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소연 기자

등록 : 2018.04.06 12:48
수정 : 2018.04.06 19:14

[글로벌 내친구]<4> 일론 머스크를 키운 ‘센’ 여자, 메이 머스크

등록 : 2018.04.06 12:48
수정 : 2018.04.06 19:14

겸손과 도전정신… ‘잘난 아들의 엄마’로 살지 않는 모델계 귀감

디자이너 양유나(오른쪽)씨가 직접 디자인한 메이 머스크의 의상을 피팅해 보고 있다. 양유나씨 제공

한국에서 결혼을 했거나 자녀가 있는 30대 이후 여성들은 종종 자신의 이름을 잊은 채 살아가게 된다.

‘아무개의 엄마’ 혹은 ‘아무개의 와이프’로 불리는 일이 대부분이며 이름뿐 아니라 남편의 지위나 자녀의 학교 성적, 또는 이들의 사회적 성공 여부로 자신의 지위가 정해지곤 한다. ‘나’라는 자아를 찾아 살기보다 아무개의 ‘무엇’이라는 타이틀에 더 의미를 두는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많은 셈이다. 그렇다고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의 자아 성취에 대해 관대한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 싱글 여성으로 열심히 일하는 여성들은 종종 ‘대가 세다’거나 ‘팔자가 세다’는 부정적인 수식어를 얻는다.

20대 초반 밀라노로 떠나 런던, 뉴욕에서 18년째 치열하게 커리어를 쌓으며 살아온 나에게 사랑하는 모국인 한국의 여성 자아에 대한 인식은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 했을 때 아직도 많이 아쉽다.

메이 머스크는 자타공인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들을 둔 엄마 중 한 명이다. 일론 머스크는 스티브 잡스가 사라진 지금, 미국에서 가장 ‘핫’한 경영자이자 미래를 디자인 하는 혁신가다.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행보를 눈여겨보는 비즈니스계의 스타다.

메이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3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기금 마련을 위해 열리는 패션쇼 ‘메트 갈라(Met Gala)’ 의상을 의논하기 위한 자리에서였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2014년이었다. 우연히 친한 스타일리스트의 잡지 화보 사진에서 본 백발의 모델은 무척 매력적이었고 멋졌다. 마음에 쏙 들어 메이 머스크라는 모델 이름을 수첩에 적어 놓고 다음에 꼭 같이 작업해 보겠다고 결심했다. 처음 메트 갈라 의상 섭외를 위한 이메일을 받았을 때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냈고 그 때 나는 메이가 일론 머스크의 어머니인지 알지 못했지만 무척 신났었던 기억이 난다.

메트 갈라 의상 미팅으로 처음 만나게 된 메이는 겸손했고 디자이너인 나를 존중하며 30년 넘은 경력을 가진 프로 모델로서 프로페셔널하게 행동했다.

“유나! 나는 모델이고 너의 옷을 표현해 낼 준비가 돼 있으니 편하게 너의 작품을 입혀 봐.”

메이와 대화하면서 그가 이혼 후 세 자녀 교육을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했고 싱글맘으로서 치열하게 5개의 직업을 갖고 일하면서도 자기계발을 위해 석사를 두 개씩이나 따 낸 강인함에 놀랐다. 또한 일론이 유명인사가 된 지금도 일론의 어머니가 아닌 모델 ‘메이 머스크’로서 정상에 우뚝 서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메이를 일론의 어머니 메이 머스크로만 규정지으려 하는 것이 아쉽고 메이에게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일론이 페이팔의 성공 이후 안주하지 않고 더 큰 꿈을 향해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남들이 도전하지 않았던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를 여는 사업에 시도하는 모험심 또한 메이를 꼭 빼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이너로서 일론의 어머니라는 타이틀에 가려진 모델 메이의 모습을 끌어내고자 최선을 다하고 싶은 열정이 샘솟았고 메이를 2016년 메트 갈라 레드카펫에서 최고로 빛나는 모델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었다. 메이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인생을 바라보는 자세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미팅 후 첫 번째 의상 피팅을 하고 나서 메이는 “유나! 너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내 옷을 만들어준 유나양의 공방 장인들에게도 감사한다”며 “우리의 이야기는 이민 여성의 이야기, 도전하는 강한 여성들의 만남”이라며 힘을 실어줬다.

메이의 강인함을 표현하기 위해 승리의 색상인 ‘로열 블루’ 컬러를 선택했고 중세 남성들이 착용하던 케이프에서 영감을 받은 바지 정장을 디자인해 메이의 도전정신을 표현했다. 반짝거리는 이브닝 드레스 일색이었던 레드카펫에서 메이는 빛났다.

매해 5월 열리는 메트 갈라는 패션계의 슈퍼볼이라 불리는 세계 패션계의 가장 큰 행사다. 메트 갈라에 초청 받은 인사들의 의상들은 오스카 레드카펫만큼 파급력이 있어 샤넬, 루이뷔통, 구찌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사활을 걸고 레드카펫 의상을 놓고 경쟁한다.

수많은 유명 브랜드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한국이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온 이민 1세대 젊은 동양인 여성 디자이너에게 의상을 맡긴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다. 메이 머스크가 일론의 어머니로 불리는 것에만 만족하는 여성이었다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위험부담이 큰 도박이었다.

메트 갈라 이후 메이의 커리어는 나의 바람대로 훨훨 날아올라 이제는 더 이상 ‘일론의 어머니 메이 머스크’라는 타이틀로만 소개되지 않는다. 69세에 미국의 트렌디한 화장품 브랜드 ‘커버걸’ 모델로 발탁돼 20대의 슈퍼모델들보다 더 화려한 커리어를 뽐내고 있는 중이다.

메이는 17일이면 70세가 된다. 메이의 70세 생일 파티는 미국 유명 패션지 ‘하퍼스 바자’와 메이가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화장품 브랜드 ‘커버걸’이 주최해 성대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일흔을 앞둔 지금도 모델로서 최고의 위치에 남기 위해 끊임없이 최선을 다하는 메이의 자세는 젊은 모델들과 패션계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일론의 어머니’로 불리기 보다는 모델 ‘메이 머스크’로 불리기를 원하는 그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 어려운 시간을 이겨 내며 쌓인 일 앞에서의 겸손한 자세,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매너,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가진 꿈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열정, 어머니에게 영감을 받은 메이 머스크의 아들 일론 머스크가 성공한 이유가 아닐까.

양유나 YUNA YANG Collection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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