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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단순하게 살아보려 해”… 고민은 이미 해결되고 있었다

입력
2016.09.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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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였던 산티아고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의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가는 길이다. 카미노 데 프란세스라고 불리는 코스는 프랑스 남부 생장피데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지는 800km.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아스트로가 구간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아스트로가 구간
나헤라-산토도밍고 데 까사다 구간의 풍경
나헤라-산토도밍고 데 까사다 구간의 풍경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또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었다. 무엇이든 물어보면 잘 대답해주는 친구 녀석도 “우리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것일까”라고 물으면, “뭐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고 핀잔을 주곤 했다. 그러나 그런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12세기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거나 그곳에서부터 길을 나섰다. 파올로 코엘료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고 했는데 과연 진짜일까?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렇게 시작됐다.

시간에 대하여

순례 첫날, 생장 생장피데포르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27km를 걸어야 하는데 길은 피레네 산맥 위를 지난다. 새벽 안개 속을 가만히 걸어갔다. 완벽한 정적이었다. 내 발걸음 소리와 내 숨소리 이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항상 이루기를 소망해오던 곳이지만 그곳에 서자 어느새 서두르고 초조해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출발점인 생장피데포르
출발점인 생장피데포르
생장피데포르-론세스바예스 구간은 피레네 산맥을 넘는다.
생장피데포르-론세스바예스 구간은 피레네 산맥을 넘는다.

지난 여행에서 무릎이 좋지 않아 몸을 움츠리다가 정해진 일정을 따르기 위해 다시 우적우적 걸어가니 뒤에서 지켜보던 프랑스 부부가 내게 말을 건넨다. “그렇게 걸으면 안돼요”라고 한다. “억지로 걸으면 안돼요. 무릎이 안 좋으면 쉬었다가 다시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리세요. 조금 늦게 도착하더라도 천천히 걸으세요. 그리고 주위도 둘러보면서 즐거움을 찾아보세요.” 내 마음을 어떻게 꿰뚫으신 건지 그렇게 부부는 산티아고 순례길 걷는 방법을 알려주시고 홀연히 사라지셨다.

프랑스 순례자 부부
프랑스 순례자 부부
생장피데포르-론세스바예스 구간
생장피데포르-론세스바예스 구간
나헤라-산토도밍고 데 까사다 구간
나헤라-산토도밍고 데 까사다 구간

스마트폰을 가만히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속도를 늦추고 내 주위를 둘러싼 풍경을 둘러보았다. 점차 차분해져 가고 어느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느새 강물소리와 바람에 날리는 낙엽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윤곽을 띄어가면서 나의 시력도 다시금 회복되는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춘 듯 했으나 그렇게 시각이 변한 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나를 둘러싼 주위에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여느 때처럼 이곳에서도 오직 순례를 빨리 끝내려는 욕망만이 앞섰던 걸까? 들판과 마을과 성당들과 사람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전에는 너무 익숙해 아무런 깨달음도 주지 않았던 것들이 말이다. 고단하게만 느껴졌던 길들이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얼마쯤 걷자 이미 안개는 말끔히 걷혀 있었다.

배움 19: 행복은 전혀 다른 시각에 있다

불행에 대하여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내 앞에 단조로운 풍경이 이어졌다. 길을 가는 중 미국에서 회계사로 일한다는 30대 후반의 친구에게 말이나 붙여보자 하고 “Why Santiago?”라고 물었다. 그는 “Divorce(이혼)”라고 짤막하게 답을 했다. 곧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딱히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하던 중 우연히 그날 같이 알베르게에서 머물게 되었고 마침내 각자 이곳으로 오게 된 동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사실 불행해. 내 안의 열정이 사라졌어. 그냥 출퇴근을 반복하며 일에 몰두하며 항상 시간에 쫓겨 살았어. 사실 지금은 마지막 그날 아내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감정이 메말라 버린 건지 이혼하자는 말에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어. 일을 제외하고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 좋은 남편도 좋은 친구도 되지 못했어. 아무 감정 없이 가족과 친구들을 대한 날들을 후회해. 내 삶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이제 단순하게 보려고 해. 나는 이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훗날로 미루지 않으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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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장피데포르- 론세스바예스 구간
생장피데포르- 론세스바예스 구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많은 청년들은 꿈과 현실 그리고 현실과 이상 속 고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왔다고 했다. “제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어요. 대학 졸업 후 부모님이나 친구들 말처럼 그냥 취업하고 거기에 만족해야 하는 건지.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건지 고민 중이에요”라는 박모씨도 있었다.

손모씨는 “저는 제 인생이 특별하다 생각했어요. 그러나 어느 순간 돌아보니 그냥 평범한 사람이더군요. 저도 모르게 현실에 안주해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해서 회사를 사직하고 이곳에 왔어요”라고 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세상에 나가야 하는 청춘이나, 은퇴해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 등 우리들은 살다 보면 종종 선택의 기로에 선다.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에 의문을 품기도 하고 지난날의 꿈을 좇기 위한 확신을 이곳에서 찾아 보기도 한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있지만 어느새 말을 건네보면 활짝 웃으며 다들 진심을 얘기한다.

그들의 고민은 이미 이 길을 걸을 때부터 해결돼가고 있는 것일까? 마음속의 열정을 깨우겠다고 이미 결정을 내린 것이니 말이다. 비록 남들이 비루하다고 비웃더라도, 늘 마음속으로 바라지만 뛰어들 용기를 내지 못했던 꿈을 찾으러 왔으니 말이다. 그들의 얼굴은 나를 찾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이자 잊어버린 옛 꿈을 만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배움 20: 행복은 자기 마음속의 열정을 깨워 지난날의 나를 찾는 것이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아스트로가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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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헤라-산토도밍고 데 까사다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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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르동 고개
뻬르동 고개

행복여행가 김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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