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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 공은 둥글지만] ‘늪 축구’마저 즐길 수 있는… 월드컵의 재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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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 공은 둥글지만] ‘늪 축구’마저 즐길 수 있는… 월드컵의 재미란

입력
2018.06.18 19:00
수정
2018.06.18 19:12
17면
0 0
15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B조 예선 모로코 대 이란의 경기. 모로코의 아지즈 부아두즈의 자책골이 터지자, 이란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연합뉴스
15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B조 예선 모로코 대 이란의 경기. 모로코의 아지즈 부아두즈의 자책골이 터지자, 이란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연합뉴스

우리나라가 월드컵에 진출 가능한지 아닌지 절체절명의 순간을 경기장에서 함께 했었다.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홈에서의 마지막 경기였다. 상대는 이란. 우리는 카타르와 중국, 이란에 연거푸 패하면서 암연이 낀 상태였다. 결국 감독은 경질되었고, 신태용 감독이 급하게 호출되었다.

상암은 6만 명의 홈 관중으로 가득했다. 그 경기에서 이기면 월드컵 자력 진출이었으나 결과는 무승부였다. 이란은 그날도 대단했다. 수려하고 빠른 플레이는 없었지만, 상대방에게도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답답했다. 그들은 그 답답함을 일부러 유지하는 듯했다. 우리는 그 답답함을 타파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런 축구를 ‘늪 축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 팀 다 늪에 빠져버린 듯, 눅눅하고 축축하게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축구. 그 늪에서 건져 올린 한 골로 성과를 보는 축구.

어느 월드컵에나 초반엔 그런 경기가 있기 마련이다. 지구 반대편, 평소에는 거기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다가 월드컵을 통해서 한번 만난 사이, 해당 국가 팬과 미디어에는 세상 둘도 없이 중요한 게임이지만 월드컵 전체에 있어서는 그냥 그런 한 판이다. 심지어 같은 날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경기가 있었다. 스페인의 축구 천재 열한 명과 축구 신 한 명의 대결은 3-3, 눈부신 무승부였다. 둘의 축구는 꽃길 위의 나비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그에 비해 이란과 모로코의 경기는 늪, 바로 그것이었다. 이란은 주로 수비를 하고 모로코는 공격을 했지만 그게 다 무슨 의미인가. 간간히 있었던 결정적 장면에서는 둘 다 결정력이 없었고,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0-0으로 비기는 게 모두에게 공평해 보였다.

정규 시간 1분을 남기고 사고는 일어났다. 실로 늪에 어울리는 결말이었다. 모로코의 자책골. 이렇게 이번 월드컵에서 아시아 대륙의 첫 승은 이란의 몫이 되었다. 경기는 뒤이은 유럽 열강의 경기에 비하면 답답하고 느리고 졸렸다. 하지만 테헤란의 축구팬은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밤이었을 것이다. 이런 경기와 결과마저 월드컵의 매력이지 않을까.

서로 다른 대륙이 모여 만드는 생소한 매치 업. 메이저 대회가 주는 압박감. 내용이야 어찌됐든, 이 한 경기를 잡기 위해 달려드는 용맹함. 이런 감정을 2017년 상암에서 느낀 적이 있다. 이란은 같은 스타일로 승점 3점을 따냈다. 월드컵에서의 재미는 무엇보다 승리다. 월드컵에서는, 최소한 조별 예선에서는 이란의 늪 같은 축구를 벤치마킹해야 할 팀이 꽤 있다. 언더독일 게 분명한 그들을 응원하는 맛도, 월드컵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일 것이다.

서효인 시인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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