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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등에 식은 땀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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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등에 식은 땀이 난다

입력
2018.04.23 03: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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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이렇게 빨리 바닥으로 무너지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최근 발표된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이야기다. 지난 2012년 중국 특파원으로 베이징에 갔을 땐 지하철을 타면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다. 출퇴근길 시민 네 명 중 한 명 꼴로 삼성전자 휴대폰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광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2012년 17.7%의 시장 점유율로 당당히 1위에 오른 지 불과 5년 만에 이젠 화웨이 오포 비보 샤오미 등 중국 현지 업체들에 밀려 열 손가락 안에도 못 드는 신세가 됐다.

현대차도 크게 다를 게 없다. 2014년 중국 승용차 시장에서 4위까지 오른 베이징현대차는 지난해 9위로 후진했다. 판매량은 전년 대비 27.8%나 감소했다. 지리 창안 창청 등 중국 현지 업체들이 현대차를 추월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 쫓겨나고 있는 것은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 경제에는 적신호다. 이제 우리가 경쟁 우위인 분야는 반도체 정도에 불과하다. 지금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는 것은 반도체다. 삼성전자가 1분기 사상 최대 실적(매출 60조원, 영업이익 15.6조원)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반도체 덕이다. 영업이익의 70%를 반도체가 해 냈다. 17개월 연속 증가한 우리나라 수출의 일등공신도 반도체다.

그럼 반도체의 경쟁 우위는 얼마나 유지될까. 기본적으로 반도체는 사이클이 강한 업종이다. 지금은 초호황기여서 D램 가격이 4달러에 육박하고 있지만 침체기엔 1달러도 못 받는다. 천수답 처지다. 더구나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은 맹추격에 나섰다. 양쯔메모리테크(YMTC) 이노트론 푸젠진화반도체 등 중국의 3대 메모리 업체는 곧 시험 생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은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는 원년이 될 것이란 이야기다. 물론 중국이 반도체 수율 등 생산성을 높여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국은 뭐든지 가능한 나라다. ‘안보’ 등을 핑계로 자국 기업에게 메이드인차이나 반도체만 쓰라고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휴대폰과 자동차처럼 예상보다 훨씬 빨리 중국산 반도체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밀어낼 수도 있다.

지금 우리의 급선무는 차세대 먹거리를 찾는 일이다. 그나마 반도체가 호황인 이 때 한국 경제의 앞날을 책임질 신성장 산업과 서비스를 찾아 국가적 역량을 쏟아 부어야만 한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업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21세기 신(新)기업가 정신이 꽃 필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도 격려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상황은 정반대에 더 가깝다. 차세대 먹거리의 싹조차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전 세계가 4차 산업혁명에 승부수를 걸고 있는 역사적인 전환기다. 미국 중국 일본 등에서는 이미 인공지능,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신성장 산업의 기업들이 재계의 판도를 뒤바꾸고 있다. 우린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금융권에서도 새로운 얼굴이 없긴 마찬가지다. 당국은 여전히 규제를 전가의 보도로 여긴다. 이렇다 보니 ‘일자리 정부’ 출범 1년에도 청년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다. 사실 일자리 문제도 한국 경제에 더 이상 새로운 산업, 신생 기업, 혁신적인 서비스, 젊은 피가 전혀 안 보이는 게 핵심이다. 새로운 성장이 없으니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도 없는 것이다. 일자리는 ‘일자리상황판’과 ‘예산’이 아니라 기업과 신서비스가 만드는 것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 2002년 “등에서 식은 땀이 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 땐 의례적인 위기론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요즘 그 말이 새삼 다가온다. 암담한 한국 경제의 앞날을 생각하면. 박일근 경제부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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