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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첫 조미료 ‘미원의 아버지’ 맛 여정 끝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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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첫 조미료 ‘미원의 아버지’ 맛 여정 끝내다

입력
2016.04.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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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전 日 건너가 제조 기술 습득

감칠맛 ‘미원’ 탄생 선풍적 인기

경영권 넘긴 후도 연구실 출근

국내 식품 산업에 커다란 족적

구두 두 켤레ㆍ양복 세 벌 검소 실천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자식과 골프, 그리고 미원이다.”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이렇게 말했을 정도로 대상그룹의 ‘미원’은 지난 60년간 한국인의 입맛을 지배해 온 ‘국민 조미료’였다. CJ제일제당이 ‘미풍’을 내놓으면서 미원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끝내 넘어서진 못했다.

국내 최초 조미료 미원의 역사를 일군 대상그룹 임대홍(사진) 창업주가 지난 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어떤 음식에든 조금만 넣어도 감칠맛을 내는 국산 조미료는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국내 조미료 시장을 일본 조미료 ‘아지노모토’가 휘어잡고 있던 1955년 그는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갔다. 감칠맛을 내는 성분 ‘글루탐산’의 제조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1년 뒤 돌아온 임 창업주는 부산에 조미료 공장을 세웠다. 대상의 모태인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다. ‘맛의 원천’이라는 의미의 미원은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생산됐다. 회사이름도 곧 미원으로 바꿨다. 순수 국내 자본과 독자 기술로 생산된 미원은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한국 음식 맛의 평준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원 선물세트는 1960년대 최고의 명절 선물로 꼽혔다.

임 창업주는 은둔의 개발자였다. ‘실험광’이라 불릴 정도로 평생을 연구에 매달렸다. 1987년 장남 임창욱 명예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준 뒤에도 2000년대 초반까지 대상 사옥 뒤 연구실에서 전통 장류에 대한 연구를 했다고 전해진다. 재래식 전통 된장의 맛을 살려 1998년 선보인 ‘햇살담은 조선 된장’도 이때 개발된 것이다.

그는 검소한 생활로도 유명했다. 평생 양복 세 벌과 구두 두 켤레 이상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출장 때도 숙박료 5만원 이상 숙소에는 묵지 않았고, 출퇴근은 주로 버스를 이용했다.

호남(전북 정읍) 출신 기업인으로서 정치적 풍파도 겪었다. 1970년대 초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대줬다는 풍문이 돌아 고초를 겪었다. 국세청의 집중적인 세무조사를 받아 추징금 10억원을 내고도 이후 6년 간 세무사찰에 시달려야 했다.

그가 일으킨 미원 그룹은 1997년 대상으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 청정원(1996년), 식자재 유통브랜드 쉐프원(2010년)과 함께 순창(고추장 등), 햇살담은(간장), 홍초(음용식초), 맛선생(자연재료 조미료), 카레여왕, 신안섬보배(천일염) 등 다양한 브랜드를 갖춘 종합식품회사로 성장했다.

임 창업주의 장례는 유지에 따라 외부 조문 없이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8일 오전 7시, 장지는 전라북도 정읍 선영이다. 유족은 아들 임창욱 명예회장과 임성욱 세원그룹 회장, 딸 임경화씨와 사위 김종의 백광산업 회장, 손녀 임세령 대상 전무와 임상민 상무 등이 있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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