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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살처분 닭들, 10톤들이 통에 마대째 채워져 땅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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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살처분 닭들, 10톤들이 통에 마대째 채워져 땅속으로

입력
2016.12.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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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엔 거미줄만… 농장주들 망연자실

살처분 작업 민간 용역사에 의뢰

동원 인력 불규칙… 교육도 부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관계자들이 25일 경남 양산시 상북면의 한 산란계(알 낳는 닭) 농가에서 살처분 작업을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4일 조류인플루엔자(AI) 의심 신고가 들어온 양산시 농가를 검사한 결과 H5형 AI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양산=연합뉴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관계자들이 25일 경남 양산시 상북면의 한 산란계(알 낳는 닭) 농가에서 살처분 작업을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4일 조류인플루엔자(AI) 의심 신고가 들어온 양산시 농가를 검사한 결과 H5형 AI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양산=연합뉴스

성탄절인 25일 오전 9시 경남지역 최대 산란계 농가 밀집지역인 양산시 상북면 한 농장. 기온이 뚝 떨어진 추운 날씨 속에서 굴삭기가 거친 기계음을 힘겹게 내뱉으며 딱딱한 땅을 파고 있었다. 살처분한 닭을 매몰할 웅덩이를 만드는 동안 닭은 10여마리씩 마대에 담겨 살처분 용기로 옮겨졌다. 용기에 이산화탄소가 주입되자 닭들의 비명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힘없이 고꾸라지며 죽어나간 닭들은 다시 마대째 매몰용 강화플라스틱(FRP) 통으로 옮겨졌다. 10톤들이 FRP 통은 3분의 2쯤 땅에 묻혔다. 나머지는 동물 사체가 분해되며 나오는 메탄가스 처리 등을 위해 밖으로 나와 있었다. 통 안에는 소독을 위한 석회가루, 톱밥 등이 채워지고 통 위로는 비닐이 덮였다.

이 농장의 주인 A(67)씨는 전날 오후 닭 6마리가 평소와 달리 기운이 없는 것을 보고 방역당국에 조류인플루엔자(AI) 의심신고를 했다. 경남 첫 사례였다. A씨는 “전국에 AI가 하도 터져서 매일 노심초사하며 하루 두 번씩 닭의 상태를 살폈다”고 말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남도 축산진흥연구소는 이 농장의 닭에 대한 중간검사에서 H5형 양성 반응을 확인해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정밀검사를 의뢰하고, 살처분을 결정했다. A씨는 “30년 동안 닭을 키웠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다. 어제까지 멀쩡히 기르던 닭들을 모두 살처분하다 보니 그야 말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달 16일 전남 해남에서 AI가 발생한 지 40일이 지나도록 확산 추세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일선 농가가 패닉에 빠졌다. 끝없는 살처분에 심리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고, 생활 터전 붕괴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국내 근로자의 살처분 기피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부득이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늘어, 언어 소통 장벽과 관리 감독 부실로 인한 부작용도 우려된다.

AI로 16만마리가 넘는 닭이 모두 살처분 된 충남 천안시 풍세면 산란계 농장은 이날 한겨울 추위까지 더해져 ‘유령의 집’을 방불케 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하루 15만개의 달걀을 쏟아내며 시끌벅적했던 3,300㎡ 규모의 닭장은 이제 닭 대신 거미들이 점령했다. 농고를 나와 영농후계자로 28년 전 양계업에 뛰어든 이 농장 주인 B(53)씨는 이번까지 벌써 3번째 AI 살처분을 겪어야 했다. B씨는 “그 동안 겪은 AI 중에 이번이 최악이다. 이건 대형 재해다”라며 “매번 철새가 오고 난 뒤 AI가 퍼지는 패턴이 똑같은데 예방이나 방역은 대책이 없는 것 같다”라고 답답한 마음을 쏟아냈다. 그는 “생계가 달려 있기 때문에 방역을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철저히 하는데 농장이 잘못하고 있다고 하는 걸 보면 억울하고 화가 난다”고도 했다.

국내 최대 가금류 사육단지인 전남 나주지역은 최근 농장 간 수평 전염 가능성이 커지면서 초긴장 상태다. 나주지역은 전체 151만마리의 산란계(30개 농가)와 363만7,000마리(2,428농가)의 육계, 166만8,000여마리(100개 농가)의 오리를 키우고 있는 전국 최대 닭ㆍ오리 산지다. 특히 종오리(씨오리) 농장을 중심으로 AI가 확산돼 오리산업 붕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AI로 농장에서 기르던 오리 1만7,000여마리를 모두 살처분한 이 지역 농장주인 C(56)씨는 “복구하는데 1년씩 걸린다.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충북 음성군에선 살처분 인력이 부족하자 음성군 공무원들이 자원해 독감 백신을 맞고 AI 인체 감염에 대비해 타미플루까지 처방 받은 뒤 현장에 투입됐다. 이들이 24일부터 이틀간 살처분한 닭은 1만7,000여마리에 달했다.

AI 피해가 전국을 휩쓸고 있지만 살처분 현장에 투입되는 외국인 노동자 관리는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다. AI가 확산되기 시작한 지난달 22일부터 경기도내 AI 살처분ㆍ매몰 작업에 투입된 누적인원(9,463명) 가운데 베트남과 태국, 네팔, 카자흐스탄 등의 국적을 가진 근로자가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살처분 농가 1곳당 작업자 15~20명이 투입되는데 지난달 초에는 이 가운데 절반 가량이 외국인이었다. 외국인들이 살처분에 동원되는 것은 국내 노동자들이 기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도 등 방역당국은 정작 살처분에 동원되는 외국인 통계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살처분 작업은 해당 지자체가 민간 용역회사에 의뢰해 이뤄지고, 살처분 때마다 동원인력이 불규칙한 탓이다.

보건당국의 AI 인체 감염 안내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언어 장벽으로 현장에서 외국인에 대한 관리와 통제도 어렵다. 더욱이 살처분 작업이 끝난 뒤 이들에 대한 사후 관리도 이뤄지지 않아 농장 간 전파의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양주시 관계자는 “이번 AI는 동물과 사람 간 전파 가능한 인수공통 감염병이기 때문에 살처분에 동원된 외국인 노동자가 거리를 그냥 활보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훈 경기도 동물방역위생과 팀장은 “외국인 근로자가 살처분 작업 후 바로 다른 농장으로 이동해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천안=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나주=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양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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