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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참을 수 없는 ‘반성’의 가벼움

입력
2017.10.25 20: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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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진지한 반성은 피해자의 회복, 용서를 가능하게 할 1차 전제일 것이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가해자의 일방적 후원, 기부 등이 양형 감경요인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뱅크
가해자의 진지한 반성은 피해자의 회복, 용서를 가능하게 할 1차 전제일 것이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가해자의 일방적 후원, 기부 등이 양형 감경요인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뱅크

반성과 용서만큼 어려운 개념이 또 있을까. 어쩌면 최근 몇 해간 취재 중 가장 몰두한 화두는 이 둘일 것이다. 성실히 고민했다기보다는 난해해 머리와 가슴이 늘 뒤죽박죽이었다는 뜻이다.

사건, 사고, 범죄의 주변을 배회할 때는 ‘반성 없는 가해자’를 성토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뇌리에 빼곡했다. 폭행, 학대, 성폭력 등 사연에 분노할 때마다 전문가들에게 재발방지, 교화방안 등을 묻고 다녔지만 뾰족한 해법은 늘 멀리 있었다. 그럴 때면 물었다. “엄벌주의가 답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들이 뉘우치나요.”

찌푸린 미간, 짧은 정적 뒤에 이어진 반응들은 이랬다. “허무한 얘기지만 본인 의지가 제일 중요할지 몰라요. 온 학교와 가정과 사회와 교정시설이 다 함께 나서 상담과 교육을 해도 될까 말까인 게 현실이라.”

반면 성직자나 학자를 만나 ‘삶을 위한 한 말씀’을 청할 때면 늘 용서의 개념 때문에 동공지진을 일으키거나 머리를 쥐어 뜯어야 했다.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7번이 아니라 77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용서하고 노여워 마세요.” 그럴 때면 또 물었다. “용서의 전제 조건 같은 것은 없을까요. 죄 지은 자가 반성도 안 한다면요.”

찌푸린 미간, 긴 정적 뒤에 이어진 반응들은 이랬다. “자신보다 못한 이를 용서하는 것이 진짜 용서라는 말씀도 있긴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진상규명과 반성이 전제가 돼야 하는 것이 우선이긴 하죠.” 알 듯 모를 듯 더 아득해질 때면 내 무지와 신심(信心) 부족을 탓하며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속으론 ‘나중에 어디에서, 특히 피해자 앞에서 이런 말은 결코 안 하리’라 생각하는 날들이었다.

이렇게 답 없는 고민을 이어가는 동안, 법정이나 학교폭력위원회 등에 회부된 가해자나 그 변호사도 반성 혹은 ‘반성 흉내’에 대해 공부깨나 했다는 사실을 안 건 최근이다. 현장 활동가, 상담사, 치료사 등으로부터 비슷한 황당사연을 연달아 듣고서다.

사연 하나, 전과 6범의 몰래 카메라 촬영 상습범이 또 다시 재범해 전문가 치료를 받게 됐다. 알고 보니 그가 앞서 ‘반성 노력’을 근거로 가벼운 처벌만 받아 온 비결은 권위를 알 길 없는 치료사에게 받은 상담 확인서 한 장이었다. 사연 둘, 다른 몰카범은 돌연 성폭력상담소에 정기후원금을 납부하고 스스로 출력한 온라인 송금명세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결과는 ‘반성 자세’를 이유로 선고유예. 후원은 바로 선고 다음 달 끊어버렸다. 사연 셋, 집요한 학교 폭력에도 뻔뻔하던 가해학생이 돌연 찾아와 연신 문을 두들기는 통에 공포에 떤 피해자 가족. 만남을 거부하자 가해자는 날짜만 달리 쓴 사과편지 십 여장을 우편함에 밀어놓고 사라졌는데, 알고 보니 다음날 학폭위에 재심을 신청했고 ‘반성, 사과를 위한 노력’을 이유로 전학징계를 피하게 됐다.

차라리 ‘저를 용서하지 마시라’는 가해자들이 순수해 보일 판이다. 특히 가해자들이 상담기관 주변에서 벌이는 일들은 촌극 그 자체였다. 대뜸 후원금을 낼 테니 기부영수증부터 보내달라 독촉하거나, 몇 달 후 돌려달라 요구하거나, ‘감형을 못 받았으니 돌려달라’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단다. 이 와중에 일부 법무법인은 감형사례를 내걸어, 성범죄도 이런 비법으로 무죄, 불기소, 집행유예 등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홍보에 나섰다. 안 그래도 벅찬 현장단체들은 ‘불순한 후원자’ 색출에도 진을 뺀다.

반성과 용서는 모두에게 여전한 난제일지 모르나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날조한 몇 장의 서류가 ‘진지한 반성’을 증거할 순 없다는 것이다. 이 자명한 사실을 법원이나 학교가 모를 리는 없다.

마침 법원 안팎에서는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 즉 피해자를 절차의 중심에 놔 그 고통을 보듬고, 피고인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끌어내는 방법에 대한 연구도 시작된 마당이다. 양형 감경요인을 검토할 때부터 일방적 후원과 기부 서류 등을 배제하거나 조금 더 예민하게 진정성을 검증하는 것으로 그 고민의 첫 발을 떼면 어떨까.

부릅뜬 매의 눈 덕분에 가해자의 꼼수가 실패로 돌아가는 장면을 목도할 때, 즉 정의로운 사법 시스템을 경험할 때 비로소 회복과 희망의 실마리를 슬며시 붙들 피해자들이 적지 않다.

김혜영 기획취재부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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