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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위안부 소녀상 이전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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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위안부 소녀상 이전에 반대한다

입력
2015.12.3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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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어떤 조형물의 제막식이 열렸다. ‘평화의 발’이라는 이름의 그 조형물은 북한에서도 잘 보이게끔 임진각에 설치됐다. 목함지뢰에 부상당한 두 부사관의 희생을 기리고 북한의 도발을 잊지 말자는 취지였다. 그걸 만들기 위해 2억 원이 들었다. 그런데 그럴 돈이 있었다면, 부상자의 치료와 예우에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현행 군인연금법은 군 장병이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경우 30일치의 비용만 지원하게끔 규정하고 있다. 군인이 공무수행 중 다친 경우라도 그렇다. 대통령이 위로 방문을 하면서 사회적 관심과 함께 위문금이 조성되었지만, 만일 이 사건이 보도되지 않았다면 부상당한 군인들은 자비로 치료해야 했을 것이다. 작년에도 북한의 지뢰를 밟아 부상당한 부사관이 있었다. 그는 빚을 내어 치료비를 댔다고 한다.

일반 공무원들도 2년치 치료요양비를 받는 것에 비하면 군인 처우는 심히 열악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군인연금법이 개정되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목함지뢰 도발사건 때 부상자들에게 전달된 위문금도 사실은 군 간부들에게 할당한 것이니, 따지고 보면 군인의 피해보상을 다른 군인들로부터 메꿨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형물을 세우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평화의 발은 북한의 도발을 기억하는 대신, 군 장병의 희생을, 국가를 위해 복무하고도 예우 받지 못하는 기막힌 현실을 재빨리 덮어버리기 위한 장치가 아닌가?

전국 각지에 세워진 ‘소녀상’. 연합뉴스
전국 각지에 세워진 ‘소녀상’. 연합뉴스

나는 위안부 소녀상을 볼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지금도 대다수 위안부 할머니들은 빈곤에 처해있다. 여성가족부가 할머니 한 분 당 매달 104만원씩 지급하고 있지만 어떤 할머니는 정부가 주는 이 보조금으로는 약값을 충당하기도 버겁다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보건복지부는 중복 복지사업 정리 검토 대상에 지자체가 할머니들에게 지급하던 생활비를 포함시켰던가 보다. 사정이 이 지경이 된 것은 피해자들이 마땅한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가 모은 성금으로 피해자들의 삶을 위해 쓰는 대신 박물관을 짓고 소녀상을 세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녀상 하나는 일본대사관에서도 잘 보이게끔 율곡로에 설치됐다. 그것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엊그제 한일간 위안부 문제 협상이 타결됐다. 일본은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며,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재단에 자금을 내어놓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나온 일본 정부의 입장 중 가장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럼에도 개운하지가 않다. 일본은 피해자 개개인에게 해야 할 사죄를 한국정부와의 협상을 통해서 했다. 한국정부는 그 자리에 앉아 피해자들을 대신해 사죄 받았다. 피해자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서 말이다. 더구나 이 협상을 ‘최종적 합의’로 결정지었다. 그러니 피해자 할머니들이 반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보다 한국이라는 국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도발을 비난한들 부상당한 군인의 예우가 높아지지 않듯이, 일본의 책임을 아무리 요구해도 위안부 피해자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삶을 찾아주는 것과는 별개다.

예수가 자기 시대 사람들을 몹시 비판했던 이유 중 하나는 당대인들이 선지자의 무덤을 꾸미고 의인의 기념비를 세우기 때문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선지자의 가르침을 따르고 스스로 의인의 삶을 사는 대신, 기념비 따위를 세우면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에 따르면 그것은 위선이다. 그 기념비는 그들이 선지자와 의인들을 죽인 사람들과 똑같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위안부 소녀상도 그렇다. 그것은 소녀상을 세우는 것이 피해자를 돕는 일이라고 믿는, 사실은 피해자들의 삶에 무심한 우리의 위선을 증명한다. 그래서 나는 위안부 소녀상을 없애거나 이전하는 것에 반대한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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