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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ㆍ기술자 오가는 장인, 톤마이스터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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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ㆍ기술자 오가는 장인, 톤마이스터 아시나요

입력
2017.01.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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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녹음 작업은 사전작업, 녹음, 편집 세 단계를 거친다. 인터뷰 직전 롯데콘서트홀 개관공연 연주의 최종 마스터링 작업을 끝내고 들뜬 최진 씨는 “앨범 한 장 나올 때 마다 새 자식을 만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음반 녹음 작업은 사전작업, 녹음, 편집 세 단계를 거친다. 인터뷰 직전 롯데콘서트홀 개관공연 연주의 최종 마스터링 작업을 끝내고 들뜬 최진 씨는 “앨범 한 장 나올 때 마다 새 자식을 만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여기 앉으세요. 이 스튜디오에서 소리가 제일 잘 들리는 ‘스위트 스팟’인데, 공연장으로 치면 오케스트라 지휘자 자리죠.”

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주택가의 한 지하 스튜디오. 부채꼴로 펼쳐진 스피커 5대가 일제히 오르간 연주를 내뿜자 신이 난 톤마이스터 최진(44)씨가 스튜디오 가운데 책상 의자를 가리키며 외친다. 40여개 음원 주파수가 깜빡이는 모니터, 메모가 빼곡한 총보, 디지털 편집기로 꽉 찬 책상은 흡사 만화에서 본 우주선 조종석을 닮았다. 인터뷰 직전 롯데콘서트홀 개관 공연 연주의 마스터링 작업을 끝냈다는 그가 한껏 들떠 다시 외친다. “연주홀 잔향이 길어서 인공 에코를 하나도 안 썼어요!”

우리말로 ‘소리 장인’이란 뜻의 톤마이스터는 1940년대 후반 클래식 음반이 본격적으로 산업화를 이루며 생긴 직업이다. 경력 17년이 된 최씨는 “쉽게 말해 음반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를 합한 역할”이라고 정리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김선욱 손열음, 소프라노 조수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등 국내 유명 연주자 또는 오케스트라의 앨범에서 그가 참여하지 않은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인정 받는 톤마이스터다.

도이치 그라모폰, 소니 등 클래식 레이블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톤마이스터는 최씨를 포함해 단 3명. 악기 특성, 음악사, 화성악 등 음악의 기본적인 요소는 물론이고 기계와 공학 기술까지 익혀야 하기에 전 세계적으로도 수십 명에 불과한 희귀 직업이다.

“연주홀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요. 연주홀, 연주자 소리를 체크하면서 마이크 종류나 배치를 바꾸고 오케스트라에서 연주자 배치도 손보죠. 롯데홀 개관연주는 마이크를 40여개 썼어요. 위치가 10cm만 달라도 소리가 아주 달라지죠.”

본격적인 녹음이 시작되면 그는 프로듀서로 변신한다. 지휘자, 연주자와 소통하며 녹음에 적합하게 연주를 다듬는다. 정확한 음정 박자를 맞추고 최상의 음질을 뽑아내도록 연주자를 독려하는 것도 톤마이스터의 몫이다. 그가 작업한 앨범 10장 중 2~3장 꼴로 별도의 프로듀서가 있는데, 이 경우 톤마이스터는 엔지니어 역할만 맡는다.

편집 작업에는 50~100시간이 걸린다. 각 마이크에 녹음된 음원을 “10~30초 단위로 잘라” 최상의 음원을 이어 붙이고 각 음원의 크기, 음색, 중저음 비율 등을 맞춰 최상의 음질을 뽑아낸다. “지금 쓰는 기계는 2000년대 중반 출시된 피라믹스의 열 번째 버전이에요. 초고해상도 녹음이 가능하고 마스터링한 음원을 CD나 MP3 수준 음질로 낮추는 기능도 갖고 있죠. MP3는 통신 속도 느릴 때 전송 가능한 해상도로 개발돼, 좋은 음질이 아닌데 대중적으로 통용되다 보니 몇 십 배 좋은 음질로 녹음하고 음질을 낮춰 발매하는 실정이에요.”

톤마이스터 최진씨가 작업한 앨범들이 작업실 벽에 전시돼 있다. 2015년 국제클래식음악상(International Classical Music Awards, ICMA) 현대음악부문을 수상한 서울시향 '진은숙 3개의 협주곡' 등 국내외 유명 앨범 수 백장이 그의 손을 거쳤다.
톤마이스터 최진씨가 작업한 앨범들이 작업실 벽에 전시돼 있다. 2015년 국제클래식음악상(International Classical Music Awards, ICMA) 현대음악부문을 수상한 서울시향 '진은숙 3개의 협주곡' 등 국내외 유명 앨범 수 백장이 그의 손을 거쳤다.

녹음 기술이 발달하며 연주자는 두 계파로 나뉘었다. 첫째, 편집만 잘하면 ‘민간인’도 프로 같은 앨범을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연주자의 진짜 실력은 라이브 연주에서만 가능하다는 ‘실황 우선주의자’다. 멀게는 지휘자 첼리비다케, 가깝게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이런 파에 속한다. 라이브 연주는 불안정하기 때문에 앨범 녹음을 통해 보다 ‘완벽한 연주’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 두 번째 부류에 속한다. 공연장을 거부하고 스튜디오에 자신을 유배시킨 피아니스트 글렌굴드가 대표적인 후자에 속한다.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도 단원들의 실력을 올리기 위해 녹음을 택했다.

“둘 다 맞는 얘기에요. 우선 녹음 과정에서 최상의 소리가 나올 때까지 프로듀서, 연주자가 토론하고 반복해 연주하면서 실력이 비약적으로 느는 것도 많이 봤어요. 과거보다 기술적인 도움을 더 받는 건 사실이고요. 편집으로 음정 올리고 템포 당기면 실력 안 되는 사람도 음반을 낼 수는 있죠. 하지만 그렇게 만든 음반에 음악을 담기란 한계가 있어요.”

대학에서 호른을 불었던 최씨는 20대 중반 전공을 바꿔 독일 뒤셀도르프 로베르트 슈만 국립음대에서 레코딩 엔지니어 코스를 밟았다. 유학을 시작했던 1990년대 중반도 이미 컴퓨터 편집이 대세를 이뤘지만 대학에서 “진짜 테이프 잘라 붙이는” 아날로그 편집부터 배웠다. “그때 700MB 컴퓨터 편집기가 수 천 만원씩 했어요(웃음). 오른쪽, 왼쪽 투 트랙 편집만 가능했죠. 지금은 롯데홀 개관공연 녹음에 마이크 40개 써서 40개 트랙을 편집하는 식이니까 그때가 훨씬 실제 연주에 가까운 편집이라고 볼 수 있죠.”

청운의 꿈을 품고 유학을 떠났던 90년대와 비교해 지금의 음반 시장은 형편없이 줄어들었지만 국내에서 최씨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늘었다. 최씨가 만드는 앨범은 1년에 수십 장. 이달 중 발매될 롯데콘서트홀 개관공연 앨범과 코리안심포니 부르크너 교향곡 전곡 앨범 9장도 그의 손을 거쳤다. “연주자에게 음반은 수익 이상의 의미에요.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징표거든요. 연주자가 존재하는 이상 음반은 사라지지 않을 거에요.”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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