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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차 징크스' 대통령 측근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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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차 징크스' 대통령 측근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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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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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정윤회 동향문건 유출로 드러난 대통령 측근 간 암투는 한국형 권력비위의 전형과 거리가 멀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의혹이 가라 앉지 않는 건 그런 기시감 때문일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과거 정권에서 늘 그런 모습을 봐 왔고, 이번 사건의 전개 양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뿐 만이 아니다. 과거 정권에서도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측근을 힘 없는 어린애 취급하며 경고음을 간과했다. 결국 측근들은 각종 파문을 일으키며 정권을 레임덕(정권 말기현상)에 빠뜨리는 5년짜리 권력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정치평론가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모든 정권들이 측근에서 촉발된 비위에 발목을 잡혔다”고 말했다. 정권운명을 가름하는 측근의 10가지 모든 것을 들여다 봤다.

①혜성 측근은 없다: 박철언 김현철 박지원 이광재 이상득 박영준….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의 눈과 귀 역할을 하며 권력을 주무른 측근들이다. 대통령과 맺는 인연은 혈연 지연 학연 비서 등 다양하다. 측근 중에도 권력과 거리가 가까우면 오른팔, 최측근, 황태자, 소통령, 실세로 불린다. 제도권 밖에서 움직이는 측근은 궐밖대신, 이른바 비선이 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통령과 동고동락을 했고 부담스런 정보도 공유, 동지적 신뢰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혜성처럼 등장하는 측근은 없는 셈이다.

②유망인물에 정치벤처: 될만한 신생기업에 투자하듯 일찌감치 대통령 싹이 보이는 인물 주변으로 가 측근이 되기도 한다. 참여정부의 이광재 전 강원지사, 안희정 충남지사가 이런 경우다. 둘은 1992년 총선에 낙마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좌하며 캠프에서 기획과 정무를 담당하며 좌희정 우광재 소리를 들었다. 국민의 정부에서 동교동계 가신을 제치고 김대중(DJ)대통령 오른팔이 된 박지원 의원 또한 1982년 미국에 망명 생활하던 DJ에게 집중 투자한 경우다. 이번 논란이 된 정윤회씨와 청와대 3인방 역시 대통령과 정치 출발선을 함께 했다.

③심리적 궁합 중요: 측근에서 최측근 그리고 실세로 부상하는 데는 신뢰관계 말고도 대통령과 통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심리적 궁합이 중시되는 이유다. 어떤 때는 사리의 옳고 그름보다 주군, 정권의 이익의 많고 적음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때로는 고초도 감내해야 한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대통령 곁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절대적 충성심과 함께 정무적 능력까지 갖춘 인물이 역사적으로 최측근이었다”고 말했다. 이승만 정권의 이기붕, 노태우 정권의 박철언, 김영삼(YS) 정권의 김현철, DJ정권의 박지원이 대표적인 경우다.

④영향력은 통치스타일이 좌우: 측근의 영향력은 대통령 통치스타일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YS, DJ 때는 측근의 사적 라인이 다양해 서로 충성경쟁을 했다. 참여정부는 사적 라인에 투명성을 도입, 공식 직책을 주려 했다. 그러나 측근 의존도가 높을수록 권력은 대통령으로 가는 통로를 장악한 측근들이 갖게 된다. 이번 비선라인 의혹도 이런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에서 시작된 측면이 크다. 그러나 대통령들은 대체로 측근을 그저 우직한 직원, 뛰어난 참모로만 본다. MB도 박영준 전 차관에 대한 경고음이 울릴 때마다 “그 친구가 무슨 실세야”라고 말하곤 했다.

⑤측근의 권력은 인사: 권위주의 정권시절 측근들은 이권에 직접 개입했다. 그러나 당과 청와대의 분리, 정치자금 투명화 등으로 권력의 크기는 좁아졌다. 측근들이 그나마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권력은 인사로 국한된다. MB정부 초기 정두언 의원과 이상득(SD) 전 의원의 갈등, 이번 문고리 3인방과 박지만 EG회장의 암투 의혹의 공통점도 인사권 갈등이다. 최진 소장은 “인사야말로 돈 못지 않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힘”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 영상국무회의장에서 열린 제53회 국무회의에 최경환 부총리(오른쪽) 김기춘 비서실장과 입장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 영상국무회의장에서 열린 제53회 국무회의에 최경환 부총리(오른쪽) 김기춘 비서실장과 입장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⑥불가피한 권력암투: 쪼가리 권력이라도 잡기 위한 측근 간 갈등은 늘 이어졌다. 국민의 정부 초기 신ㆍ구 세력이 청와대 요직을 놓고 다툼을 벌였고, 참여정부에서는 386참모들과 개국공신 여당 실세들이 대결구도를 이루기도 했다. 천정배 의원이 이광재 당시 국정상황실장이 정보와 권력을 독점한다고 경질을 공개 요구하기까지 했다. 윤희웅 민 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측근이 실세가 되는 것은 정치적 장수를 의미하기에, 그들 간 암투는 역사적으로 반복된다”고 했다.

⑦측근의 벽은 친인척: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실세라 해도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대통령 친인척이다. 대통령이 투명하지 못한 부분을 남에게 맡길 수 없다는 점이 친인척에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게 한다. 측근이 친인척에 대한 우려 섞인 조언이라도 대통령에게 던지면 돌아오는 건 돌팔매질 밖에 없다. 문민정부 시절 박관용 비서실장이나 박상범 경호실장이 전격 경질된 것은 현철씨 전횡을 YS에게 보고했다 역풍을 맞은 사례다. 이명박(MB) 대통령 친형 이상득 전 의원과 권력을 다퉜던 한 인사는 “가족과 파워게임을 펼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회고했다.

⑧3년차 측근 증후군: 전두환 정부 이후 모든 정권이 예외 없이 측근 비위로 촉발된 레임덕 증후군에 시달렸다. 5년 임기 정점을 지난 3년 차에 동시다발로 터지면서 권력 누수로 연결됐다. 대통령 권력의 약화가 측근 관리의 실패를 부르고, 측근 간 알력다툼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이번 정권도 레임덕을 피하려 노력하겠지만 이런 사이클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높다. 박상훈 대표는 “그 동안 커튼 뒤에서 불만과 조롱을 일삼던 인물들이 이번 파동을 계기로 곳곳에서 얼굴을 내밀 것”이라며 권력누수가 빨라질 가능성을 점쳤다.

⑨실패한 실세, 성공한 측근: 많은 실세들이 정권교체와 함께 초라한 말로를 맞은 게 우리 정치의 냉엄한 역사다. 그렇다고 모든 측근, 실세가 불명예 퇴진을 한 건 아니다. 문재인 의원은 참여정부 내내 권력의 지근거리에 있었지만 오히려 진정성을 인정받아 대선후보로 부상했다. 박지원 의원도 특유의 정보력과 정치적 역량을 기반으로 살아남은 경우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박 의원은 DJ가 강조한 금귀월래(金歸月來)를 지킬 만큼 성실한데다, 정보수집력과 쟁점을 꿰뚫는 시야 덕에 짧은 정치이력에도 불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했다.

⑩신뢰의 제도화가 대책: 우리 정치는 신뢰보다 경쟁의 역사로 압축된다. 신뢰가 제도화할 기회가 없어 대통령은 소수의 믿을만한 측근을 배치하고 권력을 나누었다. 이런 비공식 채널의 영향력은 특히 정권출범 초기에 막강해 권력의 이너서클 밖에선 대통령의 복심, 멘토를 찾으려는 경쟁까지 벌어진다. 비록 찌라시 수준이라지만 비선의혹을 받은 정윤회씨를 만나는 데만도 7억원이 든다는 루머가 도는 것이 이런 단면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시간이 지나면 사적 라인이 공적 시스템과 경쟁하다 흡수되는 게 보통이다”며 “하지만 어느 정권이든 비공식 라인이 국정을 설계하는 것은 우리 정치의 미스테리”라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청와대.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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