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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30년 북핵 위기 종지부 찍어야 할 때

입력
2017.04.1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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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전략적 모호성 북핵 정세 흔들어

중국의 공언을 행동으로 이끌어야

한반도 주인의식 걸맞은 각오 절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여러 차례 “적이 나의 행동을 예측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그가 1987년에 쓴 ‘협상의 기술’이라는 자서전에도 비슷한 내용이 많다.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게 최악의 협상”이라든가 “절대로 하나의 협상이나 접근법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등이다. 요는 나의 전략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으로 국면을 리드해 간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트럼프는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많은 말을 쏟아냈지만,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에 대해서는 종잡을 수 없게 했다. 북핵에 대해 “중국이 돕지 않으면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것” “김정은은 큰 실수를 하고 있다”는 등 연일 말 대포를 쏘아댔다. 그러나 외교ㆍ안보의 현장 지휘관들의 말은 결이 달랐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항모 칼빈슨호의 한반도 재배치에 대해 “특별한 신호가 있지 않다”고 했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북한의 정권교체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군사옵션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실제 행사 가능한 카드인지에 대해서는 말끝을 흐렸다. 선제공격 같은 무력대응을 강하게 시사하면서 한편으로는 그쪽으로 과도하게 관심이 쏠리는 것을 막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트럼프와 거래하는 상대방 입장에서야 짜증나고 답답한 노릇이지만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에서는 국면을 단순화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힘을 외교적으로 극대화하는 전형을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 그가 대외정책의 기조로 밝힌 ‘힘을 통한 평화’가 이런 것이라면 트럼프 집권 내내 세계는 트럼프의 ‘힘’의 의도를 놓고 골머리를 썩여야 할 것이다.

몸이 단 것은 관련국들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초조감’이 두드러진다. 정상회담이 끝난 지 나흘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트럼프와 전화통화를 했다는 사실을 중국 정부가 먼저 공개하고 나선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우다웨이 중국 측 6자 회담 수석대표가 “미국이 독자행동에 나선다고 하면 한국이 자제하라고 얘기해줬으면 좋겠다”고 한 발언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매번 유엔 안보리 회의장에서 대북제재 결의안을 놓고 미국의 애간장을 태우게 했던 게 중국 아니었나. 북한에 관한 한 거의 절대적인 지렛대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중국이 한국에까지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은 중국이 더 이상 ‘갑’이 아니라는 얘기다. 금방이라도 추가 핵실험을 할 것처럼 기세 등등하던 북한이 느닷없이 외신기자를 대거 평양에 불러모으고, 20여 년 전에 폐지한 외교위원회를 부활시키며 유화(?) 제스처를 보인 것도 ‘트럼프 효과’의 단면들이다.

어찌됐건 당장 중국을 다급하게 움직이게 만든 것은 큰 소득이다. 관영 신화통신은 “북한이 핵ㆍ미사일 실험을 강행한다면 석유를 끊는 방법으로 북한을 제어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대북 원유공급 중단은 중국이 언급조차 금기시했던 말이다. 북한의 핵 장난을 느긋하게 즐기며 사태를 여기까지 몰고 온 중국이 응당 치러야 할 대가다.

한반도에는 지금 정중동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긍정과 부정의 에너지가 뒤섞인 채 어딘지 모르는 출구를 향해 한없이 솟구쳐 올라가는 형국이다. 일본은 이 때다 싶은 듯 “서울 불바다” “일본인 구출” 등 자극적 용어를 동원해 ‘안보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반도 위기상황을 부채질해 군사력 확장의 명분으로 삼겠다는 의도다. 국내에는 ‘4월 위기설’같은 밑도 끝도 없는 가짜뉴스가 나돌고 있다.

선동과 괴담, 혼란은 경계해야겠지만, 고통과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이 고비를 극복할 수 없다는 근본적 각오가 필요하다. 크게 보면 이번 한반도 위기도 핵ㆍ미사일 도발→한반도 긴장 고조→타협과 보상→합의 파기라는 30년 가까이 반복된 ‘북핵 악순환’의 하나일지 모른다. 북한의 핵무장이 코 앞인 지금이 북의 위협을 저지할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인지 여부가 곧 판가름 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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