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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현장에서 '경계는 없다' 소리 없는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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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현장에서 '경계는 없다' 소리 없는 외침

입력
2014.08.2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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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가 등 7개국 작가 12명, 민통선 안팎 시설 전시공간 활용

2014년 리얼 DMZ 프로젝트

최재은의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 월정리 역사에 설치한 네온사인 작품이다.
최재은의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 월정리 역사에 설치한 네온사인 작품이다.

분단으로 끊어진 경원선 철도의 남한 지역 최북단은 강원 철원의 월정리 역이다. 군부대 옆 역사 건물은 텅 빈 채 녹슨 화물 열차 잔해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이 버려진 공간에 미술이 개입했다.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고 영어로 쓴 파란 네온 조명이 건물 내부 바닥에서 빛난다. 바로 옆 방의 스피커에서는 판문점에서 근무하는 유엔군 병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분단 상황을 설명하는 목소리가 ‘경계는 없다’는 소리 없는 외침과 대조를 이루는 이 작업은 올해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설치미술 작가 최재은의 작품이다.

철원의 비무장지대(DMZ) 접경 지역에서 펼치는 미술 작가들의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2014 가 31일 시작한다. 화랑이나 미술관 전시와 달리 철원 현지의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안과 밖에 장소 특정적 작품을 설치해 이동하면서 보는 전시다. 민통선 인접 양지리 마을의 방공호 등 시설과 한국전쟁 당시 미군 발칸포기지가 있었던 소이산(해발 362.3m), 민통선 안 철원평화전망대 등을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첼리스트 이옥경이 양지리 마을의 문 닫은 정미소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첼리스트 이옥경이 양지리 마을의 문 닫은 정미소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2012년 안보관광 코스에 작은 전시로 출발했다. 3회째인 올해는 7개국 작가 12명이 참여해 9월 27일까지 설치, 영상, 사진, 퍼포먼스 등을 선보인다.

양지리 마을로 간 작가들은 농사 지으며 사는 주민들의 일상과 군사적 긴장이 공존하는 현실을 해석하는 작업을 했다. 플로리안 헤커는 비상시 주민대피소인 방공호 안에 전자음과 합성음을 이용한 실험적인 사운드를 설치한다. 버려진 곡물창고에서는 핵전쟁에 대비해 스웨덴 농가를 핵 벙커로 개조하는 장면을 기록한 존 스코그의 영상이 돌아간다. 첼리스트 이옥경은 문 닫은 정미소에서 퍼포먼스를 해 죽은 공간을 깨운다.

한 달째 마을에 살고 있는 아드리안 비야 로하스는 주변에서 구한 호박 등 농작물과 점토로 만든 십자가상을 숙소 바깥 벽에 세웠다. 동료들과 팀을 이뤄 유랑극단처럼 떠돌면서 현지의 자연 재료로 작업을 하는 그는 마을 전체를 극장처럼 연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주현은 로하스의 숙소 마당에 각목으로 엮은 굴집을 설치했다.

노동당사 맞은편의 소이산은 용도 폐기된 지하 벙커와 진지가 산 전체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다. 드넓은 철원평야와 멀리 북한의 평강고원이 보이는 이 산 꼭대기에 앨버트 삼레스는 무대를 축소한 조형물을 설치했다. 각각 두 명만 서도 옹색한 3개의 세트에서 철원 지역 청소년들이 춤 퍼포먼스를 하며 분단이라는 불편한 현실을 몸으로 전달한다. 벙커 안에 설치된 구정아의 작품은 역사를 조망하는 인물을 보드를 타는 모습으로 벽에 드로잉하고 반짝반짝 비치는 스테인리스 스틸 테이블을 놓아 분단 현실을 넘어선 또다른 리얼리티를 상상하게 만든다.

앨버트 삼레스의 '평면 위의 무용수들'. 소이산 정상에 설치했다.
앨버트 삼레스의 '평면 위의 무용수들'. 소이산 정상에 설치했다.

헌병 검문소를 몇 차례 통과해서 들어가는 민통선 안 평화전망대와 DMZ평화문화광장, DMZ평화문화관에서도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토마스 사라세노는 평화전망대 실내에 360도 회전하는 망원경을 설치해 분단으로 제한된 시야의 확장을 권한다. DMZ평화문화관에는 전쟁과 분단에 대해 서울과 철원의 어린이들을 인터뷰한 베트남 작가 딘 큐 레의 영상 등을 전시한다.

전시 기간 중 서울과 철원을 왕복하는 투어버스가 다닌다. 화요일과 추석 연휴를 빼고 매일 한 차례, 연계 전시가 진행 중인 아트선재센터에서 오전 8시 30분 버스가 출발한다. 참가하려면 온라인(www.realdmz.org)으로 미리 신청해야 한다.

철원=글ㆍ사진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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