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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영장’ 그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까

입력
2018.01.13 10:4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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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1530년작 '에덴동산'. 창조 이후 모습이다.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든 것은 그 이전 창조된 것들을 잘 관리할 책임을 지우기 위함이다.
종교개혁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1530년작 '에덴동산'. 창조 이후 모습이다.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든 것은 그 이전 창조된 것들을 잘 관리할 책임을 지우기 위함이다.

종이박스 안에 그 녀석을 담고 미친 듯이 뛰었다. 퍼뜩 떠오른 근처 애견센터로 넋 나간 사람처럼 들어가 살려달라고 말했다. 상태를 보아 이미 살아날 가능성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전문가가 한 번 더 확인시켜 주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어려웠나 보다. 실버가 죽었다는 걸 말이다.

실버는 아주 오래 전 우리 집에 같이 살던 자그마한 강아지이다. 내 남동생은 금빛 털이 무성한 녀석에게 은빛의 실버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유행하던 해체주의를 빌었는지, 동생은 이름을 그 따위로 지어주었다. 금빛이지만 실버였던 녀석, 참 예뻐했는데.

무술년 황금 개띠 해를 맞으니 새삼 실버가 생각난다. 퇴근하신 아버지를 가족 중 제일 열렬히 반겨주던 녀석이었고, 오빠들 보다 한참 어려 늘 혼자 놀던 여동생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실버였다. 한번은 귀엽고 예쁜 실버를 안고 어느 여대 앞을 간 적이 있었다. 태어나서 여자들이 그렇게 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와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신통방통한 녀석이었다.

실버는 개를 싫어하던 어머니마저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차에 올라타 어딜 가시자 쫓아가겠다고 뛰쳐나간 녀석은 그만 내 눈앞에서 다른 차에 치어 죽고 말았다. 거의 한 달을 못 견딜 정도로 우울하게 지내다가 나는 군대에 갔다. 거기에 가서야 비로소 실버를 마음속에 묻을 수 있었다.

개들은 인간을 자기의 가족으로 한번 여기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따른다. 그래서 동물 가운데 개는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여겨지기도 한다. 개는 인간에게 무척 의존적인데, 그저 자기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도 받고 싶어 안달한다. 바라는 대로 되지 못하면 개들도 스트레스나 우울증에 시달린다. 사실 개를 비롯한 지구 위 모든 동물들은 인간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정글의 맹수들도 인간이 그들의 삶의 터전인 자연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멸종하기도 하고 종족을 유지하기도 한다. 뻥 뚫린 고속도로 때문에 산이 잘리고 이동경로가 막혀 버리면, 갇힌 영역 안에서 계속 근친교배를 하다가 멸종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 영역을 용감하게 뛰쳐나가는 녀석들에게는 로드 킬이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인간이 무엇이기에.

사람은 대체 무엇인가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4)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노래 한 줄이다.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사람이지만 신 앞에서는 지극히 겸허해진다. 마침 이 시편 8편은 구약성경에서 ‘인간이 무엇인지’ 가장 의미 있게 밝혀주는 본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 전체를 보면, 제일 먼저 창조주 하나님의 장엄하심을 노래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이어진다.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시편 8:3). 인간을 노래하는 시인데 인간은 언제 나오는가 싶다. 먼저는 창조주를, 그 다음에는 창조물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야 위에 언급한 구절이 나온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기에 앞서 만물 중 하나일 뿐인데, 뭘 이토록 돌보아 주시는지. 그 오랜 세월 동안 변덕도 없이 한결같았던 해와 달, 별을 생각해 보면, 천방지축 사람은 그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 다음, 이 노래는 인간이 만물 위에 가지는 특권을 말한다. “주님께서 손수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습니다. 크고 작은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까지도, 하늘을 나는 새들과 바다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와 물길 따라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시편 8:6-8). 이 시는 이렇게 인간의 겸허함을 먼저 노래하고 마지막에 그들의 특권을 노래한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인 것은, 군림할 수 있는 특권 보다 잘 다스려야 하는 책임 때문이다. 인간이 창조주 앞에 겸허해야 함을 먼저 알아야, 창조물을 진정으로 잘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겸허한 다스림을 하고 있는가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8년 동안 거의 소고기를 먹어보지 못했다. 어쩌다 소고기를 먹게 되면 그 냄새가 역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유는 ‘미친 소’ 때문이었는데, 당시 영국은 광우병 사태로 꽤 심각했다. 좋다는 런던의 앵거스 스테이크하우스 (Angus Steakhouses) 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그 레스토랑은 살 날이 많지 않으신 노인 분들로만 붐볐는데, 광우병은 그 잠복기가 꽤 길다는 이유에서였다. 미친 소 때문에 인간이 미친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는데, 사실은 그 반대다. 인간이 미쳤기 때문에 소들이 미친 것이다. 소들을 잘 다스려야 할 인간이 욕심에 미쳐서 소들에게 미친 짓, 바로 동족을 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을 강요했다. 소는 초식동물인데 그 소들을 빨리 살찌우려고 소의 부산물로 만든 사료로 육식을 시킨 것이다. 학자들은 그 결과로 광우병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광우병이 대량 발병한 영국에서는 초식인 소에게 양의 부산물을 많이 먹였다고 한다.

자연이 어쩌면 공의로운 것 같다. 소에게 미친 짓을 시킨 인간이 그 고통을 되돌려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위 시편에 따르자면 인간은 동물들을 잘 지켜주어야 하는데, 우리를 의지하고 먹을 것을 받아먹는 소들에게 소를 먹였으니 한없이 미안 할 따름이다.

성경의 맨 처음 기록인 창세기 1장도, 이 시편과 마찬가지 순서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보여주고 있다. 하늘과 땅과 빛나는 것들을 지으신 후, 그 안에서 살아갈 바다 생물, 가축, 들짐승을 만드셨다. 그리고 이들에게 번식하고 번성하라는 명령한다. 그 다음에서야 하나 님은 인간을 창조하신다. 시편의 노래처럼 사람을 창조 만물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겸허하게 소개한 뒤, 비로소 그들의 특권을 전하고 있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기 1:28)

이 땅에서 번식하고 번성하는 일은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 아니다. 서로 더 번성하려다 발생할 수 있는 혼동을 인간이 잘 관리해야 하기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배하고 다스릴 권위를 주신 것이다. 이런 질서를 잘 마련해 놓으신 후 하나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시기에 참 좋았다.” (창세기 1:31)

책임에 대해 고민해야

그날 실버가 차에 치이기 전 사실 실버는 내 품 안에 있었다. 어머니를 유독 따랐던 녀석이기 때문에 내가 주의를 했어야만 하는데, 무심결에 내려놓는 순간 차도로 쏜살같이 뛰어 들어가 어머니가 탄 차를 쫓아가려 했던 것이다. 녀석은 유독 어머니의 치마폭에 누어 잠드는 것을 좋아했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로부터 떨어져 우리 집에 와서 그런지 우리 어머니가 제 엄마 같았나 보다. 차가 무엇인지, 도로가 무엇인지, 차가 얼마나 빠르고 무서운지 모르던 6개월 된 실버는 차에 무참히 치어 그만 죽고 말았다. 실버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은 정말로 오랫동안 날 힘들게 하였다.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지켜주지 못해서 참 미안했다.

TV프로그램 ‘동물농장’의 열혈 팬임을 자처할 만큼 나는 지금도 동물을 좋아한다. 하지만 다시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은 없다. 차들이 무섭게 질주하는 도시 속에서 그들을 책임 있게 관리할 엄두가 나질 않기 때문이다. 개가 인간의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것만큼 인간도 개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줄 수 없다면, 무책임한 일은 벌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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