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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 미래에 대처하는 법: 불확실성을 즐겨라

입력
2015.05.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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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한국일보에 필자의 이름을 걸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컬럼을 게재하기로 하고 제일 고민이 된 것은 첫 번째 칼럼의 주제를 고르는 것이었다. 신문사의 특성상 시사성을 고려한다면 최근 가장 이슈가 되는 미래 기술이나 트렌드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첫 번째 글이라는 상징성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필자가 고른 첫 번재 칼럼의 주제는 평소에도 필자가 마음 속으로 항상 다짐하고 있고, 아이들에게도 강조하는 이야기로 정했다. 바로 미래의 본질적인 특징인 “불확실성”에 대한 것이다.

산업사회는 효율성과 예측가능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성공적인 아이디어나 제품을 가지고 불량품 없이 대량생산하는데 최적화되어있다. 이것은 제조업 분야의 기업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의 열과 행이 잘 맞추어진 의자와 책상에 앉아서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것이나, 잘 짜여진 승진의 법칙에 의해 진행되는 대학교수들의 진급방식, 급수에 따라 연공서열이 정해져 있는 공무원 등, 순서에 입각해서 차근차근 올라가는 정리된 방식에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 과거처럼 안전하고 안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불확실성을 즐겨라. 그것이 미래사회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가장 좋은 비결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불확실성을 즐겨라. 그것이 미래사회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가장 좋은 비결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세상과의 연결과 상호의존성이 높아지고, 모호함도 많아지는 상황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는 일이 이제는 비일비재하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가? 더 큰 문제는 현재의 시스템이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커다란 기업이나 조직들은 복잡하지만, 분명한 문제는 잘 풀어낸다. 그렇지만, 간단해도 모호한 문제는 잘 풀어내지 못한다. 불확실성은 어떤 변수를 정의는 했지만, 그 가치를 잘 모를 때 발생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모호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이나 조직은 두려움을 느낀다. 과거에는 사다리를 오르듯이 모두가 예측가능한 형태의 앞날을 보면서 전진했지만, 이제는 계속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고, 이것들을 배우고 적응하지 못하면 안되는 압력에 시달린다. 일자리의 환경은 계속 바뀌므로 지속적인 적응이 필요하며, 어떤 특정 산업에서 일자리를 정년까지 보장받는 것은 꿈꾸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불확실성이 증가하면,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보수적이 된다. 과거를 돌아보고, 이전의 단순했던 시절들의 생각을 하면서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시절은 오지 않는다. 기업들도 이런 딜레마에 빠져서 완전히 새로운 전략을 설정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최고경영진들은 필사적으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모델이 없다. 어떤 모델을 베끼기 보다는 새로 만들어야 한다. 어쩌다가 다른 산업분야에서 베낄만한 모델을 찾아도, 우리의 산업에 잘 동작할지는 의문이며, 그것이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도 우리들이 알고 있는 조직과 기업의 경영도 더 이상 이 시대와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오랫동안 일해서 얻게 되는 그런 커리어가 지배하던 시대는 지났다. 영속할 것 같던 규칙들도 깨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더 이상 명확하게 규정된 비즈니스 모델과 기업이나 조직의 승진 사다리를 꿈꾸는 것은 단지 과거에 대한 향수일 뿐이다. 산업과 산업 사이의 경계를 짓는 격벽을 무너뜨려야 하며, 무엇이든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미래가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 보인다.

그렇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는 엄청난 기회의 시대가 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더 이상 진입하기 힘든 견고한 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를 포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하면 된다.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관찰되는 양태가 있다. 비관주의자들은 언제나 과거와 달라진 현재를 한탄하고, 변화를 가로막으려 든다.

그러나, 그런다고 미래로 가는 기차가 멈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보다 현실적인 접근은 변화를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커다란 쓰나미가 지속적으로 온다면 이를 대비해서 둑을 쌓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언젠가 둑을 넘거나 둑을 터뜨릴 쓰나미라면, 둑이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은 결국 쓰나미에 쓸려버릴 것이다. 그러나, 쓰나미가 오는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배를 준비하고, 배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은 살아남고 새로운 환경에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하는 것인지에 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불확실성을 즐겨라. 그것이 미래사회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가장 좋은 비결이다.

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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