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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개헌도 '신뢰 프로세스' 우선하라

입력
2018.03.15 15: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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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개헌발의 '최후통첩' 이해되나

국회협의 흔적 없이 일방강행 아쉬움

국회 외면 끝 폐기되면 더 큰 후폭풍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있다. / 고영권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있다. / 고영권기자

자유한국당이나 홍준표 대표가 약속 파기를 깨끗하게 사과하고 얘기를 풀어 갔으면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런 선제적 조치나 근거 없이 '문재인 표 관제개헌' 운운하며 지방선거와 개헌안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무턱대고 반대하니 우습게 보인 것이다. "동시 실시하면 '정권 중간평가'라는 지방선거의 의미가 희석된다"는 패배주의적 발상이나, "지방분권 확대는 연방제 통일로 가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억지가 나온 것 역시 첫 단추를 잘못 꿴 탓이다. 대선 때는 옳다던 동시 실시가 지금 와선 틀린다고 하려면 상황을 오판했다고 통 크게 고백하고 귀에 와 닿는 대안을 내놓는 게 116석의 덩치에 3선급 이상 중진만 41명에 달하는 한국당의 책임 있는 자세일 것이다.

이런 과정이 없었으니 얕잡아 보인 것이다. 문 대통령이 국민헌법자문특위의 개헌안을 보고받고 이를 토대로 21일 '우리끼리 개헌안'을 발의하되, 국회가 내달 28일까지 별도의 개헌안을 발의하면 정부안을 철회하겠다고 '최후통첩'했으니 말이다. 개헌안 국회 발의와 의결, 국민투표 공고 일정 등을 감안한 6ㆍ13 동시선거 마지노선이 4월 28일이니 그 전에 결단하라는 것이다. "한번 약속하면 강박관념을 갖는다"고 말해 온 문 대통령의 태도는 어느 때보다 단호하다. "(국회가) 이 마지막 계기마저 놓친다면 대통령은 불가피하게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위 위원장(가운데)이 13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개헌자문안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철 부위원장, 정 위원장, 하승수 부위원장. 연합뉴스.
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위 위원장(가운데)이 13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개헌자문안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철 부위원장, 정 위원장, 하승수 부위원장. 연합뉴스.

한국당 등 말만 많은 정치권의 조속한 행동을 촉구하는 압박용이라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약속이행 강박관념에 세금절약 효과까지 얹으며 개헌안 발의에 성큼 다가갔다.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투표는 대통령의 약속이자 다시 찾아오긴 힘든 기회이며 국민세금을 아끼는 길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지금 채택되고 임기를 조금만 조정하면 4년 후부터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함께 치를 수 있다." 4년 중임제를 해도 개헌 당시 대통령에겐 적용되지 않으니 자신에게 무슨 정치적 이득이 있을 것처럼 왜곡하지 말라는 경고도 했다.

문 대통령의 말에는 흠잡을 구석이 없다. 19대 대선 후 1년 가까이 국회가 개헌특위를 가동했지만 권력구조 등 핵심사항엔 접근도 못한 채 변죽만 울리고 소모적 논란만 계속해 왔으니, 청와대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이해된다. 또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권력구조를 놓고 말이 많지만 우리 정치 현실에서 의회권력을 강화하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국민지지를 받는 정답인지 의문이다. 문 대통령이 대통령제 손질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을 놓고 야당이 '저의' 운운하며 왈가왈부하는 것은 헛소리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국회의 개헌 움직임이 굼뜨다고 탓했을 뿐 적극적 소통엔 소홀했다는 점이다. 신년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된 국민개헌이 되도록 국회와 협의하겠다"고 말했지만, 2월 중순 돌연 직속 개헌자문특위를 만들기 전에, 또 만든 후에 국회와 어떤 협의를 했는지 알기 어렵다. 국회주도 개헌을 강조해 온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7일 한 포럼에서 "6ㆍ13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차선책도 조금씩 논의할 때가 됐다"고 '시기 조절론'을 꺼냈다. 그로부터 불과 1주일 후 문 대통령이 자문특위 개헌안을 보고받고 21일 발의 강행 뜻을 밝혔으니 이런 엇박자도 없다. 한국당의 반발은 묵살한다고 쳐도 민주당을 포함한 범여권 세력에서 "정부가 개헌안을 섣불리 던지면 국회의결은커녕 논란만 벌이다 폐기되고 후폭풍에 시달리다 자칫 개헌의 싹을 자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남북문제와 주변국 관리가 미궁으로 빠져들 때도 "엄동설한에도 봄은 반드시 온다"며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했고 지금 그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는 또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 숨가쁜 일정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과용ㆍ과속 우려가 제기되자 '성실하고 신중히, 그러나 더디지 않게'라고 답했다. 북핵 해법의 지혜로 요청되는 상상력과 신뢰ㆍ소통이 국내문제에선 왜 길을 잃는가.

엊그제 국회입법조사처는 내놓은 개헌 관련 여론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방선거ㆍ개헌투표 동시실시를 강력 주장하는 여론은 45% 수준에 머물렀다. 정의당은 어제 문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개헌의 문을 닫아버리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발의 방침 철회를 공식요구하고 "지금 필요한 것은 대통령의 개헌발의권 행사가 아니라 개헌의 실질적 성사를 위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북핵문제가 그렇듯이 개헌에도 여야 신뢰프로세스가 작동해야 한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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