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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기자, 쓰지 못한 이야기] 하늘은 죄가 없다

입력
2016.11.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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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공공기관에서도 근절되지 않는 체불관행은 노동자들 체감온도를 더 높였다.
지난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공공기관에서도 근절되지 않는 체불관행은 노동자들 체감온도를 더 높였다.

사람들은 자주 날씨 탓을 합니다. 흔히들“날씨가 꾸물꾸물해 기분이 안 좋다”거나“날씨가 무더워 너에게 짜증이 난다”고 합니다.

실제로 무더위에 진이 쏙 빠지거나 스산한 날씨에 몸까지 움츠러들 때면 날씨가 밉기도 합니다. 그런데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공공기관이 체불 이유로 날씨 탓을 하고 있다면 납득할 수 있을까요?

발단은 날씨였습니다. 지난 여름 서울에는 폭염특보가 유독 빈번하게 발동됐습니다. 폭염특보가 발령되면 구립 어르신돌봄통합센터에서 일하는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들은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자신이 돌보는 모든 독거노인들의 안전을 확인해야 합니다. 관리사 1명이 맡는 어르신은 30여명. 독거노인들은 폭염에 취약하므로 관리사들은 전화를 걸어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묻고, 바깥 활동을 자제하고 물을 많이 드시라고 당부해야 합니다. 전화를 안 받으면 직접 방문하기도 합니다. 생활관리사들 덕분에 더위에 유난히 취약한 독거노인들은 유난했던 올 여름을 무사히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일은 날이 선선해진 후 터졌습니다. 주5일 시급노동자인 생활관리사들은 올해 잦은 폭염특보 발령으로 무려 15일 동안 휴일 추가근무를 했지만 월급명세서에는 이 휴일 수당이 포함 안된겁니다. 관리사들은 휴일에 1.5시간씩 일한 데 대한 수당 총 20여 만원을 추가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지급해야할 휴일 수당은 관리사 50명 분 1,000만원 정도 됐습니다. 하지만 구립센터에서는 “이미 예산이 빡빡하게 짜여 있어 추가로 줄 예산이 없다”며 그간 관행대로 대체휴일 2일을 쓸 것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관리사들은 휴일로 대체하기엔 너무 큰 액수라 수당으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센터 측에서는 애먼 날씨만 원망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폭염이 이렇게 심하지 않아서 대체휴일로 해결이 가능했는데….”

관리감독기관인 구청과 보건복지부 역시 어쩔 수 없다는 태도였습니다. 이미 예산이 확정돼 있어 추가로 돈을 끌어다 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폭염 특보가 이렇게 많이 발생한 적이 없어 추가 예산을 준비해놓지 못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급할 땐 일을 시켜놓고 월급 줄 때가 되니 애꿎은 날씨 탓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관리사들은 지방고용노동센터에 체불 진정신청을 넣었습니다. 이 센터 근로감독관은 “관리사들이 휴일에 근무를 했다는 것이 입증만 된다면 임금을 돈으로 지급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입니다. 현행법상 임금체불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됩니다. 센터가 형사처분을 받게되더라도 그때도 날씨 탓을 할까요?

100% 정부예산으로 운영되는 복지기관 특성상 추가임금 대신 대체휴무를 제안하는 센터 입장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밀린 임금 20만원이 누군 가에게는 그리 크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 돈이 얼마가 됐든 일을 시켰으면 임금을 줘야 하는 것이 법입니다.

올 여름은 많이 더웠습니다. 하지만 올 여름만 더웠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여름도 더웠고 지지난 여름도 더웠습니다. 관리사들의 추가 근무가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죠. 내년은 더 더워질 거라 합니다. 예산을 확보할 생각은 않고 날씨탓을 하는 주먹구구 행정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습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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