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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신화의 땅 아테네에서 시작된 올림픽 불꽃

입력
2017.11.03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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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그리스 아테네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인수식에서 이희범 조직위원장에게 전달될 성화를 대제사장 카테리나 레후가 채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오후 그리스 아테네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인수식에서 이희범 조직위원장에게 전달될 성화를 대제사장 카테리나 레후가 채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인수단과 동행해 그리스 땅을 밟았다.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서 채화돼 36개 도시를 달린 성화는 그리스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30일 아크로폴리스에 안치됐다. 인수 행사 리허설을 마친 뒤 아테네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서 멀지 않은 언덕 위로 올라가니 웅장하고 신비스러운 파르테논 신전이 위용을 드러냈다. 여인조각상 기둥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에레크테이온 신전, 승리의 여신 아테나 니케 신전 등 기원전 5,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책에서 봤던 고대 그리스 신화의 무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주신(主神) 제우스 몰래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준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매일 간을 쪼여 먹히는 형벌을 받았지만 덕분에 문명의 세상을 밝힌 고대 그리스인들은 불을 신성시 여겨 기원전 776년, 올림피아에서 열린 고대 올림픽 기간 중 제우스신 제단에서 피워 놓았는데 이것이 성화의 기원이다. 도시 국가 간 전쟁이 빈번하던 시기, 올림픽이 열린 기간만큼은 평화를 약속했다. 1896년 아테네에서 부활된 제1회 올림픽에서는 성화가 재현되지 않았다. 근대올림픽이 부활된 지 32년이 지난 1928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9회 대회에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대회 전 성화를 들고 뛰기 시작한 ‘봉송’은 1936년 제11회 베를린 대회부터 시작됐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온 성화는 31일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린 아테네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서 성스러운 인수식을 치렀다. 그저 근대 올림픽 발상 국가로서 개최국에 전달자 역할을 하는 요식적인 행위이겠거니 하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그들은 동작 하나 하나에 고대 성화 제식의 영혼을 불어 넣는 의식을 치렀다. 대제사장 역할을 맡은 그리스 여배우 카테리나 레후와 여사제들이 성화를 들고 입장해 고대부터 진행된 올림픽의 가치와 역사를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알렸다. 이어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 한국에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긴 김기훈 울산과학대 교수의 손을 거쳐, 그리스에서의 마지막 성화 봉송주자는 그리스인이 담당하는 원칙에 따라 알파인 스키 선수 이와니스 프로이오스에게 전달됐다. 프로이오스는 트랙을 반 바퀴 돌아 중앙 무대에 설치된 성화대에 불을 붙였고, 평화의 상징 흰 비둘기를 하늘로 날려보내는 여신들의 장엄한 퍼포먼스가 객석을 압도했다. 레후가 성화봉에 불을 붙여 카프랄로스 그리스올림픽위원회 위원장에게 성화를 건넸고, 카프랄로스 위원장이 이를 다시 이희범 조직위원장에게 건네면서 인수 행사는 막을 내렸다. 인수 행사의 총감독을 맡은 아르테니스 이그나티유 감독은 1988년 서울올림픽 성화 인수행사 때 클라디아 역할을 맡았다. 클라디아는 대사제가 성화를 채화할 때 옆에서 올리브 가지를 들고 있는 사제다. 인터뷰 도중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이희범 위원장이 나타나자 이그나티유 총감독은 이 위원장에 돌 2개를 건네며 “채화 시 의식용 불을 붙일 때 쓰는 올림피아 언덕 근처 강가의 돌"이라고 설명한 뒤 "여태까지 한 번도 인수단에 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드리겠다"고 의미를 부여하며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성화 봉송은 역사적으로 나치의 아이디어라는 비판도 있었고 정치적ㆍ상업적으로 이용된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아테네에서 일련의 의식을 보며 고대 그리스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평화의 상징인 것만은 분명하게 와 닿았다.

그렇게 역사적인 장소에서 역사적인 의식을 거쳐 채화ㆍ인수된 성화는 지난 1일 우리나라에 들어와 101일 간의 봉송 길에 올랐다. 이번 성화봉송 행사의 슬로건은 '모두를 빛나게 한다'는 의미의 '렛 에브리원 샤인(LET EVERYONE SHINE)'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올림픽 정신을 떠올리며 평창올림픽의 열기가 불처럼 활활 타오르길 기대해본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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