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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곧 망한다던 북한

입력
2015.07.2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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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지 한 달여 지난 1994년 8월 19일. 평양 대동강 남쪽 외교단지에 “김정일 타도하자”는 삐라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외신을 타고 전해졌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 삐라의 정체가 확인되기 전까지 북한 내에서 조직적 저항이 시작되었다는 판단은 시기상조라고 여겼다. 그러나 청와대는 달랐다. 며칠 후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일전의 삐라 사건에 대해 국가안전기획부가 수집한 정보를 김영수 민정수석이 보고하자 박관용 비서실장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드디어 시작됐구만”이라며 반색을 했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각종 공ㆍ사석에서 “통일은 새벽처럼 온다” “북한은 길어야 3년”이라는 말을 장마철의 소나기처럼 쏟아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이 난 지 얼마 안 되는 2010년 12월 초.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렸다. 임기 1년의 위원장으로 연임된 고건 전 국무총리와 위원들이 2기 업무보고를 했다. 이 가운데 역점 사업인 ‘북한에 나무 심기’를 보고하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북한 곧 망할 건데 나무는 심어 뭐 합니까”. 평소 북한 녹화사업에 지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던 고 전 총리는 이 말에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그 이튿날 그는 “위원장직을 사임한다”며 미련 없이 물러났다. 이 대통령은 국정원으로부터 “김정일 정권 길어야 1, 2년”이라는 보고를 받은 터였다.

2015년 5월 30일에 국가정보원을 비밀리에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김정은의 공포정치로 인해 북한 체제에 불안한 징조가 나타났다” “내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 발언 이후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총살 당한 이후 공포정치에 불안을 느낀 북한 고위 외교관과 군 장성의 망명이 이루어졌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걸로 북한 체제는 이제 끝장 날 것처럼 보였다. 한 달 여 후인 7월 10일에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여기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방문 당시에 했던 말을 또 반복했다.

곧 망한다던 북한은 아직도 망하지 않고 있다. 많은 탈북자들은 이런 남한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도대체 망한다는 것, 불안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전의 김일성, 김정일과 같이 김정은 국방위원장도 영생불멸의 존재는 아니다. 지도자의 운명은 언제나 자연수명에 따라 명멸하는 것이고 국가는 그에 따라 크고 작은 변화를 겪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북한이라는 국가 자체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터인데, 왜 자꾸 북한은 망한다고 하느냐는 것이다. 500년 역사의 조선이지만 마지막 100년은 망한 채로 국가를 유지했다. 사실 남한의 보수정부 지도자들은 북한이 오늘 망한다, 내일 망한다는 말로써 북한에 대한 모든 판단을 대체해왔다. 북한에 대한 일종의 신경병리학적 불안 증세를 갖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는 북한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마치 어떤 확신을 갖고 북한은 곧 망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던 전 정권의 청와대 실세 비서관이 언론에 나와 “북한에 장마당과 같은 시장경제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는 북한을 효과적으로 압박하여 변화시킨 전 정권의 성과”라고 주장하는 장면은 이중적이다. 이 말은 북한의 경제개혁 성과가 나타나 앞으로 망할 일은 없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런 국가 지도층의 정서에서 사실 불안한 당사자는 북한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의 새로운 역사, 국운이 융성하는 한반도 시대를 만들 비전과 용기가 없는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 지난 20년처럼 “곧 망할 것 같은 북한”에 대해 주절거리며 무능력한 자신을 변호하려는 것 아닌가?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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