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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진짜 노래

입력
2015.09.0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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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는 흑인 음악이다.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그들이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한풀이 여흥 풀이로 기타 퉁기며 흥얼거렸던 게 시발이다. 그걸 백인들이 따라 했다. 그러다가 ‘블루노트’니 어쩌니 하면서 양식화했다. 로큰롤과 댄스, 발라드 등이 그렇게 풍성해졌다. 이를테면, 목화밭의 노동요가 첨단 자본주의 상품으로 포장된 셈. 그게 여태까지 전 세계 대중음악의 뼈대로 변주된다. 1960~70년대엔 숫제, 흑인이 되고자 한 백인 뮤지션도 많았다. 롤링 스톤즈도 밥 딜런도 흑인의 ‘소울’을 자기화하고자 했다. 작금의 원더걸스도 싸이도 그 영역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음악평론가연하자는 게 아니다. 그저,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수박 겉핥기식 계통이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정통 블루스는 전혀 화려하지도 세련되지도 않다. 듣다 보면 언뜻, 어릴 때 할머니가 배추 팔다 와서 흥얼거리던 그 음률, 그 가락의 여운이 떠오르기도 한다. 팔다리 욱신거리는 신음과 짓이겨진 마음을 허공에 띄워 허하게 뱉는 한숨과 손주 놈 학교 간다고 가방 사주겠다면서 흥겨워하는 그 심정 그대로가 바람에 얹혀 그저 소리 낼 뿐이다. 예쁘게도, 잘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대장장이가 땀 뻘뻘 흘리면서 풀무질하거나 백정이 돼지 멱 딸 때 내는 탄식과도 비슷하다. 천해도 좋다. 노래가 긍휼한 건 성속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노래 듣고 싶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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