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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안병하 치안감과 전두환

입력
2018.03.11 15: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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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이른 1980년 5월25일 최규하 대통령이 광주 전투교육사령부를 방문했다. 동행한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치안을 맡은 안병하 전남도경찰국장(경무관)에게 시민군을 진압하라며 발포명령을 내렸다. 안 국장은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거부했고 외려 경찰이 소지한 무기를 모두 회수했다. 신군부에 눈엣가시였던 그는 보안사에 연행돼 고문을 받고 쫓겨난 뒤 후유증에 시달리다 1988년 사망했다.

▦ 그 후 안병하는 철저하게 잊혀졌다. 김종필, 김형욱, 윤필용, 이희성 등과 육사 동기(8기)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화랑무공훈장을 두 번이나 받은 ‘전쟁영웅’인데도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했다. 유족들이 명예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고,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뒤 2005년 국가유공자로 인정돼 서울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다. 그때까지 정권의 눈치를 보던 경찰은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5ㆍ18 진상규명을 다짐하자 뒤늦게 첫 ‘경찰영웅’ 칭호를 수여하고 특진을 추서했다. 문 대통령은 10일 열린 안 경무관의 치안감 추서식에 “기쁘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안 치안감을 ‘무능한 경찰’로 폄훼했다. (1권 494P) “광주사태 당시 계엄군이 시위진압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전남경찰국장의 중대한 과실 때문”이라고 했다. 초기에 전남대, 조선대 시위 때 경찰이 강력히 진압했으면 사태가 커지지 않았을 거라는 주장이다. 신군부가 정권장악을 위해 비상계엄 선포 등 시나리오를 만든 사실이 후에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경찰에 책임을 돌린 것이다.

▦ 회고록에서 5ㆍ18을 왜곡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된 전 전 대통령이 두 차례에 걸친 검찰 소환 통보에 불응하고 있다. 그는 최근 제출한 진술서에서 “5ㆍ18은 폭동이고 북한이 개입했으며, 헬기 사격은 없었다”는 등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최근 국방부 특별조사위의 헬기사격 인정 발표조차 묵살했다. 그리 당당하면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검찰은 통상 세 차례 출석을 요구해 불응하면 체포영장을 발부 받을 수 있다. 검찰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사안의 중대성을 따져 절차대로 처리하면 된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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