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요새 모텔 가봤니? 은밀함 벗고 파티ㆍ캠핑까지

숙박 예약 앱 활성화가 계기

환불 보장ㆍ몰카 방지 등 내걸고

‘러브 모텔’ 이미지 탈피 인기몰이

1층 가림막 자리엔 카페ㆍ식당

월풀 욕조에 수영장 갖춘 곳도

영화ㆍVR게임 무료로 서비스

서울 갈월동 더 디자이너스 호텔 서울역점에서 임신부인 이선영(오른쪽 첫번째)씨와 친구들이 다가올 출산을 축하하며 파티를 즐기고 있다. 홍인기 기자

한달 뒤 출산 예정인 임신부 이선영(34)씨는 최근 친구들과 서울 시내 모텔로 하루짜리 휴가를 떠났다. 임박한 출산을 축하하는 ‘베이비 샤워’를 위해서였다. 비록 하룻밤이었지만 만삭인 몸을 이끌고 멀리 가는 건 무리였고, 특급호텔에 투숙하자니 팍팍해질 지갑 사정이 아른거렸다. 여러 가지를 따져보다 이씨와 친구들이 최종적으로 택한 곳은 중소형 호텔, 흔히 ‘모텔’로 부르는 곳이었다.

모텔이라 하면 남녀가 데이트를 위해 드나드는 ‘러브모텔’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던 탓에 이씨 일행은 애초 모텔을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숙박 예약 응용 소프트웨어(앱)를 돌려보다 생각을 고쳤다. 화사한 인테리어에 대형 욕조, 뛰어난 전망뿐 아니라 야외 수영장, 가상현실(VR) 체험 시설, 당구대, 디저트 카페 등을 갖춘 화려한 모텔들이 눈길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시설이나 위치는 유명 호텔 급인데 금전적 부담은 훨씬 적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씨는 “남산이 한 눈에 보이는, 집보다 큰 4인실과 각종 배달 음식까지 한 사람당 10만원이 안 되는 가격에 해결할 수 있었다”며 “친구들과 모텔에 가 본 적이 없어 처음엔 망설였지만 앞으로 종종 이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모텔이 달라지고 있다. 은밀하고 어두운 곳 정도로 여기고 있다면 이제는 생각을 바꾸는 게 좋겠다. 요즘은 호텔에선 볼 수 없는 시설과 디자인으로 차별화하거나 특급호텔처럼 고급화한 모텔이 대세이기 때문이다. 모텔 예약 앱이 보편화하면서 시설 확인과 예약이 쉬워진 것도 인기 요인이다.

숙박예약 앱 ‘여기어때’를 운영하는 위드이노베이션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이외의 목적으로 모텔을 찾은 남녀는 전체 응답자의 47%나 됐다. 이들이 모텔을 찾은 이유로는 ‘게임방ㆍ노래방 이용이나 영화 감상 등 놀이’가 가장 많이 꼽혔다. 여성 응답자의 절반은 ‘파티 및 모임 뒤풀이’를 위해 모텔을 찾았다고 했고, 스터디 모임이나 시험 공부를 하기 위해 방문하는 이들도 있었다. 더 이상 모텔은 연인끼리 비밀스럽게 찾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호텔 뺨치는 모텔의 변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남아 있는 호텔과 모텔의 가장 큰 외관상 차이점은 세련된 인테리어로 꾸며진 호텔 입구와 달리 모텔 주차장 입구를 가리고 있는 새까만 가림막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 모텔 1층 자리에는 가림막 대신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 브랜드숍 등이 들어서고 있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지나는 길에 들를 수 있을 정도로 기존의 폐쇄적인 이미지를 털어냈다.

내부의 변신도 화려하다. 객실 안에 자리한 널찍한 개별 수영장뿐 아니라 월풀 욕조에서 천연 입욕제로 즐기는 스파까지 고급스러운 욕실문화도 즐길 수 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테마로 하는 모텔에서는 로비와 복도, 객실 곳곳의 전시 작품들이 컴퓨터 화면과 각종 서류들에 지친 눈에 휴식을 선사한다.

인천 구월동의 모텔 ‘느낌’. 복층 구조로 구성된 객실 2층에 있는 널찍한 개별 수영장에서 햇살을 받으며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위드이노베이션 제공

서울 남현동 ‘코텔야자 사당역점’은 국내 최초로 미술관을 콘셉트로 한 모텔이다. 모텔 내부 곳곳이 58명의 국내 신진 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한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야놀자 제공

도심 속 오감만족… 파티ㆍ캠핑까지

어딜 가든 음악과 춤을 포기할 수 없는 ‘파티형’ 인간들은 꼭 있다. 특급호텔보다 저렴한 가격으로도 여러 명이 들어올 수 있는 객실에 당구대, 노래방 시설까지 갖춘 모텔의 파티룸은 여름 도심 속 파티 장소로 제격이다. ‘클러버’들에게 빠지면 섭섭한 디제잉 장비까지 갖춘 모텔도 등장했다.

옥상 ‘루프탑’ 공간을 활용한 글램핑 서비스도 눈에 띈다. 바비큐 재료를 구입하고 취사도구를 대여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옥상에서 캠핑과 파티를 즐긴 후 곧바로 연결된 객실로 넘어와 편히 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친구보다 더 가까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휴가를 원한다면 반려동물 동반 입실이 가능한 모텔을 선택하면 된다. 가방은 가볍게 싸자. 식기세트, 방석, 배변패드 등 다양한 반려동물 용품들은 이미 객실 안에 준비돼 있다.

충북 ‘코텔 충주북문로점’ 2층은 전체가 놀이 공간으로 채워져 객실 이용객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디제잉 파티를 위한 ‘플레이 댄스’, 원형 당구대가 비치돼 있는 ‘플레이 포켓’, 각종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플레이 게임’, 사진 촬영 스튜디오가 설치돼 있는 ‘플레이 포토’, 노래방 기기가 있는 ‘플레이 송’ 등 5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야놀자 제공

서울 역삼동 ‘H에비뉴 역삼점’에는 객실과 연결되는 루프탑 공간에 글램핑 시설이 갖춰져 있어 캠핑과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다. 야놀자 제공

‘숙소=잠자는 곳’ 고정관념을 깨다

투숙객들이 객실 밖을 나가지 않고도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각종 오락 요소들이 모텔 안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다. 객실 TV로 영화와 드라마를 무료로 제공해 ‘빈지워칭’(몰아보기) 욕구를 자극하기도 하고 오락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자동차 경주용 오락기를 구비한 곳도 있다. 비록 바다 건너 떠나온 여행은 아니더라도 가상현실(VR) 기기로 즐기는 게임과 영화로 가상 세계까지 만끽할 수 있다.

서울 신설동의 부티크나인 객실 안에는 오락실에 온 것처럼 레이싱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 시설이 갖춰져 있다. 위드이노베이션 제공

모텔 간 경쟁 심화로 전반적인 수준이 높아지고, 일정한 품질과 만족도를 보장하는 프랜차이즈 모텔도 늘어나면서 모텔 숙박은 점점 대중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드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모텔 업계는 성수기에 바가지 요금을 부르거나, 결제 수단(현금 혹은 카드)에 따라 객실 요금이 달라지고 취소 시 환불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오래된 부조리가 있었다”며 “최근 숙박 앱 업체들이 최저가 보장, 환불 보장, 몰래카메라 방지 등에 나서면서 모텔을 찾는 사람이 꾸준히 늘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