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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ㆍ인당수ㆍ안흥량과 함께...뱃사공 恨 서린 바닷길 4대 험로

입력
2014.12.0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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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유일한 포구 대명항 일몰 장관

퇴역 함정ㆍ초계기 모인 함상공원

약암 온천 문수산 삼림욕장도 유명

손돌묘가 있는 경기 김포시 대곶면 덕포진에서 바라본 강화해협의 손돌목. 물길 한가운데 하얀 포말이 이는 손돌목에선 물살이 천둥 치는 듯한 소리를 내며 격하게 휘돈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손돌묘가 있는 경기 김포시 대곶면 덕포진에서 바라본 강화해협의 손돌목. 물길 한가운데 하얀 포말이 이는 손돌목에선 물살이 천둥 치는 듯한 소리를 내며 격하게 휘돈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영화 ‘명량’의 현장인 울돌목은 전남 해남군 화원반도와 진도 사이의 좁은 해로다. 남해와 서해의 바닷물이 들락거리며 일으키는 거센 조류가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있게 만들었다.

울돌목과 함께 심청이 공양미 300석에 몸을 던졌다는 황해도 인당수, 충남 태안 안흥량, 김포의 손돌목 등을 우리 바닷길 중에서 가장 험난한 곳이라 이야기한다. 이른바 4대 험로다. 그 중에 안흥량과 손돌목은 세금으로 거둔 곡식 등을 서울(개경·한양)로 운반하는 뱃길이라 2대 험로로 따로 구분됐다. 특히 손돌목은 세곡을 서울로 운반하는 조운선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해역이었다. 인천 앞바다에서 마포나루까지 올라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손돌목은 경기 김포시와 인천 강화군 사이 남북 방향으로 흐르는 강화해협 가운데 있다. 바다로 돌출된 강화군 광성보 앞에 물살이 센 곳이 손돌목이다. 광성보와 건너 편 지형 모두 바다로 돌출된 모양새다. 20㎞ 길이 강화해협은 좁고 길게 흘러 강처럼 생겼다 해 염하라고도 부른다. 폭이 넓은 곳은 1㎞에 이르지만 좁은 곳은 불과 200~300m 정도다.

김포군지에 따르면 강화해협 폭은 김포 대명과 강화 초지 사이 1,180m이던 것이 차츰 좁아져 손돌목에서 570m까지 줄어든다. 폭이 급격하게 좁아지면서 3노트에 이르는 강한 조류가 소용돌이 친다. 강화부지에는 ‘물 흐름이 빠르고 격렬해 아주 위험한 곳으로 이름 높다. 삼남(충청·전라·경상)의 선박이 이 곳으로 모인다. 한양으로 가려는 자는 모두 그렇다’고 기록돼 있다. 해동지도에도 손돌목이 거론된다. 손돌목은 실제 손꼽히는 난파 위험지역이었다. 태조 4년(1395년)에 조운선 16척, 태종 3년(1403년)에 30척, 태종 14년(1414)에 60척이 각각 침몰한 기록이 남아있다.

손돌목이 있는 강화해협은 예로부터 해상교통의 중심축이었다. 조선시대 조운선이 이 곳을 통해 한강으로 진입했으며 군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개항기 때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를 치른 곳이기도 하다. 평시에는 세곡을 운반하는 뱃길로, 전시에는 적을 방어하는 진지로 사용됐다. 경제적 군사적 요충지였다.

급한 조류인 손돌목에는 그 이름을 있게 한 손돌이란 인물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눈발이 흩날린 4일 손돌목을 굽어 볼 수 있는 경기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덕포진 사적지 내 손돌묘를 찾았다. 전설 속 손돌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철조망을 넘어 바다 쪽에 물살이 부서지는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천둥치는 소리와 흡사했다. 강화 광성보 앞 바다에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휘몰아치는 거센 물살이 내는 소리였다. 손돌묘에서는 강화 덕진진, 광성보, 김포 덕포진, 부래도 등과 S자로 굽이치는 강화해협이 한눈에 보였다.

손돌묘는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달아나던 왕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은 사공 손돌의 넋을 기리는 가묘다. 강화해협과 손돌목이 바라다 보이는 덕포진이 끝나는 언덕에 있다.

구전돼 온 손돌의 전설은 이렇다. 1231년 원나라(몽골)가 고려 땅을 침입하자 고종은 화친을 내세워 일단 회군시켰으나 계속 부당한 조공을 요구하자 결사 항전할 것을 결심하고 1232년 원나라의 2차 침략 때 강화도로 천도하게 됐다. 고종이 조정을 이끌고 개경을 떠나 사공 손돌의 배를 타고 예성강 벽란도를 거쳐 임진강과 한강 하류를 지나 강화도로 갈 때였다. 현재 대곶면 신안리와 강화도 광성진 사이의 해협이 협소하고 급류인 지금의 손돌목에 닿게 됐다.

매년 음력 10월 20일을 기해 덕포진 내 손돌묘에선 손돌의 넋을 기리는 진혼제가 열린다. 김포문화원 제공
매년 음력 10월 20일을 기해 덕포진 내 손돌묘에선 손돌의 넋을 기리는 진혼제가 열린다. 김포문화원 제공

이곳은 앞이 막힌 듯이 보이는 지형으로 처음 가는 사람은 뱃길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웠다. 천도하는 고종은 심기가 불편한 나머지 뱃길도 없는 곳을 향해 노를 젓는 사공 손돌을 의심해 수차 뱃길을 바로잡도록 하명했다. 허나 손돌은 “보기에는 앞이 막힌 듯 하오나 좀 더 나아가면 앞이 트이오니 폐하께서는 괘념치 마옵소서”라고 아뢨다.

그러나 마음이 초조했던 고종은 손돌의 흉계라 의심하고 신하들에게 사공을 죽이라고 명했다. 손돌은 죽음에 직면하고도 임금의 안전을 바라는 충성에서 바가지를 물에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면 뱃길이 트일 것입니다”고 아뢴 후 참수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 같은 손돌과 관련된 얘기는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지도서’, ‘강도부지’, ‘강화 고적조’ 등에도 ‘뱃사공들이 그의 시체를 강변에 묻고 그 땅을 손돌항이라 이름 붙였으며 무덤의 형태는 지금도 완연하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김포문화원 권태일 문화팀장은 “손돌은 정사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야사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포 사람들은 예부터 음력 10월 20일, 이맘때쯤이면 손돌의 원혼이 바람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겨울 북서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이 때의 거센 바람을 손돌바람, 이 무렵의 추위를 손돌추위라 불렀다. 옛 김포와 강화 뱃사람들을 고달프게 했던 거센 물살과 바람, 추위 등 자연적 조건들이 가슴 시린 전설을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된다.

손돌목에는 조선조 말까지 손돌의 사당과 묘가 있어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사당과 묘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유실됐고 제사도 중단됐다. 그러다가 1970년 덕포진 발견자인 김기송씨, 박일양씨 등 주민들이 묘소를 복원하면서 다시 지내게 됐다.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로 파천한 시기인 고종 19년(1232년) 음력 10월 20일을 손돌의 기일로 삼아 제781주기를 맞는다. 손돌을 기리는 진혼제는 11일 오전 11시부터 손돌묘에서 열린다. 윤소리 경기민요합창단의 진혼곡 합창에 이어 진혼제, 대곶중 학생들의 바라춤이 예정돼 있다.

손돌목이 바라보이는 손돌묘가 있는 덕포진(사적 제292호)은 조선시대 진영으로 강화 초지진과 남장포대를 향하는 포대와 파수청이 있던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현종 7년(1666년)에 광성보·덕포진 용두돈대와 함께 새롭게 진이 설치됐다고 한다. 1980년 발굴 조사 당시 고종 11년(1894년)에 만들어진 중포 4문과 소포 2문이 발굴됐다. 또 포탄과 조선시대 화폐인 상평통보, 파수청 건물터가 발견됐다.

이 덕포진은 경기도가 지난해 김포 고양 파주 연천을 잇는 182.3㎞의 도보 여행길을 묶어 만든 비무장지대 트레킹 코스 ‘평화누리길’ 제1코스에 포함돼 있다. 대명항에서 덕포진, 원머루나루, 문수산성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총 길이 16.6㎞로 4시간이 소요되는 이 길은 해변을 따라 이어져 손돌 전설과 함께 한다.

매서운 손돌바람을 맞으며 손돌의 전설을 짚어보는 길, 주변엔 볼거리 즐길거리도 많다. 손돌목 주변에는 평화누리길, 덕포진 외에도 김포에서 유일한 포구인 대명항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어민들이 운영하는 수산물직판장이 있어 꽃게, 대하를 비롯해 새우젓, 멸치젓 등을 살 수 있다. 강화도와 마주보는 대명항의 일몰도 유명하다. 퇴역한 함정과 초계기 등을 볼 수 있는 김포함상공원, 옛 추억을 간직한 덕포진 교육박물관, 약암온천도 유명하다.

김포 외곽에는 경치가 아름답고 조망이 뛰어난 문수산(해발 373m)과 병인양요(숙종 20년) 때 프랑스 군대와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문수산성(사적 제139호)이 있다. 문수산에는 4.6km에 이르는 삼림욕장이 조성돼 있다. 과거 대규모 산성이었던 문수산성이 현재는 산등성을 연결한 성곽 4km 정도만 남아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16대 인조대왕의 생부인 원종과 부인 인헌왕후 구씨를 모신 장릉(사적 제202호)도 가까이에 있다. 능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능 아래는 제사를 모시는 재실이 있어 영조와 정조가 매년 행차해 제사를 모셨다고 전해진다. 능 주위가 공원으로 꾸며져 있어 휴일이면 가족 나들이 코스로 많은 이들이 찾는다.

김포=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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