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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아침을 여는 시] ‘나라’ 없는 나라

입력
2015.07.0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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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섬이 있다면 출근하다 말고 사라져야겠습니다. 친구들에게 남기는 다정한 정표로 시계와 최근에 구입한 핸드폰을 회사 앞 나무벤치 위에 올려두고요. ‘시계는 해욱이에게 주고 핸드폰은 장욱이 형이 가져.’ 이런 짧은 메모도 남기겠어요. 그러면 사랑하는 이들이 아름다운 야자수 아래 오수를 즐기고 있는 나를 찾아오겠지요.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20세기 이후 인류 최대의 비극은 나라 밖이 사라진 “완전하게 조직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옛날 동화 속 가난하고 운 좋은 청년은 사랑하는 공주와 함께 국경을 넘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았다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국경을 넘으면 다른 나라, 다른 경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거든요. 이제 나라 없는 장소는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청년과 공주는 난민 신청을 해야 하거나 불법체류자로 송환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낡은 세계 속으로 이미 사라져버리고 없는 원시공동체나 나라 밖의 공간을 몽상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요. 시인의 꿈은 시대착오적인 게 아닙니다. 전혀 낭만적이지도 않고요. 오히려 그의 꿈은 정확하게 아름답습니다. 그는 국경과 경계가 계속해서 지워지는 장소를 찾고 있으니까요. 시인은 그 ‘나라’ 없는 나라가 사실은 남태평양이 아니라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 알려주는 것만 같습니다.

아, 그런데 시인님, 참치 말고 통조림으로 만들 수 없는 물고기가 뛰는 섬으로 만들어주세요! 몰려온 참치잡이 배들로 시인의 섬이 쑥대밭이 될까 두려워요.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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