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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문제는 역시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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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문제는 역시 정치다

입력
2015.06.1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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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바이러스 변이 확인 못해

공기전파 가능성도 아직 희박해

국민 불신 허물 정치지도력 긴요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이 11일 오후 충남 천안시 동남구보건소를 방문, 메르스 일선 현장 의료진과 간담회를 열기 앞서 메르스 방호복을 입은 후 마스크까지 착용해보고 있다. 연합뉴스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이 11일 오후 충남 천안시 동남구보건소를 방문, 메르스 일선 현장 의료진과 간담회를 열기 앞서 메르스 방호복을 입은 후 마스크까지 착용해보고 있다. 연합뉴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확산 사태를 보며 ‘아웃브레이크(Outbreakㆍ창궐)’란 할리우드 영화를 떠올렸다.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로 국내 흥행 성적도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에볼라 출혈열을 연상시키는, ‘모타바’라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질환과의 싸움을 다룬 영화다.

아프리카에서 밀반입된 흰머리 꼬리말이 원숭이가 숙주다. 1차 감염자는 두 명으로, 각각 원숭이가 얼굴에 침을 뱉거나 발톱으로 팔을 할퀴어 감염된다. 2차 감염자는 1차 감염자와 입맞춤을 한 여자 친구뿐이다. 세 사람 모두 출혈열 증세를 일으켜 숨진다. 숨진 1차 감염자의 혈액 표본을 연구하던 병원 관계자의 실수만 아니었다면 이로써 끝이었다. 그가 실수로 유리병을 산산조각을 내어 내용물이 사방으로 비산(飛散)하는 순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치달았다.

바이러스는 이미 전혀 다른 계통으로 변이, 독감 바이러스처럼 공기 전파 능력을 갖추었다. 병원 소재지인 캘리포니아주 시더크릭(Cedar Creek)이란 가상도시 전체에 빠르게 전염병이 번졌고, 정부는 모타바의 확산을 막기 위한 최종 대책으로 도시 외곽에 마련된 격리시설 전체를 신형폭탄으로 ‘증발’시키려 한다. 영웅적 노력으로 백신을 확보한 주인공은 폭탄 투하를 극적으로 막고, 아내를 포함한 환자들을 하나하나 전염병에서 구해낸다.

할리우드 영화답게 특정 이해집단의 음모와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부각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바이러스 질환, 특히 변이 이후의 폭발적 감염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가상 체험할 수 있었다. 메르스가 국내에서 발생했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바이러스 변이가 없기를 빌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변이가 확인된 바 없고, 공기전파의 실례(實例)도 없다. 삼성서울병원 외래환자(115번 환자)의 감염 사례가 병원이라는 폐쇄 공간에 한정된 공기 전파 가능성을 일깨우지만, 다른 경로의 감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 상태다. 설사 다른 경로가 모두 배제되더라도, 응급실에 비산한 14번 환자의 비말(飛沫) 일부가 환기 시설을 통해 응급실 밖으로까지 이동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공기전파라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병원에 한정된 공기전파라도 가능했다면, 삼성서울병원에서만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환자가 발생했으리란 점에서 부정적 시각에 기울게 된다.

또한 문제의 메르스 바이러스가 공기전파가 가능한 변종으로 진화했다면, 정부의 확산방지 대책이 무의미해진다. 아울러 보건당국의 허술한 초기단계 대응에 대한 숱한 지적과 비판도 허튼소리가 된다. 모든 가능성이 열린 영화에서도 공기전파 단계에서의 대책이라고는 군대를 동원해 도시 전체를 폐쇄하고, 고성능 소이탄으로 환자와 시설 전체를 먼지 하나 안 남기고 태워버리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런 절망적 상황이 아니었기에, 초기단계에서 당국이 의료기관과 ‘의심 환자’들의 무분별한 행위를 제한할 엄격한 틀만 갖추었어도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으리란 비난과 탄식의 설 자리가 있다. 근거리 접촉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감염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메르스의 확산은 보건행정, 나아가 정치지도력의 부실 탓이 크다. 의료기관이나 의심환자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빚은 의료문화의 변화 필요성이 활발히 거론되지만, 그런 문화와 사회풍토를 핵심 변수로 고려할 수 있어야 행정과 정치가 위기대응 능력을 갖추는 셈이다.

한편으로 사태 확산의 한 요인인 국민 불신을 씻을 정서적 대응책도 긴요하다. 그제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의 담화 장면을 보며 이미지 전략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절감했다. 혀 짧은 소리의 ‘당부의 말씀’은 배석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무기력한 표정과 함께, 국민의 믿음은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다소 차갑게 느껴지더라도 정부의 강단과 결의를 느끼게 할 만한 사람이 나서는 게 나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도 문제는 역시 정치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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