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36.5] 정의가 복지가 될 때

입력
2017.05.29 20:00
0 0
지난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한 시민이 ‘이게 나라다’는 글귀를 펼쳐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한 시민이 ‘이게 나라다’는 글귀를 펼쳐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련의 조치들이 내려졌을 때, 가장 인기 있던 댓글 중에 하나가 “증세 없는 복지 감사합니다”였다.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지시, 세월호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 지시, 피우진 중령의 보훈처장 임명, 윤석열 검사의 서울중앙지검장 임명 등의 과정에서 비슷한 반응을 여러 건 본적이 있다.

오늘날 복지(福祉)의 뜻은 금전적으로 환원될 수 있는 여러 정책적 지원이나 서비스로 축소돼 있지만, 복지의 넓은 의미가 ‘행복한 삶’ ‘삶의 질을 높이는 것’임을 감안할 때 이런 반응은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가 개, 돼지가 아닌 이상(개, 돼지에게 미안하지만), 문 대통령의 행정지시로 혜택을 받는 당사자가 소수라 해도 도대체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었던 ‘정의’라는 것이 돌고 돌아 자리를 잡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국민의 행복감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정의의 개념 또한 형법적인 의미로 축소(법무부의 영문 표기가 ‘ministry of justice’이듯)되곤 하나, 넓은 의미로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가 아닌가.

인간이 불행을 그나마 견딜 수 있는 전제는 그 불행이 피할 수 없었던, 즉 어쩔 수 없었던 사건이었다는 체념 속에서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시스템만 정상적이었다면 구할 수 있었던 세월호의 희생자들, 5ㆍ18 영혼들을 앞에 두고 부를 수 없었던 노래 한 곡, 정권에 대한 수사를 원칙대로 하려고 했다거나 블랙리스트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좌천된 검사와 공무원들의 사건들을 돌아보면 그 불행들은 피할 수 있었던, 국가가 만들어낸 불행이어서 더욱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좋든 싫든 국가를 자아의 사회적 확장이라고 볼 때,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모욕을 지켜보고 애도의 노래 한 곡 부르지 못했던 우리는 행복의 수단, 즉 자존감을 찾을 수 없었다.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을 믿을 수 있게 하는 지극히 평범한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이, 우리가 느끼는 고독의 핵심적인 매듭”이라고 언급했듯이, 도래하지 않는 정의 앞에서 한국 사회 또한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수단이 없었으니 슬프고 고독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차별 없는 세상을 언급 한 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평등, 공정, 정의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 뛰지만, 기회가 불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지 않으면 결과도 정의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정의로운 결과’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 생각된다.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정의는 경제 정책까지 아우르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통찰로 확대돼 왔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그 점을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지시한 뒤, 민간 기업들 중에서도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롯데, 농협 등이 그런 계획을 밝혔다. 우리는 여기에서도 세월호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만큼이나 늦게 찾아온 정의를 발견할 수 있다. 뒤집어 보면 그 동안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던 셈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익이 가계의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국민총소득 중 가계소득 비중 1998년 72.8%→ 2015년 62.0%, 기업소득 비중 13.9%→ 24.6%)은 한국 경제를 몰락시켜온 오랜 고질병이었는데도 말이다.

존 스타인벡의 걸작 ‘분노의 포도’에서 주인공의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한다.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할 생각이 있느냐가 문제죠.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못해요… 하지만 할 생각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내겠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짧은 기간 우리가 배운 가장 큰 가치는, 그렇게 하기로만 하면 우리는 정의에 다가갈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존엄해질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닐까.

이진희 정책사회부 기자 rive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