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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아기과자를 탐하다 ‘원물간식’ 붐

입력
2016.08.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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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착향료와 산화조절제로 범벅이 된 과자 대신 식사 대용으로도 손색없는 건강한 간식을 먹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고구마, 감, 사과, 배 등 자연재료를 통째로 말린 이른바 ‘원물간식’이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합성착향료와 산화조절제로 범벅이 된 과자 대신 식사 대용으로도 손색없는 건강한 간식을 먹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고구마, 감, 사과, 배 등 자연재료를 통째로 말린 이른바 ‘원물간식’이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아이들과 마트에 갈 때마다 엄마는 갈등한다. 신나게 진열대 사이를 질주하는 아이들이 카트 에 실어 나르는 것이라곤 죄다 초콜릿, 사탕, 젤리, 과자. ‘무균실에서 아이를 키울 수는 없다, 유난 떨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저 많은 합성착향료와 백설탕, 산도조절제 1과 2, 쇼트닝, 조제크림분말, 돼지 젤라틴에 카나우바 왁스로도 모자라 밀납까지….

저거 다 먹고 어떻게 사람이 될까 싶을 때, 아이가 광고방송에서 봤다며 고구마말랭이를 들고 온다. ‘원재료명 및 함량: 고구마 100%.’ 이 간결한 아름다움이라니. 성분표시란의 빽빽한 암호들에 지쳐버린 두 눈에 청신하게 박히는 저 심플한 글자들에 쾌감까지 느껴진다. 가격은 사악하다. 뽀로로친구들 한 박스(65g)가 1,500원인데, 말린 고구마 한 봉(60g)이 3,500원. 조금만 더 보태면 짜장면도 사먹을 가격이지만, 아이들보다 엄마가 더 열심히 고구마를 집어먹으며 웅얼거린다. “나 지금 막 건강해지고 있는 것 같아.”

롯데마트 서울역점 진열대를 가득 채운 원물간식들. 박선영 기자 aureir@hkooklbo.com
롯데마트 서울역점 진열대를 가득 채운 원물간식들. 박선영 기자 aureir@hkooklbo.com

고구마, 감, 완두… 쏟아지는 원물간식

원물간식이 쏟아지고 있다. 식품첨가물은 물론 다른 재료를 전혀 가공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원재료를 말리거나 익혀 만든 간식이다. 대상이나 CJ제일제당 같은 대기업 제품부터 올가니카 같은 유기농 전문업체, 복음자리나 해쉼 같은 중소업체들까지 대형마트 식품코너에는 전쟁이라 해도 좋을 만큼 다종다양한 원물간식들이 출시돼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0년 3,300억원 규모였던 원물간식 시장은 2014년 6,700억원대로 2배가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원물간식은 2013년 대상 청정원이 웰빙간식을 표방하며 100% 고구마로 만든 ‘고구마츄’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고구마를 쪄서 아무런 첨가물 없이 그대로 열풍 건조한 이 고구마말랭이는 고구마 본연의 단맛과 쫀득쫀득한 식감으로 ‘자연을 먹는다’는 기쁨과 보람을 선사하며 별다른 광고나 마케팅 없이 기대 이상의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특히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 있는 고구마를 주원료로 해 다이어트에 관심 많은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고구마츄의 인기로 시장가능성을 확인한 대상은 ‘츄앤’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시리즈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무엇이라도 말릴 기세로 고구마에 이어 군고구마, 군밤, 감 등을 말린 제품을 ‘츄앤 리얼’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았다. 이어 ‘츄앤크리스피’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 완두와 대추를 원물 그대로 낮은 압력과 온도에서 바삭하게 튀긴 제품군을 선보였다. 보통의 튀김과자가 180도 이상의 고온에서 튀기는 반면 75~95도의 진공저온공법으로 튀겨 발암물질과 트랜스지방 생성을 막고 재료 본연의 맛과 바삭한 식감을 살렸다.

이하늬와 이국주를 모델로 내세워 마케팅에 화력을 붙인 이 제품들 외에 본격 성인스낵을 콘셉트로 한 사브작 시리즈도 선보였다. 기름기 없이 지방 0%로 바삭하게 구운 100% 닭가슴살 스낵과 쇠고기 육포, 아몬드, 멸치, 퀴노아, 참깨, 크랜베리, 쌀 등 자연재료를 섞어 큐브 형태로 만든 김스낵 등은 맥주와 와인을 절로 부르는 안주 겸용 간식이다.

다양한 식재료로 만든 원물간식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시장 최고의 강자는 역시 고구마다. CJ제일제당과 동원 F&B도 지난해 고구마 원물간식을 출시하며 시장에 가세했다. 내추럴푸드 전문기업 올가니카는 2014년 출시한 ‘쫀득한 군고구마’를 리뉴얼해 최근 이마트 노브랜드 제품으로 런칭했다. 출시 이후 매년 300% 이상의 경이적인 매출 신장을 보이고 있는 제품이다. 해남에서 100% 무농약으로 키운 고구마를 구워 반건조한 후 숙성시킨 이 고구마말랭이는 완전건조제품에 비해 특유의 즙과 쫀득한 식감을 살린 것이 특징. 감말랭이의 인기도 무섭다. 올가니카의 쫀득한 감말랭이는 2016년도 제품생산을 위해 구매한 25톤의 원물을 모두 소진, 올 9월이나 돼야 새로 수확된 햇감으로 재생산이 가능한 상황이다.

대상 청정원이 출시한 다양한 원물간식. 대상 제공
대상 청정원이 출시한 다양한 원물간식. 대상 제공

자연 그대로 먹고 싶다

원물간식이 새로운 유형의 스낵은 아니다. 고래로 외할머니가 말려 주시던 각종 말랭이들이 있었고,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동료가 사 들고 온 망고와 파파야 말린 과일봉지가 존재했다. 아직 이빨이 나지 않은 아기들을 위한 이유식기 과자가 바로 이 원물간식이기도 하다. 어느 경우에도 식욕을 자극하지 못했던 이 스낵들이 돌연 히트상품이 돼 어른들의 지갑을 강탈하는 이유는 뭘까.

대상 홍보실의 전치우 매니저는 “소비자들의 식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니즈가 커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실 어른들도 식품첨가물에 지쳤다. 복잡한 조리과정을 거친, 뭐가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간식은 아이들에게만 나쁜 것이 아니다. ‘Simple is beautiful’이라는 스티브 잡스의 정언명령은 주거뿐 아니라 식생활에도 미니멀라이프의 자력을 행사하며, 원물 그대로, 자연 그대로를 먹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걸그룹 등 셀리브리티의 영향도 있다. 특히 고구마에 그 영향력이 지대하다. 올가니카 관계자는 “단맛이 강한 고구마에는 칼륨, 비타민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고 칼로리와 혈당지수가 낮다”며 “셀럽들의 다이어트식으로 입소문이 나며 소비자들의 관심이 증대했다”고 말했다. ‘걸그룹 멤버들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노상 먹던 바로 그 과자’의 이미지가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60g 한 봉지에 165㎉에 달하는 고구마를 간식으로 먹었다고 저절로 날씬해지거나 건강해지지는 않는다. 첨가물 범벅의 과자를 쉴 새 없이 입에 물고 있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세 끼 식사 전체와의 영양 및 열량 균형을 치밀하게 계산하지 않으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걸그룹에게 고구마말랭이는 원물간식이 아니라 주식이다.

과일 동결건조 제품을 주로 선보이는 김준배 만나에프엔엘 대표는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원물간식의 가능성을 감지했다. “해외에서 근무하다 국내에 들어와 보니 원물간식이 아이들 이유간식으로만 소비되고 있더라. 과일은 누구나 먹고 먹어야 하는데 너무 이상했다.” 김 대표는 과일이나 채소 섭취가 부족한 직장인, 자전거 등산 등 야외활동을 자주하는 레포츠 인구, 딱딱한 과일 간식을 먹기 어려운 노인인구 증가 등을 겨냥해 8개월 전 브랜드를 런칭했다. “원물을 챙겨 먹기 어려운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원물간식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시장이 광범위하고, 향후 크게 성장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무엇을 말려도 뜻밖에 맛있다. 원물간식 인기의 가장 근본적 비결이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무엇을 말려도 뜻밖에 맛있다. 원물간식 인기의 가장 근본적 비결이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의외로 맛있다

문화부 기자 다섯 명이 9종의 원물간식을 맛봤다. 고구마, 감, 완두, 닭고기, 파인애플, 딸기, 사과, 감귤, 김스낵이다. 투박한 생김새와 달리 ‘맛있다’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물론 맛의 방점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제 각각이었다.

원물간식의 ‘조리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열풍 건조와 동결 건조다. 동결 건조는 원물을 마이너스 40도에서 급속 동결해 진공건조로 수분을 빼낸다. 제품 모양이나 색상, 형태 등에 변화가 없고, 손으로 바수면 가루가 될 정도로 가볍고 아삭하다. 후 불면 가벼운 스티로폼처럼 딸기알이 휙 날아갈 정도다. 과일을 주재료로 하는데, 원물 고유의 식감은 거의 사라지고 과자처럼 변해 영유아나 노인, 채식인들에게 좋다. 우유나 요거트, 물 등 액체에 적시면 70~80% 정도는 원물의 상태로 환원된다. 반면 열풍 건조는 말랭이처럼 꾸덕꾸덕해져 원물의 식감이 상당 정도 남아있지만, 직접 열을 가하다 보니 원물에 쭈그러짐이나 질겨짐 현상이 생긴다. 치아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식감이라 성인들에게 훨씬 더 어필하는 방식이다. 이외에 완두콩처럼 저온에서 튀기거나 닭가슴살처럼 오븐에 굽는 방식도 있다.

시식 결과는 선호 식재료와 식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새콤달콤한 맛을 즐기는 ‘초딩 입맛’에게는 동결 건조한 딸기와 파인애플이 완벽한 간식이었다. 생긴 건 과자인데, 입에서는 딸기 그 자체인 맛의 마법에 환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물을 먹고 싶다는 욕망을 기만하는 듯한 과자의 식감을 용서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육식주의자는 닭가슴살을 원물 그대로 과자로 먹을 수 있다는 데 환호한 반면, 건강식 애호가는 고구마와 단감의 꾸덕꾸덕한 식감과 단맛에 높은 점수를 줬다. 두루 호평 받은 김스낵은 K-푸드를 대표하는 히트상품으로 중국 등 해외시장을 겨냥한 원물간식. 김만으로는 입체적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아 쌀이나 퀴노아 등 슈퍼푸드 등과 결합해 프리미엄화하는 추세다. 짭잘하면서도 바삭한 맛이 지나치게 술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5명이 매긴 점수를 평균 낸 결과,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감말랭이였다. 꾸덕꾸덕하면서도 원물 그대로의 맛과 식감이 남아있다는 평가였다. 동결건조로 과자 같은 식감을 낸 파인애플이 두 번째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고구마와 김스낵이 같은 점수로 3위를 차지했다. 이어 완두, 감귤, 닭고기 순이었다. “어른도 아이도 걱정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간식”이라는 기쁨 속에 가격의 압박이 자각될 무렵, 식품건조기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그래서 사람들이 건조기를 사는구나!”

몸에 좋은 간식을 찾는 새로운 트렌드를 두고 미국 포브스는 건강 간식의 함정을 지적한 바 있다. 이 매체가 ‘미국인들이 간식을 먹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던진 “사람들이 건강한 간식을 먹는다고 해서 끼니를 거르는가”라는 물음을 우리는 진지하게 숙고해봐야 한다. 이들의 지적처럼 “건강 간식은 허릿살에는 나쁜 소식이요, 식품업계에만 기쁜 소식”일 수도 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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