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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쳐 주겠다" 막말 이사장님은 '공감결핍증후군'이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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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쳐 주겠다" 막말 이사장님은 '공감결핍증후군'이신가

입력
2015.05.1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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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와 권력 가진 사회지도층

타인의 감정에 무감각한 경향

비언어적 신호 배제된 SNS선

막말 못잖은 '글'이 갈등 증폭

감정 조절해 말하면 소통 가능

차분한 '비폭력 대화' 실천 중요

“그들(비대위 교수들)이 제 목을 쳐 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쳐줄 것이다.” 학과 통폐합 등 대학 구조조정 개혁안을 두고 교수들과 갈등을 빚던 박용성 전 중앙대 재단이사장이 사태 당시인 지난 3월 일부 보직교수들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이다. 박 전 이사장은 또 다른 이메일에서 중앙대 교수비대위를 화장실 변기를 뜻하는 ‘Bidet 委(비데위)’로 비아냥거리는가 하면 비대위 교수들을 ‘조두(鳥頭)’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런 사회지도층의 부적절한 막말에 대해 ▦정상적인 노화 과정에 의한 인지적 변화 ▦사회적 지위에 의한 공감능력 감소가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달로 대면접촉이 적어진 대중들이 말이 아닌 글로 타인을 무차별로 공격하는 ‘보이지 않는 막말’ 문제도 심각하다고 전문의들은 지적한다.

박 전 이사장, 과거집착?감정반응 민감해져 ‘막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박용성 전 이사장 같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막말을 서슴지 않는 것에 대해 “나이가 들면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에 의존해 빠른 결정을 내리는데 급변하는 사회환경에서 잘못된 기존 전략을 집착할 경우 막말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나이가 들면 판단에 따른 결과보다 수반되는 감정반응에 더 민감해진다”며 “현재 처한 상황이 불안하거나, 제안자의 태도가 무례하다고 느끼면 결정을 미루거나 바꾸는 경향이 보인다”고 했다. 박 전 이사장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교수들이 대학 구조조정 개혁안을 수용하지 않자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반응에 따라 돌출행위를 저질렀다는 얘기다.

사회지도층의 막말은 ‘공감결핍증후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감결핍증후군이란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질수록 점점 더 다른 사람의 감정에 무감각해지는 경향을 의미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조직의 최고위층 인사가 공감결핍증후군을 갖게 되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지시나 전략 강요 ▦부하를 당혹스럽게 하는 공식발표, 명령 ▦힘들어하는 부하에게 냉담하게 반응하는 등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대중, 직접대면 생략하고 ‘SNS’서 무차별 타인 공격

막말은 사회지도층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SNS가 보편화하면서 대중들이 ‘말’이 아닌 ‘글’로 타인에게 막말을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소통과 공감은 직접 대면을 통해 더 잘 이뤄진다. 숨소리, 목소리, 태도, 표정은 말로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상대방에게 전달해 준다. 하지만 비언어적 신호가 배제된 SNS는 상대의 의도와 감정에 대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홍나래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람의 생각, 감정, 행동은 서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사회관계망서비스가 발달하면서 직접 대면 없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고 했다.

막말이 과도기적 문화현상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과거 우리사회는 말을 많이 하면 ‘천박하다’ ‘경솔하다’ ‘품위가 없다’며 면박을 줬다.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아껴야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자기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이 생존이 어려운 처지가 됐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에 서툰 것이 사실”이라며 “소리를 지르고 남을 공격하는 것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배치운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막말은 개인, 사회구성원, 세대 간 소통이 단절된 우리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시대적 산물”이라며“막말을 통해 개인적으로 내재된 공격적 성향과 분노가 해소돼 후련함을 느낄 수 있지만 당사자는 물론 상대방 모두에게 정신적 상처와 심각한 후유증이 초래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막말 심하면 ‘간헐적 폭발장애’ 의심 필요

언어폭력이 최근 3개월 동안 1주일에 이틀 이상 발생하고, 이로 인한 재산 손실과 신체적 손상이 1년에 3번 이상 발생하면 ‘간헐적 폭발장애’로 진단, 치료가 필요하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또 막말을 서슴지 않는 이들 중에는 원한과 분노라는 감정으로 위장된 우울장애, 인격장애를 겪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박한선 전문의는 “간헐적 폭발장애 진단을 받기 위해서는 분노와 막말이 상황과 무관하게 어떤 계획이나 목적 없이 발생해야 한다”며 “언론에서 보도되는 막말이나 무례한 행동은 성격상 문제나 상황에 의한 반응적 행동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했다. 배치운 교수는 “막말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은 우울증, 불안장애, 사회 공포성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며 “가해자도 내재된 정신병리가 고착돼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막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박한선 전문의는 “문자화된 언어는 아주 적은 정보만을 전달할 수 있을 뿐”이라며 “상대방과 충분한 공감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SNS나 문자메시지보다 전화를 하고, 전화보다 직접 대면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홍 교수는 “막말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얼핏 생각하면 그냥 말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 말하면 상대방과의 소통은 물론 관계개선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일어난 일이나 사태를 정확히 관찰해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그 일과 관련해 생겨난 ‘나의 느낌’을 차분히 말하며, 그 느낌에서 비롯한 나의 어떤 욕구나 바람을 전달하면서 상대방에게 도움을 청하는 ‘비폭력 대화’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천재 비디오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은 평소 동료의 기 죽이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날 초대를 받아 간 무용 공연에서 그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관람 중 코까지 골며 잠을 잤다. 하지만 그는 공연이 끝난 후 무대 뒤로 이동해 “이때까지 본 공연 중 최고였어!”라며 무용가에게 찬사를 보냈단다. 위대한 예술은 냉철한 비판보다 격려에서 탄생한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었다.

박한선 전문의는 “평소 욱하는 성질로 유명했던 마크 트웨인은 어떤 사람에게 화가 나면 그를 무섭게 욕하고 공격하는 편지를 쓴 후 사흘 간 서랍에 간직했다가 사흘 후에도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으면 그냥 편지를 보냈지만 화가 가라앉으면 편지를 찢어 버렸다”며 “SNS나 인터넷 등에 자신이 올린 막말의 기록이 영원히 남아 평생 후회하면서 살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한국인 "없다" 습관화… 긍정의 말씨가 밝은 미래 불러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말은‘없다’이다. 고려대 김흥규(국문과)·강범모(언어과학과) 교수팀이 1990년대 나온 127종의 자료에서 우리말과 글 150만 어절을 정리한 결과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평상시 습관화 된 ‘없다’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 사회에서 개인이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OECD ‘행복지수’에서 33위를 차지해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부정적인 언어와 함께 욕의 일상화도 문제다. 2011년 여성가족부 등 정부 5개 부처가 국무회의에서 보고한 ‘청소년 언어 사용 실태’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73%가 매일 욕을 사용하고 있다. 전문의들은 “청소년들이 문화를 접하는 통로가 인터넷과 영화인데 폭력어와 욕설이 난무해 청소년들이 여과 없이 사용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한다.

미국 심리학자 엘마 케이츠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평상시 말을 할 때 만들어지는 침은 무색의 침전물이다. 재미있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한 사람의 침천물을 추출해 보면 핑크빛 침이 나온다. 하지만 욕을 많이 한 후 침을 추출하면 갈색 침전물이 나온다. 연구팀이 이 침을 실험용 쥐에게 투여했더니 얼마 되지 않아 쥐가 사망했다. 막말과 욕을 일삼는 이들의 행위는 자살행위와 같다는 연구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천금말씨’의 저자 차동엽 신부는 ▦감사의 말씨 ▦축하의 말씨 ▦희망의 말씨 등 3대 천금말씨를 일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 신부는 “국민들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쓰기 시작한 시기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기와 중첩됐다”며 “오스트리아 유학 시 ‘그라툴리어렌(축하합니다)’란 말이 그곳 국민들의 일상언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는데 3만 달러 시대를 당겨줄 말씨가 바로 ‘축하의 말씨’”라고 했다. 또 “긍정의 미래는 부정적 언어에서 탄생하지 않는다”며 “희망의 말씨가 널리 퍼져야 미래가 밝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치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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