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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폐손상 위험 116배” 질본, 연구 결과 3년 묵히다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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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폐손상 위험 116배” 질본, 연구 결과 3년 묵히다 발표

입력
2016.05.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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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 명백히 보여주는 결론

보건당국 안이한 대응 피해 키워

보건복지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 원인이라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온 지 3개월이 지난 2011년 11월에야 가습기 살균제 수거 명령을 발동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와 구제 계획 없이 “피해자와 제조사 간 개별소송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에 반발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복지부 브리핑이 끝난 후 기자들에게 관련 내용을 말하려다 복지부 직원들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보건복지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 원인이라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온 지 3개월이 지난 2011년 11월에야 가습기 살균제 수거 명령을 발동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와 구제 계획 없이 “피해자와 제조사 간 개별소송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에 반발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복지부 브리핑이 끝난 후 기자들에게 관련 내용을 말하려다 복지부 직원들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할 경우 폐 손상 위험도가 116배에 이른다는 보건당국의 연구 결과가 조사 후 3년이 지나서야 공개됐다. 인과관계를 명백히 보여주는 충격적인 결론인데, 정작 피해자 구제에는 무관심한 보건당국의 무책임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질본)가 2011~2013년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성에 대해 조사한 논문 ‘가습기 살균제가 한국 성인 폐 손상의 원인: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환자-대조군 연구’가 지난 3월 18일 국제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에 발표된 것으로 8일 확인됐다. 논문에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 이용으로 인해 폐 손상이 의심되는 환자 16명과 같은 지역에 거주하면서 연령과 성별이 동일한 대조군 60명을 조사한 결과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이들의 폐 손상 위험도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16.1배나 높았다.

질본은 앞서 2011년 8월 가습기 살균제 사용시 폐 손상 위험도가 47.3배 높아진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었다. 47배만 해도 인과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결과인데, 그보다 위험도가 두 배 넘게 높게 나온 것이다. 2011년 조사는 폐 손상 환자 18명과 호흡기나 알레르기 질환으로 입원한 적이 있는 환자 및 산부인과에 입원한 산모 121명을 대조군으로 했다. 이번에 발표된 조사는 환자와 비슷한 지역에 사는 사람을 대조군으로 해 2011년 8월부터 연구를 시작, 2013년쯤 마무리했지만 올해 3월에야 논문을 공개한 것이다.

민관 합동 ‘폐 손상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 옥시 측이 계속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었는데, 이 조사 결과가 공개됐었다면 피해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질본 관계자는 “대조군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위험도 수치는 차이가 날 수 있으며, 이전 조사와 다른 결론이 나온 것도 아니어서 따로 언론에 발표하지는 않았다”며 “논문 발표는 2013년 1차 피해자 조사 개시, 2014년 조사 결과 발표 등 바쁜 일정으로 인해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초기부터 보건당국의 안이한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홍수종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 호흡기알레르기과 교수는 2006년 원인 불명의 폐 손상 환자가 급증하자 의심을 품고 다른 대형 병원 소아호흡기 교수와 함께 회의를 했다. 2008년에는 질본에 의뢰해 바이러스 검사를 했지만 감염병이 아닌 것으로 나왔고, 질본은 원인을 밝히기 위한 다른 조사는 하지 않았다. 질본 관계자는 “2008년 4월 서울아산병원 요청으로 바이러스 검사를 실시했으나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질본은 또 2012년 2월 동물흡입실험 발표 당시 애경 가습기메이트 등에 사용된 원료물질인 클로로메칠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은 폐 손상과의 인과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수거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정부의 1,2차 피해자 조사 대상 중 CMITㆍMIT 성분 제품을 사용한 167명 중 사망자가 37명에 달한다. 환경부는 최근에야 CMITㆍMIT의 유해성 조사를 추가로 실시하고, 폐 섬유화 이외의 다른 증상에 대해서도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피해자들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했음에도 질본은 환경부의 일이라며 나서지 않은 것이다.

백도명 교수는 “당시 CMITㆍMIT 성분에 대한 추가 동물실험이 필요했지만 화학물질은 질본의 업무영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2012년 이후 아예 손을 떼려 했다”며 “그 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했다면 더 쉽고 빠르게 문제가 해결됐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피해자 조사를 지연시킨 데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2012년 말 ‘폐 손상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도, 피해자들에 대한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정밀 검사 비용을 지원할 수 없다며 버티는 바람에 1차 조사가 2013년 7월에야 시작됐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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