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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하리’ 한국 창작 뮤지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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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하리’ 한국 창작 뮤지컬인가?

입력
2017.07.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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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일본 수출을 앞둔 대형 한국 창작뮤지컬 '마타하리'는 연출, 음악, 대본, 안무를 모두 해외 제작진에게 맡겼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내년 일본 수출을 앞둔 대형 한국 창작뮤지컬 '마타하리'는 연출, 음악, 대본, 안무를 모두 해외 제작진에게 맡겼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고위 인사들로부터 정보를 빼돌려 독일 측에 팔아 넘긴 혐의로 체포돼 프랑스에서 사형당한 마타하리. 뮤지컬 ‘마타하리’는 이 신비롭고 전설적인 스파이 마타하리, 그리고 그 마타하리와 두 남자간 삼각관계를 그려냈다. 지난해 성공적인 국내 초연에 이어 내달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재공연을 이어간다.

이 정도 설명이라면 해외에서 성공한 대작을 수입한 것 같지만, 사실 뮤지컬 ‘마타하리’를 만든 곳은 한국의 뮤지컬 기획사인 EMK뮤지컬컴퍼니(EMK)다. 초연 때는 제5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올해의 뮤지컬상 등 3개 부분을 휩쓸었고, 내년엔 일본에서 라이선스 공연도 앞두고 있다. 첫 창작 작품을, 그것도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EMK로선 함박웃음을 터뜨릴 만하다.

‘마타하리’의 성공은 마냥 축하할 일일까. ‘마타하리’는 단순히 소재만 외국 이야기를 가져온 게 아니다. 주요 제작진이 외국인이다. 부족한 부분에서 일부 도움을 받는 수준이 아니다. 연출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활동해 온 스티브 레인, 대본은 아이반 멘첼, 작곡은 프랭크 와일드혼, 작사는 잭 머피, 안무는 제프 칼훈이다. 한국 배우가 무대에 올라 한국어로 노래 부르지 않았다면, 그냥 외국 작품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최근 1,000석 이상 대극장 뮤지컬에서는 해외 제작진과의 협업하거나 외국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지속해서 제작되고 있다. 이를 두고 세계적인 뮤지컬 시장에 맞춰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시각과 국내 창작뮤지컬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창작뮤지컬은 대본과 음악을 순수하게 창작한 경우를 말한다. 외국의 대본과 음악을 들여와 국내 배우와 제작진 중심으로 만드는 경우가 라이선스 뮤지컬이다. 창작뮤지컬은 수정과 보완을 거쳐 작품의 완성도를 지속적으로 높여 나가야 한다. 품이 많이 들고 고달픈 작업이다. 그래서 창작뮤지컬보다는 이미 흥행이 입증된 라이선스 뮤지컬을 들여와 무대에 올리는 게 단기적인 수익을 내기에 쉽다. 최근 대극장 창작뮤지컬 중에서 라이선스와 구분하기 힘든 작품들이 늘고 있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지혜원 공연평론가는 “국내 대형 창작뮤지컬 중에 ‘명성황후’나 ‘영웅’ 정도를 제외하면 레퍼토리화된 작품이 적다”면서 “조금 더 보편적인 소재나 주제를 잡아야 해외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MK 스스로도 “‘마타하리’는 제작 초기 단계부터 아예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라고 밝혔다. ‘마타하리’보다 앞서 해외 대극장 창작뮤지컬로 일본에 라이선스 수출했던 작품으로는 ‘프랑켄슈타인’이 있다. 왕용범 연출가와 이성준 음악감독이 대중들에게 익숙한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두 사람이 내달 25일부터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 다시 ‘벤허’를 무대에 올린다. 이 작품 역시 1880년 발표된 베스트셀러 소설 ‘벤허’를 원작으로 삼았다.

해외 시장 진출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한국의 대형 창작뮤지컬은 서양 위인전이나 민족적 정서에 기댄 역사물 뿐이냐’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현대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라이선스 뮤지컬 ‘나폴레옹’, ‘시라노’ 등과 비교했을 때 창작뮤지컬 ‘마타하리’, ‘벤허’는 ‘국내 창작물’로써 갖는 차별성 혹은 이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 평론가는 “라이선스 뮤지컬의 단점은 아무래도 정서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는 점”이라면서 “우리의 창작 뮤지컬이라 해도 외국 소재, 외국 제작진이 만들어 버린다면 마찬가지 결과를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발레나 오페라와 달리 뮤지컬은 현지에서 창작 가능한 장르인데도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뮤지컬은 서구의 공연 장르’라는 인식이 바뀔 수 없다. 지 평론가는 “우리에게도 우리 정서에 맞는 ‘내 마음의 풍금’ ‘피맛골 연가’ 같은 작품들이 있었다”고 꼬집었다.

반론도 있다. 해외 제작진과 함께 뮤지컬을 처음부터 만들어 나가다 보면 그들의 노하우 등 구체적으로 배울 점이 많다는 시각이다.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는 “라이선스에서는 각색의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에 큰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해도 국내 창작진이 배울 수 있는 점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오히려 역발상을 주문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우리 뮤지컬 창작 역량이 일정 단계 이상 성장했기 때문에 외국 창작진이 우리와 손잡고 작품을 함께 만들어보고 싶어하는 상황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면서 “동시에 우리 뮤지컬 제작진도 이제는 외국 창작진들과 경쟁할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때 이르기는 하지만 일부에서는 정부 지원 문제를 거론하기도 하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이미 상업적으로 정착한 외국의 경우 뮤지컬에 대한 정부 지원은 대단히 실험적인 성격의 작품에만 한정된다. 그러나 뮤지컬 시장이 여전히 성장 중인 우리나라에서는 창작 뮤지컬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지원해주는 ‘창작뮤지컬 지원사업’이 있다. 이 사업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신청하는 제작자의 국적만 한국인이면 된다. 해외 공연 스태프를 대거 동원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마타하리’ 공연 스태프 때문에 공연 스태프의 국적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뮤지컬협회가 올해 1월 처음 만들어 시상한 ‘한국뮤지컬어워즈’의 출품 규정 또한 ‘국내프로덕션이 제작한 공연’으로만 정해져 있다. ‘마타하리’에는 해당사항이 없지만, 해외스태프로만 구성된 작품이 만약 대상에 오른다면 정부가 지원하는 게 맞는 것인지, 우리 뮤지컬어워즈를 줘도 될 것인지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질 우려도 있다.

가장 뼈 아픈 지적은 국내 창작의 기회 상실이다. 공연계에서는 “대극장 뮤지컬을 연출할 수 있는 연출가, 음악감독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수년째 새로운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지혜원 평론가는 “해외 제작진이 참여하는 공연을 만들지 말라는 게 아니라, 창작뮤지컬이 한 쪽으로만 치우치는 경향이 커진다는 건 그만큼 뮤지컬 업계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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