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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유행어 사전] 비트코인

입력
2016.05.0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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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 전자화폐 비트코인의 개발자가 밝혀졌다. 컴퓨터 공학자 출신 호주 기업인 크레이그 라이트가 며칠 전 영국 BBC방송 등에서 자신이 그 개발자임을 시인했다. 비트코인은 “실물 통화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중앙은행 같은 곳 없이 다자간 파일공유(P2P) 방식으로 이용자 사이에 암호화된 공개 키로 거래하는 온라인 가상 통화”라고 한다. 워드프로세싱 프로그램을 쓰는 것과 이메일 주고받는 것 말고는 컴퓨터 무식자인 나로서는 이게 뭔 얘기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2009년에 만들어진 비트코인은 2013년에 큰 화제가 되었다. 그해 연초 1단위당 15달러 하던 게 연말에는 1,200달러 넘게 치솟았다. 지금은 1단위당 440~460달러 정도다. 현재 비트코인의 총 유통량은 대략 1,550만 단위이며 대략 70억달러에 해당한다. 전 세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지폐와 동전의 총량이 대략 5조달러라고 하니까, 실제 화폐 총량의 대략 0.14%만큼의 비트코인이 유통되고 있다.

비트코인의 발행 총량은 2,100만 단위가 그 한계라고 한다. 1단위 비트코인은 소수점 8자리까지 나눌 수 있게 설계되어 있지만, 총량의 한계 때문에 비트코인은 실제 화폐를 대신할 수는 없을 거라고 여겨진다. 또, 1단위 비트코인의 달러당 가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통용되기보다는 축장될 가능성이 더 클 것 같다.

비트코인의 장점 중 하나는 법정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 같은 게 없다는 점이다. 달러는 미연방준비은행이 찍어내고 한국 원화는 한국은행이 찍어낸다. 이들 중앙은행은 가끔 제멋대로 화폐를 왕창 찍어낸다. 양적 완화라는 게 바로 그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란 것은 말뿐이고 완전한 허구다.

조선, 해양 등 부실 산업 부문의 구조 조정과 관련하여 박근혜 대통령의 양적 완화 방침에 거부 의사를 밝혔던 한국은행이 다시 입장을 번복하고 굴복한 것이 그 극명한 사례다. 일단은 한국은행의 윤전기를 통해서 구조 조정을 하겠다는 것인데, 수십조원에 해당하는 그 돈은 결국 국민 호주머니로부터 나가게 된다. 양적 완화에 관한 한, 박근혜 대통령보다 훨씬 더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과연 이런 점을 제대로 깨닫고 있는가가 나로서는 궁금하다.

화폐를 드라이하게 정의한다면, 그것은 중앙은행이 특수 종이에 특수 잉크로 인쇄해 만든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다만, 그 종이 쪼가리의 사회, 경제적 힘과 근거를 국가가 법으로 보장하는 것일 따름이다. 미국 정부가 1971년에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한 이후에 그렇게 된 것이다.

비트코인을 얻는 법은 대략 다음 네 가지다. 첫째는 비트코인 거래소에서 그것을 사는 것이다. 둘째는 채굴해서 얻는 것이다. 자기 컴퓨터를 돌려서 복잡한 암호를 풀어냄으로써 가능하다고 하는데, 보통 수준의 컴퓨터 하드웨어로는 전기세도 안 나온다고 한다. 셋째는 비트코인을 받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거나 혹은 기부를 받는 것이다. 넷째는 불법적으로 얻는 것인데, 비트코인으로 뇌물을 받는다거나 남의 컴퓨터에 침입해서 비트코인 암호 키를 빼낸다거나 아예 통 크게 은행 강도처럼 비트코인 거래소를 해킹한다거나 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나로 하여금 혁신적 상상을 하게 만든다. 1980년대 자판기가 처음 한국에 등장했을 때 나는 화염병 자판기를 상상했다. 지난번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동안에, 시위를 진압하는 인공지능 로보캅이 가까운 미래에 출현할 수도 있다는 무서운 전망이 나왔을 때 나는 이에 대항해서 나는 ‘레보몹(RevoMob)’을 상상했다. 인공지능 로봇들이 시위나 혁명을 대신 해주는 것도 가능할 거라고 꿈을 꿔본 것이다.

비트코인에 사용된 기술 중에 볼록체인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기술적으로 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플랫폼을 이용하면 전자 투표라는 게 쉽고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론조사를 하듯이 선거를 자주 할 수도 있다. 그까짓 정무직 공무원들일랑은 인공지능 로봇을 쓰면 된다. 총선 끝나고 한 달도 안 지나서 다시 개판이 된 정치판을 보고 있노라니 귀가 더 솔깃해지는 얘기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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