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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졸다’, ‘줄다’, ‘쫄다’

입력
2018.04.05 11:4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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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다’와 ‘줄다’는 어원이 같다. 중세국어 자료를 보면 ‘졸다’는 ‘수효, 분량, 부피 등이 적어지다’의 뜻을 지닌 말로 쓰였다. 그런데 ‘졸다’에서 ‘줄다’로의 형태 변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졸다’와 ‘줄다’가 더불어 쓰이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개 이전 형태가 도태되기 마련이지만, 두 형태가 각각 특정 의미를 띠게 되면서 공존하기도 한다. ‘큰 사전’(1957)에서는 ‘졸다’를 ‘줄다’의 작은말로, ‘줄다’는 ‘졸다’의 큰말로 기술하였다. ‘줄다’와 ‘졸다’는 어감이 다른 말이 되면서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졸다’의 뜻이 변하면서 ‘졸다’의 위상은 좀 더 확고해진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졸다’를 “찌개, 국, 한약 따위의 물이 증발하여 분량이 적어지다”로 풀이하는데, 이는 ‘졸다’의 의미 폭이 좁아지며 특수화되었음을 나타낸 것이다. 게다가 ‘졸다’에는 “(속되게) 위협적이거나 압도하는 대상 앞에서 겁을 먹거나 기를 펴지 못하다”는 뜻이 추가되었다. 의미가 특수화되면서 비유적 의미로 확장되었으니 ‘졸다’는 ‘줄다’로부터 벗어나 그 위상이 굳건해졌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위협적인 질문에도 졸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했다.”라는 문장은 아무래도 낯설다. ‘쫄지 않고’를 써야 자연스러울 자리에 ‘졸지 않고’를 썼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보면 ‘쫄다’는 이미 심리적 위축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특수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쫄다’를 ‘별다른 이유 없이 어두음을 된소리로 발음하는 예’로 취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찌개가 너무 쫄았어.”의 ‘쫄다’를 비표준어로 배제한 논리를 “너무 쫄아서 한마디도 못했어.”의 ‘쫄다’를 배제하는 논리로 삼을 수 없다는 말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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