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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강용주의 투쟁을 지지합니다”

입력
2017.04.2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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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조작에 항거한 비전향 장기수

보안관찰 신고위반으로 또 법정에

이젠 ‘보이지 않는 감옥’을 없애야

2012년 대선 직전 만난 강용주 원장. 그는 간첩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로 14년 복역했으나, 출소 후 18년째 보안관찰법이란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2012년 대선 직전 만난 강용주 원장. 그는 간첩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로 14년 복역했으나, 출소 후 18년째 보안관찰법이란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동네의사’ 강용주(55). 그를 만난 건 2012년 12월 대선 직전이었다. 10월 문을 연 광주트라우마센터의 초대 센터장이 된 그를 인터뷰하는 자리였다. 2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 내내 나는 오금을 펴지 못했다. 길고 긴 녹취록을 추려 기사를 쓰면서도 그가 겪었고, 또 겪고 있는 고통의 끝자락에도 닿지 못하는 나의 글을 한탄하며 오래 앓았다. 겨우 써 낸 기사의 첫 문장. “그의 삶을 돌이키면 ‘저항’이란 두 글자가 오롯이 떠오른다.”

1980년 5월, 핏빛 항쟁에 뛰어든 열여덟 소년은 27일 새벽 계엄군이 도청을 덮칠 무렵 총을 버리고 도망쳤다. “영혼에 쨍~ 하고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방황 끝에 전남대 의대에 진학한 뒤 학생운동을 했고, 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됐다. 스물셋 청년은 모진 고문에 무너져 “저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개가 됐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고문에 의한 조작’을 주장하며 싸웠지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면서도 쓰레기통에 처박힌 내 영혼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결심을 버릴 수 없어” 끝내 전향을 거부했고,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로 14년을 복역했다.

출소 후 의대에 복학해 의사의 꿈을 이뤘지만, 그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보안관찰법이란 또 다른 폭력에 맞서고, 재단법인 ‘진실의 힘’을 통해 고문과 간첩조작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돕고, 광주트라우마센터를 맡아 광주의 상처를 치유해 왔다.

인터뷰 이후 그를 만난 적이 없지만, 나는 그의 소식을 제법 소상히 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하는 공개 활동만이 아니다. 그가 일과 후 동네 산책하는 걸 좋아하고, 어떤 커피를 즐겨 마시고, 누구와 만나 술잔 기울이며 무슨 얘기를 나눴으며, 몇 달 전 대림동에 ‘아나파 의원’(세상 모든 사람들의 통증을 다 고쳐주겠다는 듯이!)을 개업했다는 사실까지. 그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서다.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에 요즘 유행하는 ‘아재 파탈’이란 말을 떠올리며 웃었던 적도 있다. 그가 이런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환자 진료 중 체포돼 경찰서로 끌려갔다.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28일 아나파의원에는 ‘원장님 학회 발표로 오후 2시부터 진료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그러나 강 원장이 흰 가운 대신 양복 차림으로 찾은 곳은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이었다. 보안관찰법상 신고의무 위반으로 기소돼 첫 재판을 받으러 가는 길, 그는 페이스북에 어머니 얘기를 썼다. “오늘 재판 있다는 것도 모르셔요. 울 엄마는 이제 92세가 되었어요. ‘이제는 살 만하다’고 여기실 당신께 이 참담한 현실을 알려드릴 수가 없었거든요.”

강 원장은 보안관찰법에 따른 ‘피처분자’다. 이 법의 뿌리는 일제의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이다. 박정희 정권이 이걸 가져다 사회안전법을 제정, 전향을 거부한 사상범들이 형기를 채운 뒤에도 다시 감옥에 가두고(‘보호감호’)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보호관찰’)했다. 1987년 이 법은 폐지됐지만, 감시 처분은 대체 법에서 ‘보안관찰’로 이름만 바뀌어 살아남았다.

보안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3년 이상 형을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법무부가 결정한다. 처분이 내려지면 3개월마다 관할 경찰서에 주요 활동, 여행지와 동행자, 이사 예정지 등을 신고해야 한다. 2년마다 갱신 여부가 결정되는데, 무제한 갱신이 가능하다. 법에 따르면 잠재적 대상자는 2,300명을 헤아리며, 내란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전두환도 포함된다. 하지만 40여명의 피처분자 명단에 그는 없다. 재범 위험을 따진다면, 제멋대로 휘갈긴 회고록으로 역사를 상대로 다시 내란을 꾀하고 있는 전두환이 앞서 올라야 마땅하다.

강 원장은 2001년, 2010년에도 같은 혐의로 법정에 섰다. 출소 후 18년간 단 한번도 신고의무를 지킨 적 없지만 고작(?) 두 차례 기소됐고, 경범죄에나 해당하는 고작(!) 벌금 50만원이 선고됐다. 이 법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집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국가폭력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이유로 자행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강 원장은 재판부에 보안관찰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기로 했다. 화창한 봄볕 아래 꽃들이 지천인데, 세상은 저마다 새 시대를 열겠다는 대선 후보들과 지지자들의 다툼으로 어지럽다. 그래도 희망을 말해야 한다면, 다만 인간다운 삶을 위해 전 생애를 건 숱한 강용주들의 싸움이 합당한 화답을 받아야 한다. 작은 목소리나마 보탠다. “보안관찰 폐지! 보이지 않은 감옥에서 강용주를 석방하라!”

이희정 디지털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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