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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유행어 사전] post-truth

입력
2017.01.0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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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간행하는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의 사전 부서에서 2016년 11월 올해의 말로 꼽은 단어다. 객관적인 사실이 감정과 개인적인 신념에의 호소에 비해 여론 형성에 영향을 덜 미치는 상황에 관련되거나 이러한 상황을 가리킬 때 쓰는 형용사다. 이 말이 올해의 말로 꼽힌 직접적인 계기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가리키는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이라고 한다.

접두사 post는 다른 경우에는 이 접두사 다음에 나오는 어근이 가리키는 특정한 사건이나 사태나 상황에 대해서 그저 단순히 ‘이후’나 ‘사후’ 내지는 ‘후기’나 ‘후대’를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post-war(전쟁 이후) 등이 바로 그러한 예다.

하지만 post-truth의 경우 post는 그 다음의 어근이 가리키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거나 부적절하게 된 시기에 속한다는 점을 좀 더 강조하는 쪽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진실이나 진리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거나 영향력이 없게 된 시기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포스트콜로니얼리즘과 같은 말은 한편으로는 ‘이후’라는 뜻을,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모더니즘이나 식민주의로부터 ‘벗어났다는(脫)’ 뜻을 갖기도 한다.

이런 취지에서 post-truth란 말을 처음 쓰게 된 것은 1992년이었는데 이 때에는 이란 콘트라 스캔들과 걸프만 전쟁으로 인해서 정치적 환멸이 크게 생겨났다. 이란 콘트라 스캔들은 1980년대 말 미국 레이건 정부가 적국 이란에 대해 무기를 불법적으로 판매하고 그 이익금으로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부에 대한 반군인 콘트라 반군을 지원한 추악한 정치 스캔들이다.

옥스퍼드 사전 부서가 2016년 올해의 말 후보로 뽑은 다른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adulting(어덜팅): 명사 adult(어른)를 동사로 전용한 뒤 ‘ing’을 붙여서 이를 다시 명사로 만든 것이다. 책임지는 성인의 특징에 맞게 행동하는 관행, 특히 세속적이지만 필수적인 일들을 성취하는 것을 가리킨다. 새 천년에 태어난 신세대가 어른이 되어가는, 함정과도 같은 과정에 대해서 느끼고 있는 양가적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말로 하면, ‘어른질’.

alt-right(얼트-라이트): 대안적 우파의 약자로서 미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던 사람들 일부를 가리킨다.

Brexiteer(브렉시티어):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사람.

chatbot(챗봇): 인터넷 등에서 인간 유저와의 대화를 시뮬레이션 하도록 만들어진 컴퓨터 프로그램.

coulrophobia(광대 공포증): 광대에 대한 극단적이고 비합리적인 공포. 영국만의 특별한 문화적 현상이다.

glass cliff(유리 절벽): 여성이나 마이너리티의 구성원이 실패할 위험이 큰 어려운 상황에서 리더 자리로 올라가는 상황과 관련되어 쓰인다. ‘유리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일에서 영국 수상 테리사 메이는 성공했고 미국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실패했다.

hygge(휘게): 덴마크 말로 ‘아늑함’을 뜻하는데, 만족감이나 복지 혜택을 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편안하고 아늑하고 안락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며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사회문화적 특징으로 간주된다.

Latinx(라틴계): 남아메리카 출신 또는 혈통의 사람. 남성을 가리키는 Latino나 여성을 가리키는 Latina에 비해서 중립적이다.

woke(깨어 있는): 사회의 불의나 부정의에 대해서 민감한 상태. 한국에서도 이미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post-truth와 관련해서 한국 사회의 상황을 돌이켜 본다면, 우리는 포스트-박정희와 포스트-박근혜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성장 신화인 박정희와 그 사이비 상속자인 박근혜는 더 이상 한국 사회의 정치적 지표가 될 수 없다.

이제 본격적인 저성장 사회가 되어버린 한국에서는 세대간 격차에 상응하는 세대간 윤리, 세대간 정의, 세대간 형평성, 세대간 계약 등이 매우 중요하다. 일자리도 없고 다양한 갑질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젊은 세대들의 목소리에 사회 전체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 포스트-탄핵이나 포스트-촛불의 가장 핵심적인 이슈는 바로 그것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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