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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이집트의 경우

입력
2017.03.0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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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의 시작을 장식한 아랍의 봄은 이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독재 종식을 요구하는 대규모 군중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어떤 나라는 민주주의의 문턱 앞에서 좌절하였으며, 또 어떤 나라는 혼란과 내전에 휩싸였다. 이집트는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드라마를 썼다. 이집트인들은 반 세기 이상 지속된 독재를 무너뜨리고 처음으로 직접선거를 통해 정부를 세웠다. 그리고 그 정부가 1년여 만에 축출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돌아온 독재의 부역자들은 민선 정부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면서, 군부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재집권한 것처럼 연출까지 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진 걸까?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독재자를 쫓아냈지만 독재를 떠받치던 관료기구는 그대로 두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권력은 남았다. 사법권을 가진 군 최고회의가 야당후보들의 출마를 제한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야당인 자유정의당이 1당이 되자 이번에는 그 선거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헌법재판소엔 군부가 임명한 재판관들이 그대로 앉아있었다. 이 판결은 지난 정권에 부역하던 언론들이 다시금 예전의 보도방침을 따르게끔 만들었다. 이집트 언론들은 의회가 30년 만에 계엄을 해제한 것이 큰 불법이라고들 말했다.

대통령 선거에도 방해가 있었다. 지난 정권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샤픽이 신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했다. 그는 고령임에도 머리 숱이 많다는 점에서 어딘가의 총리와 유사했다.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였던 샤테르의 출마는 저지됐다. 샤픽의 당선을 막기 위한 유권자들의 표가 샤테르 대신 출마한 무르시에게 집중됐다. 어부지리로 대통령이 된 그는 자유정의당의 기반인 무슬림형제단 출신이지만 당을 떠나 무소속 의원으로 활동한 사람이었다.

새 대통령은 의회를 다시 소집하여 새 헌법을 만들겠노라 했지만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헌재 판결을 받아 의회 해산을 확정한 법원은, 의회를 재소집할 권한이 대통령에게 없다고 못 박았다. 민선의회가 만든 독재정권 부역자 처벌법도 무효가 됐다. 이에 의회 창설을 요구하는 파업이 일어났다. 한 섬유공장에서 시작된 파업은 곧 전국으로 번졌다. 그런데 때를 맞추어 복면을 쓴 무장집단이 이스라엘 국경에 총격을 가했다. 이스라엘 군의 보복 포격이 시작됐다. 처음 충돌을 일으켰던 집단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의회가 해산되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질 정도로 안보 불안은 강력했다.

군사적 긴장 국면에서 대통령은 군부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는 사법부와 대화하면서 국방장관에 시시를 앉혔다. 군사정보부장이었던 시시는 지난 정권의 핵심인사는 아니었고 미국 유학파라는 점이 무르시 대통령과 같았다. 미묘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법원이 헌법 제정을 위한 임시의회 소집을 허가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 헌법엔 국방위원회가 군대 예산을 의회 승인 없이 집행한다는 조항과 함께 군이 민간인을 체포하고 군법으로 재판하는 종래의 권한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군 최고회의가 민군합동 국방위원회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반년 후 시시 장관이 이끄는 군대가 민간인 수천 명의 피를 뿌렸다. 이집트는 군정으로 회귀했다. 1952년에 이어 쿠데타의 역사가 반복되었지만 두 번째도 비극이었다.

민주혁명 이후 이슬람 정당을 뽑은 이집트인들의 선택을 믿기 힘들어 한 서방 언론들은 민선정부가 맞닥뜨린 저항이 그들의 이슬람 노선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다. 또 경제위기나 실업난 때문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그것은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집트의 민주화가 실패한 더 큰 원인이 독재를 떠받쳤던 권력을 청산하지 못했고 그걸 대체할 새로운 체제를 만들지 못한 데에 있다고 본다. 우리의 경우는 이집트와 다르지만, 지난 대선에 개입할 정도의 어떤 권력이 그대로 있다는 점만은 비슷하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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