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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한 남자를 차지하려는 7명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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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한 남자를 차지하려는 7명의 여인들

입력
2017.09.1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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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한 장면. 클린트 이스트 우드 주연의 1971년 작과 비교해 원작을 더 많이 반영했지만 다른 점도 많다. UPI코리아 제공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한 장면. 클린트 이스트 우드 주연의 1971년 작과 비교해 원작을 더 많이 반영했지만 다른 점도 많다. UPI코리아 제공

매혹당한 사람들

토머스 컬리넌 지음ㆍ이진 옮김

비채 발행ㆍ592쪽ㆍ1만5,000원

1864년 미국 버지니아주. 남북전쟁으로 하나 둘 학생들이 떠나면서 한때 학생이 20명도 넘었던 마사 판즈워스 여자 신학교에는 학생 5명과 교사 2명, 살림을 맡는 흑인 노예만이 남는다. 나름의 위계질서와 규칙을 갖고 있던 그 곳에 변화가 찾아온 건 학생 어밀리아가 근처 숲에 버섯을 따러 갔다가 무릎 밑에 총상을 입은 양키(북부 연방군) 존 맥버니를 발견하면서부터다.

‘“두렵니?” 아주 작은 소리로, 그러나 또렷하게 그가 물었다. “아뇨.”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고쳐 말했다. “네.” “잘 됐네. 나도 두렵거든.” 그가 한숨을 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의 동명 원작 소설은 1966년이란 발표 시점이 무색하게 세련된 감각을 자랑한다. 교장 선생인 마사부터 흑인 노예 매티까지 존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시점으로 이 학교의 위계질서, 존과 자신과의 관계, 존의 등장 이후 달라진 학교의 변화를 서술한다.

“사람들은 앨리스를 보고 아주 예쁘다고 칭찬했어요.” 존을 부축해 판즈워스 학교로 데려가는 길에 어밀리아는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소개와 이 학교 학생들의 특징을 재잘거린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나. 학교에서 네가 가장 예쁜 애가 아니라니.”

냉정한 교사 마사는 한때 집안의 흑인을 도맡아 간병했던 경험을 한껏 살려 존을 치료하는데 열을 올리고, 기력을 회복한 존은 저런 추파를 흑인 노예 매티를 제외한 모든 여자에게 맞춤형으로 던진다. 앨리스에게는 예쁘다는 칭찬을, 에밀리에게는 지적이라는 찬사를, 에드위나에게는 ‘내 사랑’이라는 밀어를 속삭이면서.

‘매티는 흑인이 됐건 백인이 됐건 사람에 대한 판단력이 뛰어난 편이다. (...) “저 남자가 무슨 생각으로 누워 있는지는 잘 알겠어요. 자기가 닭장 안의 유일한 수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통통한 암탉들이 우글거리는 닭장에서요.”’

아버지 말고 남자와 대화조차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존과 사랑에 빠진다. 아버지 지위, 가문의 재산, 미모와 지성으로 설정된 이들의 위계도 복잡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존은 이 상황을 즐기며 7명과 ‘썸’을 타고, 흑인 노예 매티에게 에드위나의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앨리스의 가정은 어떠한지 등등을 캐묻는다.

가장 영악한 꼬마 마리 데브르가 앨리스와 존의 키스를 목격하며 가장 먼저 환상에서 벗어난다. 존은 앨리스와 키스한 날, 에드위나에게 청혼을 하고, 그날 밤 앨리스의 방을 찾는다. 바지를 벗은 채 앨리스와 함께 있는 존을 발견한 에드위나는 계단에서 그를 밀어버린다.

존의 다리를 정성스럽게 꿰맸던 마사는 “그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았다며, 존의 다리를 벤다. 여자들은 다리 없는 존에게 자신의 비밀을 은밀히 털어놓으며 그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남자의 광기, 협박과 반전이 이어지는 후반 100쪽이 ‘스릴러’에 해당한다면, 앞의 500쪽은 저들의 신경전 묘사와 신경전을 갖게 된 배경설명이 이어진다. 영화보다 더 촘촘한 소설 속 갈등은 좋은 집안의 마사가 왜 독신을 고집하게 됐는지, 부유한 판즈워스 가문이 왜 몰락하게 됐는지, 에드위나가 왜 기숙학교를 멀리 떠나가고 싶어하는지 뒷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이 소설을 쉽게 몰입해 읽는 팁. 첫 장부터 차례로 등장하는 화자의 특징을 메모해두라는 것. 책과 메모를 번갈아 읽으면 작품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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