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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입력
2018.08.0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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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 년에 딱 한 번 캠핑을 한다. 캠핑의 즐거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텐트를 쳤다 걷는 일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난 일 년에 딱 한 번 텐트를 가지고 제주로 간다. 텐트를 치고 일주일 정도 있다가 걷는다. 그러면 캠핑이라는게 할 만하다. 지금 난 일 년에 딱 한 번 하는 캠핑 중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교래자연휴양림 캠핑장은 숲 안에 있다. 숲 옆 한적한 곳에 외따로 텐트를 쳤다. 밤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난 건어물 전문시장인 서울 중부시장에서 공수해 온 쥐포를 두 마리 굽고, 캔맥주를 따고, 예쁜 아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숲 속에서 “컹!”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짧고 강한 소리였다. 개가 내는 소리랑 비슷했는데, 딱 개의 소리라고 하기에는 뭔가 다른 소리였다. ‘개인가?’, ‘멧돼지인가?’ 저 소리가 무슨 소리일까 생각하는 도중에 또 한 번 “컹!”, 그리고 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컹!” 소리가 났다. 4번의 소리는 조금씩 움직였고, 마지막 “컹!” 소리는 우리 텐트 바로 뒤에까지 왔다. 작은 테이블에서 맥주 한잔 마시던 나와 아내는 빛의 속도로 텐트 안으로 날아들어갔다. 순간 테이블 위에 놓고 온 쥐포 생각이 났다. 그게 좀 맛있는 냄새가 나는가! 분명히 그 개인지 멧돼지인지 하는 녀석도 그 냄새를 좋아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의자와 테이블, 그 위에 놓인 책, 랜턴은 모두 작살이 나겠지. 아니, 물건이 문제가 아니라 녀석을 우리 텐트 가까이로 유인하는 꼴이니···. 순간 두툼한 쥐포를 사겠다고 한여름에 중부시장까지 갔다 온 내가 미웠지만 그렇게 자책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난 용감하고 잽싸게 쥐포를 집어오기로 결심했다.

마지막 “컹!” 소리가 난 지도 좀 시간이 흘렀다. 난 텐트 지퍼를 열고 또 한 번 몸을 날려 쥐포를 남김없이 손에 쥐고 다시 텐트로 들어왔다. 이제 쥐포를 입에 털어 넣어 버리면 그 개인지 멧돼지인지 모를 녀석의 코에 쥐포 냄새가 도달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쥐포가 생각보다 양이 많은 게 아닌가! 멋지게 한입에 털어 넣으려 했는데, 쫌스럽게 몇 조각씩 입에 넣고 턱이 빠져라 씹어댔다. 좀 늦다가는 테이블 지키려다 개인지 멧돼지인지 모를 녀석을 텐트 안으로 유인하는 꼴이 될 터이니···.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난 평생을 자책하며 살지도 모른다. 그러니 죽어라 씹어대는 수밖에.

그렇게 쥐포를 다 먹어치웠고, 다행히 더이상 “컹!”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짐승의 소리를 들었냐!”, “그 녀석의 정체가 뭐냐!”, “안전한거냐!”를 따지 듯이, 그러나 최대한 침착한 척 물었다. ‘발정난 수컷 노루가 내는 소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노루’라는 단어는 안전한 느낌이었지만, ‘수컷’, 게다가 ‘발정난’이라는 단어는 꺼림칙했다. ‘절대 안전하다’는 설명을 듣고 난 다음에야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정체를 알고 나니 그 선한 눈망울을 가진 노루의 울음소리에 괴물이라도 나타난 양 호들갑을 떨었던 짧은 시간이 부끄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알면 되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괜히 무서워했다.

오늘 낮 제주 시내에서 예멘 사람들을 보았다. 예멘 사람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린다. 하지만 난 아직 그들을 잘 모른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잘 모르는 것은 우선 조심하고 보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니 우리는 그렇게 진화했다. 하지만 세상엔 잘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잘 모르는 것,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밖에 없다. 두려움에 배척하며 살 수만은 없다. 우선 좀 제대로 알고나 봐야겠다.

최성용 도시생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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