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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총알과 위스키

입력
2017.10.0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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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시대 총잡이들은 바에 가서 독한 위스키 한잔을 시키고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혁대에서 총알 하나를 꺼내줬다. 그래서 위스키 한잔을 ‘a shot of whisky’라고도 한다. 그 시절 ‘미국은 술보다 총을 사기가 더 쉬운 나라’였다. 커피집에서도 ‘샷(shot) 추가’라면 알아듣는다. 커피 원액을 ‘한 방’ 추가하라는 말이다. 미국인은 대부분 이처럼 총과 무척이나 가깝게 지낸다. 벽난로 위나 장식장에 총기를 전시하고 자녀들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친다. 미국에 사는 우리나라 교민 집 차고에서도 흔하게 총기류를 볼 수 있다.

▦ 미국에서는 골프 코스 주변 주택 마당으로 공이 날아가면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집주인이 총을 쏴도 주거침입에 따른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1일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59명(범인 포함)이 죽고, 500여명이 부상했지만, 빙산의 일각이다. 2001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200여만명이 총격을 당했고 매일 92명, 연간 3만여명이 총에 맞아 죽었다. 1970년 이후 총기사고 사망자는 미국 역사상 모든 전쟁 전사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 통계상 미국인은 1인당 1정 이상의 총기를 갖고 있다.

▦ 2007년 한국계 학생 조승희가 저지른 버지니아 공과대학 참사 사건 때도 지금처럼 미국 전역에서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결국은 흐지부지됐다.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총기 규제를 논의할 시기가 아니다”라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 참사 직후 “(총기) 규제에 관해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다”며 기자들의 질문을 피해 나갔다. 여전히 미국인 상당수는 총기 소유를 압제자에 저항하는 국민 기본권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총기업자의 정치권 로비가 더 문제다.

▦ 미국을 ‘총기가 지배하는 사회(gunocracy)’라고 한다. 총기업자와 정치인의 유착 관계가 도를 넘을 정도로 긴밀해 ‘총기의 정치학’이라는 용어까지 나왔다(손영호의 책 ‘미국의 총기문화’). 총기업자 배후의 막강한 조직과 자금력을 갖춘 미국총기협회(NRAㆍNational Rifle Association)가 여론몰이를 한다. 2000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 앨 고어가 부시에게 패한 것도 강력한 총기 규제 정책을 내걸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래서 총기 규제는 요원하다. 최악 총기 사고 후 열흘도 안 됐는데 사건이 잊혀지는 분위기도 그런 맥락일 거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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