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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멍 쉬멍’ 걷는 제주올레 10년… 770만명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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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멍 쉬멍’ 걷는 제주올레 10년… 770만명 ‘힐링’

입력
2017.09.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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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길이 425㎞ 26개 코스 완성

10년간 탐방객 770만명 넘어서

제주관광 1000만명 시대 ‘주역’

이주 열풍 한몫 등 변화 일으켜

외면 받던 동네상권도 특수 누려

안전문제ㆍ관리시스템 등은 과제

제주올레길 코스
제주올레길 코스

10년 전인 2007년 9월 8일 오전 10시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시흥초등학교에 모인 300여명이 느릿느릿 첫발을 뗐다. 아빠의 손을 잡은 아이들, 부부, 친구들이 삼삼오오 학교 정문을 빠져 나와 돌담이 양 옆으로 나란히 자리 잡은 좁은 흙 길을 따라 ‘놀멍 쉬멍 꼬닥꼬닥’(놀면서 쉬면서 천천히) 걸었다. 제주올레의 시작이었다.

㈔제주올레가 ‘세계자연유산 성산 따라 걷기’로 이름을 붙여 주관한 이날 행사는 시흥초등학교를 출발해 말미오름∼종달리 소금밭∼오조리 해안도로∼성산포갑문∼성산일출봉을 거쳐 섭지코지에 이르는 15㎞코스에서 이뤄졌다. 당시만 해도 걷는 여행은 생소했다. 제주를 찾은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렌터카에 달린 내비게이션을 의지해 쫓기듯이 관광지를 돌고 사진을 찍는 정도였다. 하지만 제주어로 집으로 통하는 골목길을 뜻하는 올레길이 열린 후에는 제주관광은 확 바뀌었다. 일상에 지친 많은 이들이 올레길 위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했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보지 못했던 제주의 속살들을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마을사람들 외에는 찾지 않았던 마을안길과 들판을 지나 오름을 오르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안을 걷는 올레길은 제주를 넘어 전국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걷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10년 전 올레길 1코스가 문을 연 뒤 제주 한 바퀴를 잇는 올레 전 코스를 완성하기까지는 꼬박 5년여의 기간이 걸렸다. 21개 정규코스와 우도ㆍ가파도ㆍ추자도 등 제주 부속도서와 중산간을 지나는 알파코스 5개(1-1, 7-1, 10-1, 14-1, 18-1) 등 모두 26개 코스가 생겨났다. 총길이 425㎞. 제주의 해안선 둘레 253㎞의 1.7배나 되는 길이다. 잊혀졌던 길과 사라졌던 길, 그리고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길들이 이어져 올레길로 재탄생한 것이다.

8일 제주올레가 문을 연 지 10년째를 맞는다. 제주올레는 그동안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총길이 425㎞의 26개 코스가 개설됐고, 누적 탐방객만 770만명에 이르는 등 전국에 걷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은 제주올레 10코스 사계해안을 걷고 있는 올레꾼들. 제주올레 제공.
8일 제주올레가 문을 연 지 10년째를 맞는다. 제주올레는 그동안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총길이 425㎞의 26개 코스가 개설됐고, 누적 탐방객만 770만명에 이르는 등 전국에 걷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은 제주올레 10코스 사계해안을 걷고 있는 올레꾼들. 제주올레 제공.

제주올레가 문을 연 지 10년째가 되는 8일까지 올레길을 거쳐 갔거나 찾을 것으로 추정되는 총 탐방객은 770여만 명에 이른다. 첫해 탐방객은 3,000여명에 불과했지만 2013년 100만명을 넘어서는 등 ‘대박’을 터뜨렸다. 처음 올레길을 열 때만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올레길을 걷기 위해 한달에 한번씩 제주를 찾는 이들부터 한달 넘게 제주에 머물면서 올레길을 걷는 ‘올레꾼’들도 생겨났다. 심지어 아예 제주에 정착하는 이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올레길 코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걸은 제주올레 공식 완주자도 지금까지 1,606명에 이른다.

제주올레길은 제주관광은 물론 지역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힐링’ 열풍에 맞춰 올레길이 뜨면서 제주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제주를 찾은 연간 관광객은 2000년 411만명에서 2006년 531만명으로 6년 동안 100만명 넘게 증가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올레길이 만들어진 첫 해인 2007년 542만명이던 연간 관광객은 6년 후인 2013년에는 1,085만명으로 두 배 이상 급증, 제주관광 1,000만명 시대를 열었다.

올레길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선정 등으로 제주자연이 새로운 조명을 받으면서 힐링의 섬으로 인식됐고, 때마침 제주를 오가는 저가항공사의 잇따른 취항으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관광객 급증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올레길은 제주의 여행문화도 한꺼번에 바꿨다. 올레길이 개장된 이후 단기관광에서 장기체류여행으로, 단체관광에서 개별관광으로, 렌터카관광에서 택시ㆍ버스 이용으로, 관광지 관광에서 마을ㆍ재래시장 탐방으로, 일회성 관광에서 지속적인 관광으로 빠르게 탈바꿈했다.

이처럼 변화된 여행문화는 지역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올레길을 따라 기존에 영업을 하던 마을 음식점이나 구멍가게 등에는 올레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어 점차 올레코스 주변으로 올레꾼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와 민박이 들어서고 음식점이나 커피숍 등도 물밀 듯이 들어서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올레길이 문을 열기 이전에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호텔과 골프장, 대형 음식점 등이 관광객들을 독점하면서 정작 도민들은 말로만 ‘관광 일번지 제주’일 뿐 관광객 증가에 따른 체감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올레가 생기면서 과거에는 가지 않던 곳까지 올레꾼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동네상권까지 ‘올레특수’를 누리고 있다. 실제 2009년 만들어진 제주올레 6코스가 지나는 서귀포 아케이드시장은 그해 매출이 40% 늘어나 다음해인 2010년 5월 시장 이름을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으로 아예 바꾸기도 했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도보여행 활성화에 따른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는 올레꾼 1인당 평균 39만원을 지출했고, 단순히 연간 찾아오는 탐방객 수를 곱하더라도 수천억 원의 경제적 효과를 낸다고 추산했다.

올레길은 또 이주열풍에도 한몫을 했다. 일상 생활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를 선물했던 올레길 때문에 아예 제주로 이주를 결심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올레길이 제주를 힐링의 섬으로 만들면서 제주 이주 열풍에 불씨를 붙인 셈이다. 제주지역 연도별 인구 증가율을 보면 2010년 1.6%(9,274명), 2013년 2.2%(1만2,221명), 2015년 3.2%(1만9,805명), 2016년 3.1%(1만9,835명) 등 매달 1,000명 이상씩 인구가 증가했다. 인구 증가는 제주지역 내 자체 수요를 크게 증가시키면서 지역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제주올레는 또 일본과 몽골에도 수출되는 등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끌면서 ‘청정 제주’를 알리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일본 규슈올레는 2012년 2월 협약을 시작으로 매년 2∼4개 코스를 개장해 현재까지 총 19개 코스가 조성됐고, 올해 6월에는 몽골 울란바토르에 몽골올레 2개 코스가 생겼다.

㈔제주올레는 또 올레길을 조성ㆍ운영하며 쌓인 노하우를 아시아의 다른 개발도상국에 전수하기 위해 베트남, 부탄 측과도 올레길 조성에 대해 논의 중이다.

올레길이 제주를 넘어 국내 대표 관광자원으로서 자리를 잡았지만 풀어야 할 과제들도 남아있다.

짧은 시간에 26개의 코스가 개설되면서 유지ㆍ관리에 문제점이 속출하는 등 하나의 민간단체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0년이 지났지만 올레길과 관련해 행정과 ㈔제주올레 간 명확한 역할 분담이 없어 안전문제나 관리운영 상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가 분명하지 않다. 이 때문에 새롭게 운영시스템을 정비하고 행정과 ㈔제주올레의 역할을 분명히 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제주올레 10주년을 맞아 제주연구원 신동일ㆍ최영근 박사가 제주올레의 만족도와 효과에 대한 도민과 관광객들의 의견조사를 토대로 내놓은 ‘제주올레의 효과분석 및 발전과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도민 86.7%, 관광객 87.9%가 안전한 탐방환경 조성을 주문했다. 또 도민 78.2%, 관광객 82.4%가 올레길의 미래를 위해 지역주민의 참여 확대가 중요하다고 봤다.

신동일 제주연구원 연구위원은 “제주올레길이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지금까지 제주올레길의 지역경제파급효과 산출을 위한 객관적 기준이 없어 이에 대한 보완이 시급하다”며 “이를 토대로 올레길이 지역주민의 소득으로 직결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안전한 탐방환경 조성하는 것 등은 앞으로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주문했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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