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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칼럼] ‘생명의 외면’에 길들여지는 사회

입력
2015.04.2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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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생명 외면'이 만든 국가 참사

무고한 죽음 산 자 속에 처절하게 현존

'생명 소중' 제도화가 기억 진정한 의미

“아직도 살아있어서 나는 유죄이다; 아직도 살아있어서 우리는 유죄이다.”

이 죄책 고백은 나치통치하에서 나치의 반대자로 또한 희생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철학자 야스퍼스가 자신의 책 ‘독일인의 죄책’에서 한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살아있음’이 죄책이 되어버린 시대를 우리는 지금 한국에서 경험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의 어두운 이면을 이해하기 위해 ‘상상 속의 실험’을 해보자. 만약 침몰하던 세월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정부 고위 관료들, 재벌들, 또는 그들의 가족들이었다면, 안산이 아닌 강남에서 온 학생들이었다면, 또는 미국이나 독일 국민들이 있었다면, 침몰하던 세월호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대통령은7시간이나 잠적하고, 모두 구조받을 수 있었던 ‘골든 타임’을 어처구니 없이 놓쳐서 단 한 명도 구조받지 못한 채 바로 가족들의 눈 앞에서304명이 서서히 처절한 수장(水葬)을 당해야 했을까. 또한 광화문 광장에서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절규가 대통령과 정치인들에 의하여1년이 넘도록 싸늘하게 외면될 수 있을까.

이 ‘상상으로 하는 실험’은 세월호 사건이 사실상 국가에 의한 ‘생명의 외면’과 방치가 만들어낸 참사라는 국가적 가치관의 어두운 치부를 드러낸다. 즉 세월호 사건은 안전사고만이 아니라 국가적 ‘계층차별주의’와 그에 따른 ‘생명위계주의’가 빚어낸 참사라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모든 국민은 귀하다’고 말은 하지만, 국가를 이끌어가는 이들에게 국민들은 ‘귀한 생명’과 ‘하찮은 생명’으로 나뉘어진다는 것을 세월호 사건은 보여주었다.

죽음의 반복성에도 불구하고 ‘매 죽음 마다 세계의 종국’이다. 그렇기에 ‘304명’은 단순한 통계 숫자가 아니라, 304가지의 각기 다른 ‘세계의 종국’을 의미한다. 무고하게 죽은 자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 속에서 처절하게 현존하고 있다. ‘아직 살아있음의 죄책’을 지닌 우리가 그 죽은 자들을 진정 기억하는 것은 첫째, 다양한 방식으로 행사되는 ‘계층차별주의’와 그에 따른 ‘생명위계주의’에 저항해야 함을 의미한다. 둘째, 사회의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모두 ‘귀한 생명’으로 보는 대통령과 정치가들을 선택하고 지켜보는 ‘책임적 정치의식’을 확고히 다지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생명들의 권리와 삶의 기본적 조건들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어 가는 데에 적극적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넷째,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노를 약자들과의 연대 의식으로 전환시켜서, 우리 스스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변혁의 주체’가 되어가야 함을 의미한다.

타자들의 생명과 무고한 죽음을 외면하는 것, 그것은 서서히 ‘비인간화’라는 절망적 질병 속으로 잠식하는 것이다. 죽은 이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남은 자들과 연대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묻지 말자. 왜냐하면 그 연대의 몸짓을 통해 제일 먼저 변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며, 개별인들의 비판적 주체성의 회복이 사회정치적 변화를 이루는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연대함은 ‘복수(復讐)의 정치학’이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한 ‘책임의 정치학’에 의해 작동되어야 한다.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제도화하는 정의와 평등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아직도 살아있음’에 대한 책임적인 죄책 고백이며, 세월호를 ‘기억함’의 진정한 의미이다.

‘생명의 외면’에 길들여지는 사회는 타자의 생명만이 아니라 ‘나’의 생명조차 아무런 의미가 되지 않는 ‘비인간화의 사회’로 전이되는 사회이다. “무관심은 인류에 대한 범죄의 시작”이라는 데리다의 말은, 살아남은 자들인 우리에게 ‘생명의 외면’이란 사실상 ‘인류에 대한 범죄의 시작’이라고 경고한다.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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