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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프랑스 현대철학 써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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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프랑스 현대철학 써먹기

입력
2018.05.16 11:06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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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산울림의 1집 앨범 ‘아니 벌써’가 나왔고, 이듬해에 사랑과평화의 1집 앨범 ‘한동안 뜸했었지’가 나왔다. 북한사람들이 이 노래를 들을 수만 있다면, 북한은 바로 그날로 무너질 거야!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미국가수가 이런 노래를 불러서 록 팬을 으쓱거리게 했다. “모스크바의 공산당들아 덤벼라, 우리에게는 5,000명의 록커가 있다.”

‘BTS 예술혁명-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파레시아,2018)를 쓴 이지영은 비틀스가 소비에트 체제와 냉전을 종식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신화를 믿는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를 원용한 지은이는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에서 “기존의 위계질서를 침식, 해체”하는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2016~2017년의 촛불혁명이 우리나라에 국한된 정치변화를 가져왔다면, 방탄소년단으로 인해 초래되고 있는 변화는 전 지구적인 규모의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변혁을 징후적으로 표현한다.” 이 책은 그 동안 축적된 K-팝의 역사, 아이돌 그룹의 존재방식, 문화산업, 팬덤 문화의 관행을 전혀 모르고 쓴 ‘팬픽(Fan Fiction)’이다.

4ㆍ27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난 5월7일, ‘조선일보’는 남한 주사파(主思派ㆍ김일성주의) 대부에서 북한민주화운동가로 변신한 김영환과의 대담 기사를 실었다. 그 가운데 이런 말이 나온다. “2000년대 초 나는 북한에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담은 CD나 USB를 많이 들여보냈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접하고도 주민들은 체제에 대한 저항 의식을 보이지 않았다.” 문화 선전으로 체제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믿는 김영환을 보면 주사파는 확실히 마르크시즘과는 상관이 없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 드라마ㆍ영화ㆍ가요를 소비하고 있다. 그런데도 체제에 대한 저항이 없는 이유를 헤이즐 스미스의 ‘장마당과 선군정치: ‘미지의 나라 북한’ 이라는 신화에 도전한다’(창비,2017)가 잘 설명해 준다. “정치적 반대를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독재정치와 이에 더해 경제적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북한 주민에게 정치적 행동이나 저항에 나설 만한 시간ㆍ에너지ㆍ기회가 없었음을 뜻한다.” 데모가 가능해지려면 쌀독에 쌀이 그득해야 한다. 내일 먹을거리도 없는데 데모하러 나갈 장사는 없다. 독재자가 많은 아프리카의 최빈국에서 측근의 쿠데타 말고 대중의 반란이 없는 이유도 그와 같다. 한국의 보수 우파들은 박정희가 산업화를 해놓았기 때문에 남한 민주화가 가능했다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이 원칙을 적용할 줄 모른다. ‘삐라’와 개성공단 폐쇄는 북한 주민을 투쟁으로 유인하지 못한다. 경제가 있어야 소유가 생기고 인권을 요구하게 된다.

들뢰즈는 어쩌다 방탄소년단을 치장해주는 ‘뽀샵 기계’가 되고 말았나. 비틀즈 이후 대중음악 가사에 체제ㆍ문명 비판을 가미하지 않는 뮤지션은 찾아보기 힘든데다가, 들뢰즈의 여러 개념은 지능적인 문화산업에 사역(使役)하기 맞춤하다. 이런 사역에는 들뢰즈만 불려 나오지 않는다. 예컨대 김흥국의 콧수염을 보고 ‘추접다’라는 반응이 많지만, 프랑스 현대철학은 그의 콧수염을 박대하지 않는다.

김흥국의 콧수염은 그것을 징그럽다고 말하는 일반적인 미의식에 생채기를 내는 ‘푼크툼(punctum)’이다. 얼굴 가운데 외설적으로 현시된 그것은 정우성처럼 매끈한 것만을 찬양하는 외모지상주의가 억압해 온 ‘실재(the real)’의 귀환이나 같다. 지저분한 콧수염은 외모지상주의에 틈을 내는 실재의 기습이며 주류 미의식으로부터의 탈주다. 미시적이고 일상적 혁명을 실천하는 김흥국의 콧수염은 정형산업과 미용산업이 불가능하게 가로막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추함과 우리를 대면시킨다. 그리하여 혐오스러운 것을 환대하고 거북살스러운 타자와 동거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김흥국의 콧수염과 체 게바라의 턱수염에서 차이와 반복을 읽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체 게바라는 정글을 혁명의 장소로 선택했으나 김흥국은 자신의 얼굴을 미디어 삼아 전투를 벌인다. 김흥국은 체 게바라를 고차적으로 회복하려는 리좀(Rhizome) 운동이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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