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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저녁 접대 술자리… 심야 택시 이용도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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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저녁 접대 술자리… 심야 택시 이용도 뚝

입력
2016.10.2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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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한정식집 발길 끊기고 골프장ㆍ화환업체들 울상

가족단위 쇼핑객 구매 특수… 대형마트 식품 매출은 껑충

법인카드 사용건수 감소 속 집 주변 카드 소비는 증가

하루 평균 10건 신고 접수

재판 회부된 위반 사건은 과태료 부과 3건이 전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한달 째인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정식 식당이 점심시간임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한달 째인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정식 식당이 점심시간임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일주일에 최소 3번은 있었던 저녁 술자리가 지난 한달 간은 거의 없었다. 일찍 퇴근하면서 양 손이 허전해서 먹을거리를 사 갖고 가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난달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된 후 달라진 대기업 홍보팀 최모(40) 과장의 일상이다.

김영란법이 한 달 만에 대한민국의 ‘저녁 풍속도’를 바꿔놓고 있다. 접대를 위한 약속은 전반적으로 줄었고, 만나더라도 비용은 각자 내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고급 한정식집에는 손님 발길이 뚝 끊긴 대신 대형마트 식료품 매출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 달 간(9월 28일~10월 26일) 이마트의 과일, 채소, 축산, 건식품 등 신선식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5%나 상승했다. 특히 맥주(12.4%)와 과자(10.4%)의 신장세가 돋보였다. 최훈학 이마트 마케팅 팀장은 “1~9월 매출 성장세가 4.9%인 것을 감안하면 김영란법 이후 식료품 매출이 크게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가족 단위 쇼핑객을 중심으로 식료품 매출 구매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고급 한정식집은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2대째 운영되고 있는 한 한정식집은 공무원을 위해 2만7,000원짜리 ‘김영란 메뉴’를 내놓았는데도 찾는 이가 거의 없어 업종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김모(53) 사장은 “홀까지 예약이 꽉 찼었는데 ‘사람 안 만나기 운동’을 하는 건지 오늘도 예약이 2팀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업무상 만남이 많은 서울 중구 롯데호텔도 레스토랑 매출이 20~30% 빠졌다.

계산대 앞에서 각자내기(더치페이)를 하기 위해 줄을 서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됐다.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서울시청 근처 식당의 윤모(45) 사장은 “예전에는 한 사람이 카드를 긁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자기가 먹은 것만 정확하게 결제를 하는 바람에 계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공직 사회도 달라지고 있다.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무하는 중앙부처의 한 과장은 “이전엔 점심을 대부분 밖에서 먹었지만 김영란법 이후에는 웬만하면 구내식당에서 해결한다”며 “저녁 약속이 있으면 1차로 식사만 하고 2차 없이 헤어진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이 몸조심을 하면서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대기업의 대관업무 담당자는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

김영란법이 불러온 변화는 카드 사용 내역 등에서도 확인된다. 신한카드가 9월 28일 직전 평일 10일과 직후 평일 14일간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접대와 관련된 주요 업종의 법인카드 사용이 대부분 줄었다. 유흥주점의 법인카드 사용건수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일 평균 5.7% 줄었고, 골프(6.4%) 요식업(4.4%) 화환(3.4%) 등도 모두 감소했다.

회식 시간대가 종전보다 앞당겨지고 심야택시 이용이 감소한 것도 특징이다. 요식업종에서 법인카드 사용건수가 가장 많은 시간대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오후 7시 전후(9.4%)로, 한 시간 앞당겨졌다. 종전까지 법인카드 사용이 가장 많았던 오후 8시 법인카드 결제비중은 9.9%에서 9.3%로 감소했다. 택시의 경우도 오후 7시 시간대의 이용 건수가 1.2% 증가한 반면 오후 8~10시 이용은 오히려 줄었다.

3만원 이하인 속칭 ‘김영란 메뉴’ 확산으로 법인카드 이용처가 고급 매장에서 중저가 매장으로 옮겨가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한식ㆍ일식ㆍ일반 대중음식 업종의 경우 이용 금액이 모두 감소했지만 이용 건수는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집 주변 카드 소비는 증가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저녁 시간대(오후 6~10시) 편의점, 홈쇼핑, 배달서비스의 일 평균 이용건수는 각각 3.6%, 5.8%, 10.7% 늘었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예전보다 일찍 귀가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저녁 시간대 가족ㆍ쇼핑 관련 소비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김영란법 시행 한달 동안 재판에 회부된 위반사건은 과태료 부과 3건이 전부였다. 공직자가 100만원이 넘는 금품을 받거나 요구해 형사재판으로 이어진 사례는 아직 없다. 대법원과 경찰청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과 춘천지법, 의정부지법에 각각 1건의 과태료 재판이 진행 중이다. 남부지법 사건은 폭행사건 피의자가 담당 경찰관에게 감사 표시로 1만원을 주려다 거절당하자 경찰서 사무실에 돈을 떨어뜨리고 간 혐의다. 3건 모두 금품을 제공받은 경찰관이 법 위반 사실을 신고하면서 재판 대상이 됐다.

지난 한 달간 경찰에는 서면신고와 112신고를 합쳐 301건, 하루 평균 10건의 김영란법 위반 신고가 접수됐다. 289건에 달하는 112신고는 의사ㆍ간호사에게 음료수를 건네도 되는지, 어린이 집에 과자를 갖다 줘도 되는지 등 김영란법 저촉 여부를 묻는 문의전화가 대부분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현행범 등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현장 출동을 지양해 자의적인 법 집행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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