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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듯 야근ㆍ툭하면 휴일 근무에도 초과수당 0… 입사 계약 때 포괄임금제 '올가미'

입력
2015.03.2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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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에 안테나를 납품하는 하청업체 사무직 직원 김모(33)씨는 밤 11시 넘어 퇴근할 때가 잦다. 구매 부품 정리 등으로 하루 13시간씩 일하지만 초과근로수당은 한 푼도 못 받는다.

김씨의 기본급은 시급으로 1만3,000원가량이다. 평소 근무시간을 적용할 경우 법정근로시간인 하루 8시간(주 40시간) 초과분에 대해서는 시간당 연장근로수당(통상임금의 1.5배) 1만9,500원을, 밤 10시부터는 통상임금의 50%가 더 붙는 야근수당이 더해져 2만6,000원을 받아야 한다. 정기상여금을 받지 못해 기본급만을 통상임금으로 치더라도 김씨는 산술적으로 하루 10만4,000원을 받지 못하는 셈이다. 신차 출시로 물량이 몰리면 주말에도 근무하지만 역시 휴일수당도 없다. 입사 3년차인 김씨는 이런 ‘저녁 없는 삶’으로 연봉 3,000여만원을 받는다. 그는 농담조로 “현대차 생산직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현대차 본사 대리 A(35)씨는 연장근로ㆍ야근수당으로 월 평균 50여만원, 휴일수당 13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입사 8년차 A씨의 연봉(기본급+상여금)은 7,700만원이다. A씨는 “잔업이 없어 보통 오후 6, 7시쯤 퇴근한다”며 “법정수당을 다 받는 공장 생산직 노조원들은 한창 바쁠 때면 연 1,000만원쯤 더 받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근로소득 격차가 확연한 것은 김씨가 미리 정해진 연장근로ㆍ야근수당 등을 급여에 포함해 12개월로 나눠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로 근로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입사 당시 ‘시간외수당은 연봉에 포함된다’는 식으로 계약했다”며 “막상 늦은 밤까지 일해도 대가가 통장에 안 찍혀 스트레스만 쌓인다”고 털어놨다.

포괄임금제는 장시간 노동 관행을 낳고, 근로소득 불평등을 키우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조가 있고, 노무관리가 잘 되는 대기업보다는 주로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광범위하게 포괄임금제가 적용돼 임금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며 “통상임금처럼 향후 노동계가 다룰 핵심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편법근로 관행의 심각성을 알고 가이드라인을 검토하고 있지만 경영계의 반발 때문에 쉽게 손대지 못하고 있다.

법적 근거도 없는 포괄임금제는 1970년대부터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인정돼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수당을 둘러싼 노사간의 분쟁이 급증하자 대법원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2010년 대법원은 “감시ㆍ단속 업무 등 근로시간 계산이 어렵거나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적용이 힘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포괄임금 계약 체결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계약에 합의했더라도 약정된 수당이 법정수당에 미달하면 차액을 지불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여전히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무분별하게 포괄임금을 적용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포괄임금제는 사업자에게 추가 비용 부담을 지워 과도한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취지로 마련된 근로기준법의 가산임금제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초과근로가 고정적으로 발생하는 업체의 41.4%가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시간이 명백히 통제돼 임금지급 기준이 나오는 사무직군 등에 포괄임금계약을 적용하는 것은 대법원 판결로 봐도 무효”라고 지적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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