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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수다에 '음담패설' 꼭 끼어야 하나요"

입력
2016.08.0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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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 채팅 앱-노래방 도우미 등 일상 속 성매매 비판

<편집자주> '사소한 소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Minor·마이너)한 문제들에 대해 소다(Soda·탄산수)같이 시원하게 이야기해 보는 코너입니다. 주로 페미니즘, 성 정체성, 몸(body)에 대한 긍정 등 젠더 이슈를 다룹니다.

"성매매 문제 해결이 왜 여자들의 문제죠? 남자들도 고민한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아 답답해요."

지난달 26일 오후 7시 전북 전주의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에 20~30대 남성 7명이 모여 열띤 토론을 했다. 이들은 여성혐오, 여성폭력, 성매매 등 젠더 폭력에 반대하고 성차별적 인 문제에 대해 고민을 나누는 남성모임 '시시콜콜'의 회원들이다. 평범한 직장인부터 페미니즘에 눈 뜬 대학생, 인권운동에 힘쓰는 사회활동가까지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성 매매 문제 해결을 위해 경험과 생각을 쏟아냈다.

이들이 시간을 쪼개 여성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시콜콜의 네 번째 모임 현장에서 이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봤다.

젠더 불평등에 관심을 갖고 성차별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들이 모인 '시시콜콜'의 모임이 지난달 26일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에서 열렸다. 이원준 인턴기자(고려대 정치외교학4)
젠더 불평등에 관심을 갖고 성차별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들이 모인 '시시콜콜'의 모임이 지난달 26일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에서 열렸다. 이원준 인턴기자(고려대 정치외교학4)

“성구매가 문화? 남자들의 고민은…”

이날의 토론 주제는 '성 구매와 남성문화'였다. 우선 성 매매 원인에 대한 의견이 나왔다. 채민(32·인권운동가)씨는 "성욕 해소보다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성을 사는 것"이라며 "인간의 성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성 구매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남성 문화의 일상성을 반성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고건우(24·청년활동가)씨는 “동네 먹자골목의 노래방에만 가봐도 '아가씨가 필요하냐'고 자연스럽게 묻는다”며 “성 매매가 참 쉬운 나라”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민우(24·대학생)씨는 "돈이 많든 교육 수준이 높든 모든 계층에서 유흥으로 성을 소비하는 것은 남자들이 향유하는 문화 수준이 낮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남성들이 성 구매 대신 좋은 취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얘기하자 다들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성별 권력관계가 존재했다면 상위 포식자에 해당하는 남성들이 대체 왜 이런 모임을 통해 ‘불편한 만남’을 이어가는 것일까. 이들은 이 모임을 통해 남성으로서 역할과 남성성(섹슈얼리티)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고 주장한다. 문주현(34·인터넷신문기자)씨는 “당장 삶에 이익이 된다기 보다 생각을 공유하는 남성들을 만나는 ‘사이다(청량음료)’ 같은 자리” 라며 “대개 남자들끼리 모여 성 매매 얘기를 할 때 음담패설을 주고받기 일쑤인데 진지한 토론을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오른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송재한씨, 윤민우씨, 문주현씨, 여현수씨, 이용현씨, 고건우씨, 채민씨 등 남성모임 시시콜콜의 회원들. 이원준 인턴기자 (고려대 정치외교학4)
오른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송재한씨, 윤민우씨, 문주현씨, 여현수씨, 이용현씨, 고건우씨, 채민씨 등 남성모임 시시콜콜의 회원들. 이원준 인턴기자 (고려대 정치외교학4)

물 만난 남성들의 '생산적 수다'

이들이 각자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터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든 것은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다. 지난 4월 첫 모임 이후 총 12명의 남성이 비정기적 만남을 갖고 있다. 센터는 오랜 시간 성 매매 반대 운동을 하던 중 남성 스스로 젠더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고민하는 장으로 지금의 모임을 제안했다.

그만큼 이 모임은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젠더 이슈를 놓고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경험을 다룬다. 두 번째 만남에서 남자로 살아가며 남성중심사회에서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에 대해 얘기했다. 세 번째 모임에서는 여성 혐오를 다루며 여성과 차이를 인식하기 위해 남성이 남성에게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는지 이야기했다.

이들의 ‘생산적 수다’가 성 구매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남성들의 문화를 당장 바꿔놓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들은 변화를 기대하며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까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날도 성 구매를 줄이기 위해 성을 사는 남성들이 각종 음란채팅 앱을 사용하지 말도록 하고, 유흥업소를 가는 대신 이성을 사귀기 위해 소통하는 법을 배우도록 권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어느 정도 효과적일 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의견들이 남성 문화에 울림 있는 파장으로 퍼지기를 기대하는 마음들을 함께 내비쳤다.

남성들의 이런 활동은 생각을 공유하는 남성들 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희망이 된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의 남성모임 운영 담당인 윤하람씨는 “이 모임을 보면 우리 사회에도 ‘남성 페미니스트’가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며 “남성모임이 젠더 감수성을 실천하는 ‘새로운 남성성’ 및 ‘다양한 남성성’을 구현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이원준 인턴기자 (고려대 정치외교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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