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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거래의 성사,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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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거래의 성사, 그 이후

입력
2018.06.06 10: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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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에 있어서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 실패를 하지 않도록 가장 근접한 합의안을 미리 준비하게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회담 자체가 열리지 않는다.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개최된다면 어느 수준의 합의는 이미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협상은 현 단계에서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가시적인 거래의 목표가 있을 때 성공한다.

북핵 문제에 있어서 협상이라는 카드를 가장 반기는 당사자는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일 수도 있다. 최근 미국의 ‘슈츠(Suits)’라는 법정드라마가 한국에서 리메이크되었다. 로펌을 배경으로 사건의 해결과 경쟁구도, 그리고 멋진 정장을 차려 입은 배우들의 로맨스를 보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원작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협상 전문 변호사들이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서 최대한의 정보를 얻고 상대의 강점과 약점, 계약의 느슨한 고리를 치열하게 파고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설득과 압박, 그리고 끊임없이 상대방을 딜레마 상황에 밀어 넣는 협상의 전략은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한다. 재판을 전쟁으로 치환하면 외교적 협상의 틀이 나온다.

어쩌면 이것이 미국이 생각하는 협상의 본 모습일 수 있다. 부동산 개발업은 안락한 사업이 아니다. 평생을 소송과 합의, 보상과 압박이라는 실제 상황에서 승부사 기질의 사업가로 살아온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하는 협상의 세계는 관료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대화와 조율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본인 방식으로 가장 익숙한 협상의 판에 북한을 끌어들이는 것에 흔쾌히 동의했을 수도 있다. “웰컴 투 마이 월드!” 실제로 협상 취소라는 강력한 무기와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타이밍, 극적인 반전 등 한반도를 놓고 현실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드라마를 능가할 만큼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제 한반도와 동북아를 둘러싼 거대한 게임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이제까지 비핵화의 큰 협상은 미국과 북한 사이에 논의되는 구도였고, 한국이 낄 여지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북핵의 매듭을 푸는 과정에 있어서 발생하는 많은 의제에는 한국이 조정자로서가 아니라 당사자로서 주도해야 할 여러 협상들이 걸려 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몇 가지 요인들이 있다.

첫째는 용어의 정확성이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이 사용하는 여러 용어들이 실제로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한 뉘앙스의 차이를 넘어 본질적인 목표와 조건들을 결정하기도 한다. 따라서 합의의 내용에 있어서 용어의 모호성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숫자의 정확성이다. 미래 비용과 가치는 종종 하나의 수치보다는 일정한 범위를 지정하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 가장 유리한 숫자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비용과 가치의 판단은 가장 현실적인 숫자의 선택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실행이 가능해진다. 셋째는 타이밍의 중요성이다. 정무적인 판단은 빨리 내릴 수 있지만, 경제와 체제의 전환은 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협상에서 마음이 급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지금 할 일과 기다려서 할 일의 시간적인 선택이 합의의 효과를 극적으로 증감시키게 된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의 우선순위를 잡아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은 큰 그림과 디테일이 모두 필요하다. 디테일만 보아서는 큰 그림에서 하늘의 천사를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디테일을 무시한 큰 그림 밑에는 악마가 도사리게 마련이다. 비핵화의 해법은 수많은 파기와 변경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 계약이 될 가능성이 있다. 정상회담과 협상에 있어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사례에 비추어 이러한 위험성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 그래서 소중하게 열린 기회의 창을 계속해서 살려내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비열하리만큼 까다로운 계약 전문 변호사도 필요하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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