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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미국판 ‘무릎 꿇기’

입력
2017.09.2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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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20일 열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 인파는 과거 어느 때보다 적었다. 이런 사실과 배경을 보도한 언론에 화가 난 트럼프는 당시 숀 스파이스 백악관 대변인을 내세워 "역사상 최대 인파를 언론이 왜곡했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 주장이 항공사진 등을 통해 거짓으로 드러나자 백악관은 "대안적 사실을 제시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로부터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은 여러 증언이 경합할 때 달리 증언된 사실을 지칭하던 법률용어에서 '믿고 싶고 희망하는 사실'을 꼬집는 냉소로 전락했다.

▦ 지난 17일 열린 69회 에미상 시상식은 스파이스 전 대변인의 깜짝 출연으로 화제가 됐다.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이날 행사에 나온 그는 백악관 스타일의 연단에 서서 "사상 최대, 세계 최대 규모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시상식"이라는 '자학 개그'로 청중을 웃겼다. 또 시상식 사회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셀레브리티 어프렌티스' 진행자였던 시절 수차례 에미상 후보에 올랐던 것을 꼬집어 "트럼프에게 상을 줬더라면 그가 대통령에 나오는 일은 결코 없었을 텐데, 모두 여러분의 책임"이라고 말해 박장대소를 자아냈다.

▦ 방송계의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된 트럼프가 이번엔 미국 프로풋볼(NFL) 선수들과 애국심 논쟁을 벌여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해 8월 NFL의 유명 쿼터백 콜린 캐퍼닉이 백인경찰관의 흑인 사살 사건에 항의해 국가연주 중 기립을 거부한 것이 발단이다. 인종주의에 항의한 이 행위가 NFL의 흑인 선수들의 호응 속에 한쪽 무릎 꿇기 퍼포먼스 등으로 확산되자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NFL선수들이 국가와 국기에 대한 결례를 멈출 때까지 팬들이 경기장을 찾지 않는" 보이콧을 주문했다. '망할 자식(son of bitch)'이라는 욕도 서슴지 않았다.

▦ 그러자 전체 NFL 구단 32개 중 30개 구단이 들고 일어났다. 열혈 트럼프 지지자였던 뉴잉글랜드 페트리어츠 구단주조차 "스포츠보다 더 위대한 통합자는 없고, 정치보다 더 분열적인 것은 없다"며 트럼프에 등을 돌렸다. 전설적인 흑인가수 스티비 원더는 엊그제 뉴욕 센트럴파크 공연에서 "오늘 밤 나는 미국을 위해 무릎을 꿇는다"며 항의에 동참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개가 짖어도 행렬은 간다'는 북한의 막말에서 배운 듯 요지부동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항의든 간청이든, '무릎 꿇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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