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 감독이 동료 감독을 성폭행한 사건과 관련해 당사자들이 속했던 한국영화아카데미(아카데미)가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고 피해자에게 고소 취하를 종용하는 등 2차 가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는 지난달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미투(#MeToo)’ 게시글을 올려 이 감독에게 당한 성폭행 피해를 고발하면서 아카데미 내부에서 2차 가해와 사건 은폐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10일 대법원에서 준유사강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 감독은 미투 폭로 이후 영화계 은퇴를 선언했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피해자의 주장을 조사한 결과, 사건을 최초 인지한 책임교수가 피해자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건을 은폐하려 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책임교수는 가해자 측 증인으로 재판에 출석했을 뿐 아니라 아카데미 직원에게도 가해자의 소송 관련 요청에 협조할 것을 부탁하는 등 재판에도 관여했다.
아카데미 원장은 사건을 인지하고도 상급기관인 영진위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책임교수의 독자적인 사건 처리를 묵인하는 한편 가해자의 영화를 아카데미 차원에서 지원ㆍ홍보하기까지 해,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이 감독은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장편 영화 연출작인 ‘연애담’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그 외 책임교수들도 피해자의 도움 요청에 방관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사건에 관심을 두지 않아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난 사실도 알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직 선임 직원은 원장의 요구로 사건을 영진위 사무국에 보고하지 않았고, 하급 행정 직원은 상부 결재 없이 가해자에게 법원 제출 확인서를 작성해 주고서도 사후 보고하지 않는 등 보고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아 사건이 장기간 은폐됐다.
영진위는 조사 결과를 감사팀에 통보해 필요한 행정 절차를 마쳤으며 관련자들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영진위는 “오석근 위원장이 지난 16일 피해자에게 조사 결과를 일리면서 직접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 대책도 세우겠다는 의지를 전했다”며 “아카데미 내부 운영 체계를 점검하고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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