있는 슈퍼팩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힌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방송에 선거관리위원회 회장을 지냈던 선거법 변호사 트래버 포터를 초대해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관련 규정을 꼼수로 피해가며 콜베어는 ‘내일, 더 좋은 내일을 미국에’라는 진짜 슈퍼팩을 만들어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로부터 수개월 동안 백만달러 이상의 자금을 모았고, 당시 열기를 더해가던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 풍자적으로 자신의 고향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대통령’으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한다.

슈퍼팩과 후보가 서로 협조할 수 없다는 규정은 있지만, 슈퍼팩 운영자와 후보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제한은 없는 규정의 허점을 이용해 그의 친구이자 자신의 방송 앞 시간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를 끌어들여 슈퍼팩을 맡긴 후 ‘절대로 스티븐 콜베어와 협조하지 않는 슈퍼팩’이라는 이름을 달아 법의 허점을 조롱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더 많은 자금 기부를 위해 501(c)(4) 재단인 ‘콜베어 슈퍼팩 쉿!’도 만들었으며, 방송에서 포터 변호사에게 “이것과 돈세탁이 다른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슈퍼팩 제도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꼬집기도 했다. 이처럼 실제로 슈퍼팩을 만들고 이를 운용하는 과정을 폭로해, 그는 “미국 선거제도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 해 피바디 상을 수상했다.

스티븐 콜베어의 슈퍼팩 소동을 다룬 미 NBC 뉴스의 클립

콜베어가 슈퍼팩이 소수 부유층이 선거운동에 무제한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드러냈지만, 그럼에도 슈퍼팩은 점점 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 사법부가 커져가는 반대여론에도 아랑곳 않고 슈퍼팩에 대한 규제를 점점 불법화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연방대법원은 앨라배마주의 사업가 션 맥커천과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슈퍼팩의 기부총액 제한을 폐지했다. 당시 대법원은 한 개인이 후보나 정당, 슈퍼팩에 낼 수 있는 정치 후원금 총액을 2년간 12만3,200달러(약1억4,000만원)로 제한한 연방 선거법 조항에 대해 5대4로 폐지 결정을 내렸다.

슈퍼팩 자금 모금 지난 대선보다 18배 급증

이에 따라 이 판결이 최초 적용되는 2016년 미 대선에서 부유층이 쏟아 붓는 선거 자금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15일, 대선 경선 후보들이 연방선거위원회(FEC)에 제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3분기까지의 자금 모금 현황을 보도하며 심각성을 폭로했다. 우선 이번 대선 후보자 캠페인 모금자금 절반이 슈퍼팩의 제한 없는 기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대선을 위한 슈퍼팩 모금액은 올해 중반까지 약 2억7,780만달러(약3,160억원)에 달하며, 이는 2012년 대선 과정에서 같은 시기 슈퍼팩이 1,540만달러(약175억원)를 모은 것과 비교하면 규모가 18배나 급상승한 것이다. 또 민주당 경선후보들이 1,710만달러(약194억원)를 슈퍼팩을 통해 모금해, 전통적인 대선준비위원회를 통한 모금에 더 치중한 것에 비해 공화당 경선후보들은 민주당보다 20배 이상 많은 총 2억6,070만달러(약2,960억원)를 슈퍼팩으로 모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 23개의 기업이 슈퍼팩을 통해 각 10만달러(약1억1,300만원)이상을 대선 후보지원을 위해 기부했는데, 이 금액의 상당수는 젭 부시 공화당 경선후보에게 갔다. 각 후보 별 대선 경선 자금 중 슈퍼팩 비중이 가장 높은 후보는 테드 크루즈 공화당 경선 후보로, 무려 95%에 달하는 3,810만달러(약433억원)의 경선 자금이 슈퍼팩을 통해 모금됐다. 게다가 슈퍼팩들은 내년 1월 31일까지 전체 모금 금액을 보고하도록 돼 있어, 현재까지 밝혀진 금액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슈퍼팩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150여개에 불과한 슈퍼리치 가문들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10일 올 상반기 기부된 대선 자금 중 절반에 해당하는 1억7,600만달러(약2,000억원)이 불과 158개 가문에 의해 모금됐다고 밝혔다.

소수 억만장자들이 무제한으로 돈을 들여 선거판을 주무르는 행태가 근절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한 여론조사에서 87%의 미국인들이 “부유한 사람들이 돈이 없는 사람들보다 선거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며 현재 선거 캠페인의 재정 시스템 개혁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

슈퍼리치 선거 관여 방치하는 선관위, 국세청

4년 전 콜베어와 슈퍼팩을 만들어 위험성을 경고했던 변호사 트래버 포터는 지난달 19일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어떻게 스티븐 콜베어가 시작한 것을 끝낼 수 있을까’라는 글을 기고하며 슈퍼팩 자금이 몰려 평당원의 의사를 왜곡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공화당원들이 나서서 망가진 캠페인 재정 시스템을 고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4년 전 방송을 할 때만 해도 슈퍼팩은 미국 선거에서 생소한 존재였지만, 이후 대법원이 잇따라 슈퍼팩에 대한 활동제한을 불법화하면서 슈퍼 리치들이 입맛에 맞는 후보자를 선택해 선거를 매수하는 것을 훨씬 쉽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특히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들과 정당 지도자들의 슈퍼팩 문제에 대한 침묵은 위험한 계산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유권자들은 부자들이 좌지우지하는 선거 시스템에 크게 혐오하고 있으며, 이것이 1억달러 이상의 슈퍼팩 자금을 모은 젭 부시가 정작 여론조사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제한으로 자금을 빨아들이는 슈퍼팩은 현행 규정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위법을 저질러도 처벌받는 경우가 드물다고 포터는 지적했다. 규정상 슈퍼팩과 후보자는 서로 협력할 수 없지만,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칼리 피오리나의 슈퍼팩인 ‘미국을 위한 칼리’의 운영진은 슈퍼팩이 피오리나를 초대한 대중 이벤트의 연설장소에서 깃발을 달고 피켓을 배포하며 (팩이 조직한) 집회에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등 명백한 후보 협조작업을 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선거 과정의 투명성을 관리해야 할 FEC는 당파적으로 분열돼 법위반을 제대로 제재하지 못하고 있다. 2003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FEC는 선거법 집행 여부에 대해 80%에 가까운 거부권을 행사했으며, 이러한 표결은 높은 비율로 3-3 교착 상태로 끝났다. 최근 연구감시그룹인 ‘퍼블릭 시티즌’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FEC는 자신들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무능력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 국세청 역시 501(c)(4)처럼 슈퍼팩의 자금을 세탁하는데 동원되는 재단에 자의적인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며 임무를 방기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포터는 선거 재정 시스템 개혁은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을 복원하기 위한 첫 발이라고 밝히며 공화당은 헌법상 선거법의 엄격한 시행을 주장함으로써 이를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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